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 아이는 ‘소유물’이 아닙니다…역행하는 아동 인권 현실

2025.05.08 13:30:21 6면

최근 5년간 아동학대 증가세 지속…친부모 가해 77%
출생 직후 살해·노키즈존까지…100년 지난 ‘어린이’ 호칭 무색

 

어린이를 인격체로 존중하자는 방정환 선생의 외침이 100년이 지났지만, 우리 사회의 아동 인권은 여전히 취약하다. 아동학대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으며, 가정 내 폭력부터 출생 즉시 살해된 냉장고 유기 사건까지 극단적인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SNS와 일상 속 차별적 언어, 노키즈존 같은 배제 문화도 여전하다. 전문가들은 어린이를 ‘소유물’이 아닌 독립된 인격체로 대하는 사회적 인식 전환이 절실하다고 지적한다.

 

 

◇ “어린 것도 사람입니다”…100년 전 방정환의 외침, 오늘은?

 

과거 한국 사회에서 어린이는 이름조차 없는 존재였다. ‘애들’, ‘어린 것’ 등으로 불리며 인격체로 대우받지 못했다. 1921년 소파 방정환 선생이 아이를 인격을 지닌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하며 ‘어린이’라는 호칭을 만들었고, 1923년에는 색동회를 창립하고 ‘어린이날’을 제정했다. 그러나 100년이 지난 지금도 어린이는 여전히 폭력과 차별의 대상이다.

 

가정에서는 힘이 약하다는 이유로 학대하고, 사회에서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을 ‘어린이’에 빗대는 표현이 일상처럼 사용되고 있다. 경기신문은 어린이라는 이유로 벌어지는 인권 침해의 실태를 짚는다.

 

◇ 아동학대 계속 늘어…‘부모’가 가해자인 현실

 

폭력에 대항할 능력이 없는 어린이를 향한 학대는 해마다 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아동학대는 2020년 1만 6149건에서 2021년 2만 6048건, 2022년 2만 5383건, 2023년 2만 8292건, 2024년에는 2만 9735건으로 계속 증가하고 있다.

 

2023년 기준 아동학대 유형 중 신체적 학대가 56.7%(7266건)로 가장 높았고, 정서적 학대가 26.3%(3373건), 성학대가 2.9%(371건)였다. 검거된 아동학대 가해자 중 77.4%가 친부모였다. 최근 5년간 총 6만 317명의 검거자 중 4만 6692명이 친부모로 확인됐다.

 

전문가들은 잘못된 양육관을 가진 부모가 아동학대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한 아동보육기관 관계자는 “양육에 필요한 지식이나 기술이 부족한 부모일수록 폭력이나 통제를 쉽게 사용한다”며 “이런 유형은 학대가 반복될 가능성이 높고,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부모 대상 교육은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여성청소년과 경찰 관계자는 “이력이 있는 부모를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어도 실제 참석률은 낮다”며 “일이 바쁘다는 이유로 빠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성인을 강제로 교육장에 소환하기도 어렵다”고 밝혔다.

 

 

◇ “너는 내 거야”…자녀 살해까지 이어지는 왜곡된 소유 의식

 

학대가 극단으로 치닫는 경우도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아이를 독립된 존재가 아닌 ‘내 것’으로 여기는 잘못된 인식이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지난달 15일, 용인시 수지구의 한 아파트에서는 50대 남성이 아내와 자녀를 포함한 일가족 5명을 살해했다. 그는 분양사업 실패로 과도한 빚을 지게 되자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지난 3월 9일에도 수원시 장안구에서 40대 남성이 중학생, 초등학생 자녀와 아내를 살해한 후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3억 원의 빌린 돈을 돌려받지 못한 상황을 비관한 것이 동기였다.

 

2023년에는 출산 직후 아이를 살해한 사건도 잇따랐다. 그해 6월, 2018년과 2019년에 아이를 출산한 직후 각각 살해하고 시신을 아파트 냉장고에 보관해온 여성이 긴급 체포됐다. 보건당국 감사 결과, 출산 기록은 있으나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사례가 발견되며 사건이 알려졌다.

 

이후 용인에서는 제왕절개로 출산한 신생아를 하루 만에 숨지게 하고 시신을 야산에 유기한 친부모와 외조모가 검거됐다. 대전에서는 한 달 된 영아를 하천가에서 살해한 뒤 유기한 사건도 발생했다. 경찰은 전국적으로 939명의 아이의 행방을 추적하는 대대적인 수사에 나섰다.

 

또 다른 사건으로, 지난해 수원중부경찰서는 교회와 학원을 함께 운영하던 60대 목사를 아동학대 혐의로 송치했다. 그는 2021년부터 10대 아동 4명을 상습적으로 굶기고 무릎을 꿇린 채 폭행했으며, 부모를 ‘그 남자’, ‘그 여자’로 부르게 하는 등 정서적 학대도 병행했다. 결국 그는 징역 8년을 선고받았다.

 

 

◇ '~린이'부터 노키즈존까지…일상 속 차별이 아동인권 해친다

 

아동을 낮춰보는 시선은 말에서도 드러난다. 주식 초보를 ‘주린이’, 골프 입문자를 ‘골린이’, 요리를 못하면 ‘요린이’로 부르는 등 어린이에 대한 비유는 수많은 분야에서 사용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22년 “이 같은 표현이 왜곡된 인식을 확산시킨다”며 공공기관과 방송에 개선을 권고했다. 인권위는 “이 표현이 확산되면 아동이 왜곡된 시선 속에서 자존감 없이 성장하게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2017년 인권위는 노키즈존에 대해서도 “나이를 이유로 시설 이용을 제한하는 것은 평등권 침해”라고 판단했다. 2023년 8월에는 백화점 VIP 라운지의 아동 출입 제한에 대해서도 차별로 간주하고 철회를 권고했다. 노키즈존은 매장의 통제를 위해 등장했지만, 인권위는 “영업의 자유는 공익을 해칠 정도로 무제한적으로 보장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 “어린이도 자아를 가진 사람”…사소한 존중에서 시작돼야

 

심리학계는 아이를 단지 보호 대상이 아닌 ‘존중받아야 할 존재’로 인식해야 아동 인권이 강화될 수 있다고 본다.

 

익명을 요구한 심리학과 교수는 “아이는 인격을 가진 존재이고, 자신만의 자아로 살아가야 한다”며 “이들을 소유물로 보는 인식이 범죄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정치하는엄마들 관계자도 “어린이는 특별한 보호가 필요한 존재지만 동시에 차별의 대상이 되어선 안 된다”며 “노키즈존처럼 아이를 배제하는 문화는 아이를 인격체로 인정하지 않는 대표적 사례다. 우리는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 어떤 사회를 만들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 경기신문 = 박진석 기자 ]

박진석 기자 kgsociet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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