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대마, 그 의도적으로 가벼운 이야기에 대하여

2025.07.21 14:34:34 10면

풀 - 이수정

 

다큐멘터리 ‘풀’은 제목이 잘못된 작품이다. 이 영화가 처음 나왔을 때 사람들은 그저 평범한 환경영화, 생태 영화쯤으로 알았다. 그런데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심의 등급이 청소년관람불가로 나온 것이다. 풀이? 풀 얘기가? 이게 뭐지? 아마도 ‘풀’의 원래 제목은 ‘떨’이었을 것이다. ‘떨’은 은어이다. 대마초를 비하해서 부를 때 쓰는 말이다. ‘떨을 피다’, ‘떨을 하다’는 한국 대중들 사이에 ‘마약을 하다’로 인식돼 있다. 다큐 ‘풀’은 대마를 키우는 사람들 얘기이다. 대마의 합법화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다. 일종의 액티비스트들의 얘기이며 대마라는 실체가 가진 본질, 그 정치경제학에 관한 얘기이다. 따라서 이 영화는 보는 사람들에 따라 상당히 논쟁적일 수 있다. 그건 마치 동성애 문제를 두고 기독교도들 상당수가 극심한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대마초 문제는 한국 사회의 또 다른 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만든 이수정 감독의 접근 방식은 다소 쾌활한 우울모드다. 여기 나오는 사람들 대다수는 밝은 표정들이지만 그들 중 몇몇은 본의 아니게 감옥에 갔거나 갔다 왔고 그래서 한국을 아예 떠났기 때문이다. 영화는, 대마에 대한 사회적 논쟁이 현재까지는 여전히 불법임을 의식한 듯 의도적이고 평면적으로 보이게끔 찍었다. 목소리와 주장을 강하게 담아내기보다는 ‘대마의 사람들’을 스케치해 나열식으로 보여줌으로써 전체 톤앤매너를 상당히 자제시키려 하는 느낌을 준다.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면, 이번은 문제 제기이자 일종의 이슈 파이팅이니 만큼, 그리 깊이 들어가지는 않겠다는 식이다. 이 정도로도 청소년관람불가가 나오는 시대 환경 탓을 의식했을 것이다.
 
지난 쿠데타 정부(윤석열)는 마약과의 전쟁을 정권 연장 수단으로 활용했다. 그 과정에서 대마 역시 양귀비, 히로뽕, 아편과 같은 카테고리로 들어갔다. 그토록 천박했던 정부의 기조는 약화 됐지만, 대마 얘기는 여전히 한국에서 새로운 진영 논리의 화약고로 쓰일 가능성이 크다. 다큐 ‘풀’이 지녀야 할 프로파간다의 수위는 애초부터 상당히 누그러뜨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영화 ‘풀’은 대마가 지닌 의약품으로서의 가치, 그 효용성을 보여주는 데 주력하는 ‘척’ 한다. 그러나 사실 이 다큐는 상당 부분 무정부주의적 색채를 지니는 것이다. 자신의 정신적 뿌리를 과거 1960년대 미국의 히피즘과 연결한다. 따라서 사실은 다소 반체제적이고 불온한 내용들이다. 기존 거버넌스, 기성 질서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정작 재미있는 것은 그 ‘불온성’을 정확히 알아보는 사람들, 특히 당국자들이 많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기에는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이 많지도 않다. 지난달 6월 18일에 개봉돼 현재까지 1004명만이 봤다. ‘풀’에 대한 얘기는 여전히 철조망 안에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이 금기의 사회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대마에 대한 자본주의 사회 경제학은 영화 속에 나오는 랩퍼 빌 스택스나 아티스트 원 브로, JJ 진 같은 이의 입을 통해 어눌하게나마 이렇게 전달된다. 국가는 인간을 한 개인으로 보기보다는 필요한 노동력으로 보기 때문에 스스로 자신을 자유롭게 이용하는 것에 대해 극히 경계한다. 각 개인이 스스로의 행복을 추구하기보다는 국가가 요구하는 경제단위의 노동 일꾼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대마는 신성한 노동에 반하는 물질이기에 금지 약물이 될 수밖에 없어 왔다는 것이다. 대마 금지가 새마을 운동의 박정희 시대에 시작된 이유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독점을 넘어서기 위해 블록체인이 만들어진 것처럼 인간에게 좀 더 자유로운 공동체를 위해 대마의 합법화가 필요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바로 대마초 합법화 시민연대 멤버 같은 이들이다. 다큐는 그 사람들의 생각과 주장을 에둘러 보여 주려 애쓴다.
 
