
매년 3월 28일은 북한의 서해 도발에 맞서 고귀한 생명을 바친 호국영웅들의 희생과 헌신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서해 수호의 날'이다. 대한민국의 평화, 자유를 위해 목숨 바친 이들을 되새기고 우리가 누리는 일상이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세워졌음을 되짚는 날이다.
올해로 10회를 맞는 서해 수호의 날은 '사건'이 아닌 '사람'을 기억해야 하는 날이다. 어쩌면 평범하게 흘러가는 하루일 수 있지만 경기신문은 그날의 바다와 우리나라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맞서 싸운 호국영웅들의 이야기를 돌아봤다.

◇ 그날의 바다, 그들의 이야기
2002년 6월 29일 제2연평해전은 서해 연평도 부근 북방한계선(NLL) 북서쪽 일대에서 북한 해군 서해함대 8전대 7편대 소속 경비정 등산곶 684호정의 기습도발로 벌어졌다.
당시 집중포격을 당한 고속정 참수리 357호에 탑승해 있던 해군 장병들은 손가락이 절단되고 총상을 입는 고통을 참아내며 끝까지 전투를 수행해 침몰 직전까지 조국을 수호했다.
故 한상국 상사는 부상 중에도 끝까지 함정을 지휘하며 전우들을 살려냈고 정장 윤영하 소령은 중상을 입고 전사했으며 부정장 이희완 중위는 종아리에 총상을 입었음에도 쓰러진 정장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제2연평해전은 북한 해군의 경비정에 화염이 발생해 북쪽으로 퇴각하며 마무리됐다. 대한민국 해군 소속 참수리 357호가 심한 선체 손상으로 침몰했고 탑승 인원 30명 중 6명이 전사, 19명이 부상을 당했다.
제2연평해전 이후 8년 뒤인 2010년 3월 26일 밤 백령도 인근 해역을 순찰하던 천안함이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선체가 파괴돼 침몰했다. 피격 이후 인근 지역에서 경계작전을 수행하던 속초함과 백령도 등지의 참수리급 고속정, 대한민국 해양경찰청에 의해 58명이 구조됐다.
그러나 5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에 벌어진 참사로 46명의 해군 장병이 전사했다. 특히 故 민평기 상사는 선체 내부에서 끝까지 전우들을 구하려다 산소가 고갈돼 순직했다.
같은 해 11월 23일 연평도에서는 굉음과 함께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북한이 갑작스러운 포격을 가한 것이다. 당시 하교하던 연평초등학교 학생들이 위험에 노출되기도 했다. 故 서정우 하사와 문광욱 일병은 민간인을 먼저 대피시키며 군인으로서 책임을 다했고 포탄의 파편을 온몸으로 막으며 최후를 맞이했다.
제2연평해전·천안함 피격·연평도 포격전에서 조국을 위해 망설임 없이 자신의 목숨을 바친 서해수호 55용사를 추모하며 세 차례의 군사 충돌에서 나아가 그들의 선택이 있었기에 지금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그 이름을 되새겨야 한다.

◇ "국가안보의 결연한 의지 확고" 서해수호의날 지정
국가보훈부는 제2차 연평해전과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희생된 국군 장병들의 공헌을 기리기 위해 법정기념일인 '서해수호의 날'을 제정했다. 가장 피해가 컸던 천안함 피격 사건이 2021년 3월 26일 일어난 만큼 매년 3월 넷째 주 금요일을 서해수호의 날로 지정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 2016년 1월 28일 황교안 당시 국무총리는 국가정책조정회의를 열고 "북한의 핵실험과 국지도발 위협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튼튼한 안보체계를 확립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라며 "정부는 국민적 공감대 속에서 국가안보에 대한 결연한 의지를 확고히 하기 위해 '서해수호의 날' 기념 방안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국가를 위해 희생한 군 장병을 추모하는 것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에 끊임없는 군사적 도발을 이어가는 북한의 위협을 알려 전 국민의 안보 결의를 다지는 것이 목적이다.
