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을 걷는 것조차 불안하다”는 도민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서울 강동구 명일동에서 발생한 대규모 땅꺼짐 사고, 광명시 신안산선 공사현장 붕괴, 주택가 인도에서의 싱크홀까지. 불과 한 달 사이 전국 곳곳에서 크고 작은 지반침하 사고가 잇따랐다.
이는 단발성의 우연한 사고가 아니다. 이는 땅속 위기가 점차 현실화되고 있음을 알리는 분명한 경고다. 지반침하를 더 이상 ‘예외적 사고’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일상에서 반복되고 있는 지반침하 사고에 대한 사전 예방과 예측 중심의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주요 선진국들은 지반침하를 ‘예측가능한 재난’으로 보고 정책과 기술을 결합해 대응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미국 플로리다주는 시민이 싱크홀 위험을 사전에 인지할 수 있도록 지역을 지도화함은 물론 사전에 대비할 수 있도록 훈련 지침을 제공하고 있다.
일본은 매년 ‘지반침하지역 보고서’를 발간하여 지반침하 가능성이 있는 지역의 정보를 국민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영국은 NUAR(국가지하자산등록제)를 통해 지하 인프라 정보를 디지털화하고 있다. 국가차원의 정책적 노력과 기술적 기반의 결합을 통해 예방중심의 안전관리 체계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경기도민이 딛고 서 있는 경기도의 땅은 안전한가?
최근 7년간(2018~2024년) 경기도에서 발생한 지반침하 사고는 총 303건. 그중 절반 가까이가 부천·고양·화성시 등의 인구 밀집 도심 지역에서 발생했고, 사고는 주로 우기철과 해빙기, 집중호우 기간에 집중됐다.
주요 원인은 하수관 손상(약 40%)으로 가장 많았으며, 다짐불량과 부실한 굴착공사도 주요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지반침하 사고에 대응할 경기도의 현실이 매우 열악하다는 점이다.
현행 ‘지하안전법’에 따르면 지하시설물에 대해 연 1회 이상의 지반침하 육안조사와 5년마다 1회 이상의 GPR(지표투과레이더) 탐사를 통한 공동(空洞)조사를 실시해야 한다.
그러나, 고가의 GPR 장비를 가진 시군은 도 내에 단 한 곳도 없으며, 명확하지 않은 지하시설물의 위치, 관리주체가 다른 지하시설물에 대한 미지로 지하시설물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도 미비한 실정이다.
이러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지난 4월 15일 제383회 경기도의회 제2차 본회의에서 ‘경기도 지하안전 관리 및 유지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이 최종 통과됐다.
조례 개정을 통해 그동안 정책적 운영에 그쳤던 ‘경기도 지하안전지킴이 제도’가 명문화되어 제도적 틀을 갖추게 되었으며, 도지사에게 지하개발사업 현장에 대한 점검과 자문 책임이 부여되었다.
또한, 경기도와 시군, 관계기관이 협의체를 구축해 공동 대응방안을 마련하고, 특히 GPR탐사 등의 지반침하 발생에 대한 기술지원도 하도록 했다.
경기도는 이 조례를 기반으로 시군의 수요를 파악해 GPR탐사 장비를 도입하고, ‘경기도 지하시설물 안전관리 협의체’ 운영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참으로 칭찬할 만한 신속한 대처다.
지반침하 사고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오래된 하수관, 무리한 굴착공사, 예산의 현실에 가로막혀 손을 놓고 있는 순간들이 누적된 구조적 위기가 싱크홀로, 공동(空洞)으로 터져 나오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방치하면 언젠가 반드시 드러난다.
정치가 해야 할 최소한의 책임은 이처럼 일상에 숨어 있는 위험을 사전에 차단하는 일이다. 이번 조례 개정은 바로 이러한 구조적 위험을 방치하지 않겠다는 의지이며 예방을 제도화하는 출발점이다.
우리는 이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식의 ‘사고 이후’가 아닌 ‘사고 이전’의 대응으로 도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나가야 한다. 그 걸음에 우리 의회가 함께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