이제서야 일부 사람들이 알고 있다시피, 대마는 인간 신체에 필요한 카나비노이드란 성분을 지니고 있고 이것이 대체로 항우울제와 각종의 진통제로 쓰이며 치료 약재가 되는 약초, 풀이다. 현대적 질병에 최적화된 의약재임에도 불구하고 대마를 재배하고 의학적으로 사용하는 것에는 수많은 제재가 가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천호균 같은 사업가(유기농 제품 쌈지 대표)는 당국의 허가 하에 비교적 큰 규모로 대마를 키운다. 그는 지금과 같은 기후 위기 시대에 탄소 흡입량이 그 어느 식물보다 높다는 대마의 재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환경생태운동가이다. 그래서 그는 대마를 ‘해방’시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관여하는 ‘대마자유연대’가 결국 평화와 통일운동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대마 농장은 휴전선 인근 파주에 있고 여기서 자진해서 농사를 짓고 있는 사람들은 일탈이 아니라 개인의 자유와 행복을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이다. 영화는 국가냐 개인이냐, 체제 이데올로기란 과연 무엇과 누구를 위해 헌신해야 하는 가를 우회적으로 지적해 나간다.
 
가이 리치의 2020년 영화 ‘젠틀맨’에서 마피아인 미키 피어슨(매튜 매커너히)은 대마의 대량생산으로 유럽 유통망을 장악해 막대한 자금을 모은다. 브렛 헤일리란 감독이 만든 ‘더 히어로’(2018)에서 주인공 리 헤이든(샘 엘리엇)은 퇴락한 서부영화 전문 배우인데 하루의 무료함을 견디기 위해 거의 매일같이 옆집 남자와 제일 먼저 시작하는 것이 마리화나이다. 이무영 감독의 발칙한 영화 ‘아버지와 마리와 나’(2008)는 속내의 제목이 ‘아버지와 마리화나’였던 작품이다. 기존의 영화들은 지난 45년간 쇠창살 안에 가둬 놨던 약초의 이미지를 순응적으로 표현한 경우가 많았다. 이번 이수정 작 ‘풀’은 그런 관습에 대한, 사상의 전복을 꾀하고 있는 영화라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물론 그 불온성은 다소 취약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문제 제기로서는 효용성이 크다. 적어도 사람들은 대마의 또 다른 이름들, 곧 헴프(새로운 나무), 마리화나 혹은 위드(질긴 생명력을 뜻한다)라는 단어를 알게 된다. 삼베옷의 그 삼이 대마 줄기라는 사실도 새삼 알게 된다. 대마 줄기에 대해서는 허준의 동의보감 때부터 그 존재감이 인정돼 왔다. 그 오랜 세월을 같이해 온 ‘풀’이 왜 지금은 무작정 금지되고 있는지 의문일 수 있다. 그러나 이 다큐는 법적 금지라는 물리적 측면보다는 인간의 생각과 자유를 규제하는 이데올로기 자체에 문제의식을 들이대는 쪽이다. 대마는 생명공학에서 중요해지고 있고 글로벌 바이오산업의 주요 제품으로 활용되겠지만 한국은 여전히 ‘간자당’ 사람들(사이에 낀 사람들 모임)이 4월 20일(대마의 날)에 즐기는 파티의 매개체일 뿐이다. 간자당 사람들은 새마을 운동 티셔츠를 대마을 운동으로 바꿔 입고 다닌다.
 
그렇게 영화 ‘풀’은 의도적으로 귀엽게 만든 작품이다. 그러나 끝내 우울해지게 만든다. 대마는 불법이지만 그것을 불법으로 규정한 한국의 권력들은 더 큰 불법을 저지르는 파시스트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그 잘못된 권력이 만든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다큐 ‘풀’이 말 하려고 하는 대목은 바로 그 부분에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아직 일부 소수의 극장에서 상영 중이다. 찾기 힘들 것이다. 이 작품이 보는 영화가 아니라 읽는 영화인 이유이다.

오동진 chowon@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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