1차 서해수호의 날은 같은 해 3월 25일이었으며 정부 주요 인사와 희생자 유족, 시민 등이 참석한 가운데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정부행사로 기념식이 진행됐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기념사를 통해 "여기서 우리가 또다시 물러선다면 북한의 핵 능력 고도화로 한반도에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닥치고 경제는 마비될 것"이라 경고하면서도 "정부와 군은 단 한 사람의 국민도 위험에 처하는 일이 없도록 북한의 도발에 철두철미하게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 정치적 이해관계에 퇴색된 서해수호의 날 정신
그러나 이후 서해수호의 날은 각종 정치적 이슈에 얽히기도 했다. 2차 서해수호의 날인 2017년 박 전 대통령은 탄핵당하면서 기념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대신 서울지방보훈청과 안보단체협의회 주도로 서울 광화문 중앙광장에서 기념식이 열렸다.
3차 서해수호의 날인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은 베트남 국빈 방문 중이어서 이낙연 당시 국무총리가 기념식에 참석했다. 하지만 2019년 4차 서해수호의 날에도 문 대통령은 지방 경제 투어 일정을 이유로 불참했고, 결국 천안함 46용사 유족협의회장 등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다만 5차인 2020년부터는 참석했으며, 6차인 2021년에는 대한민국 해군 신형 호위함을 천안함으로 명명하는 등 천안함 피격 사건을 기리기도 했다.
정권에 따라 서해수호의 날은 크고 작은 진통을 겪으면서 희생된 국군 장병을 추모하자는 본래의 의미가 퇴색됐다는 문제점이 지적되기도 했다. 특히 천안함 피격 사건의 경우 피해가 컸던 탓에 '정권이 북풍 몰이한다'는 주장이 일기도 했으며, '좌초된 것이다', '자작극이다' 등 각종 음모론이 나오기도 했다.
한 전직 해군 관계자는 "국가를 지키기 위해 수많은 젊은 목숨이 세상을 등졌다. 그런 이들의 희생과 슬픔을 기억하기 위해 만들어진 서해수호의 날이 온갖 오명을 쓴 모습에 마음이 아프다"며 "앞으로는 올바른 안보관과 애국심, 군인의 희생정신을 기억할 수 있는 서해수호의 날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 "서해수호 영웅 기억하자" 매년 이어지는 서해수호의 날 행사
정권에 따라 서해수호의 날에는 크고 작은 진통이 있었지만 매년 국가보훈부는 국민들과 함께 호국영웅들을 기리고 추모하고자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각 지방보훈청에서 기념식을 진행하는 한편 대전 현충원 등 전국 곳곳에서 '불멸의 빛'을 점등한다.
불멸의 빛은 3개의 큰 빛기둥으로 제2차 연평해전 등 서해수호의 날의 단초가 된 3개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하늘로 쏘아 올린다. 올해의 경우 지난 26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불멸의 빛 점등식이 개최됐으며, 총 사흘간 점등이 이어진다.
또 올해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은 25일 오전 10시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진행된다. 특히 올해는 서해수호의날 10주년인 만큼 '서해를 지켜낸 영웅들, 영원히 기억될 이름들'이라는 주제로 군 장병들의 희생을 잊지 않고 끝까지 지켜가겠다는 의지를 담아 진행된다.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은 "올해로 10회째를 맞은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이 서해수호의 역사는 물론, 서해수호 55영웅 한 분 한 분의 이름이 국민의 가슴에 새겨지는 소중한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아울러 올해 서해수호의 날 1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 해군은 북한의 해상도발 시 강력한 응징 태세 확립을 위해 전 해역에서 해상 기동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수상함 30여 척, 잠수함, 해군 P-3 해상초계기 및 AW-159 해상작전 헬기, 공군 KF-16 전투기 등이 참가해 대함·대잠·대공 함포 실사격이 이뤄지는 등 대규모 훈련이다.
2함대 훈련을 주관한 이재섭 2함대 제2해상전투단장(준장)은 "서해수호 55 용사가 보여줬던 필승의 정신을 되새기고 결연한 서해수호 의지를 다시 한번 다지겠다"고 말했다.
[ 경기신문 = 박진석·장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