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전시] 무너지지 않는 성, 남한산성이 전하는 자주

2025.09.02 15:41:20 10면

남한산성역사문화관, '침묵속의 무장, 남한산성 2.0'

 

치욕의 겨울을 견디며 무너진 자존을 다시 세운 산성, 남한산성은 치욕을 결의로 바꾼 자주와 수호의 성으로 거듭났다.

 

병자호란의 포위와 항복의 기억은 치욕의 역사가 되었지만 동시에 다시는 무너지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이어졌다. 이번 전시는 그 상흔 위에 쌓아 올린 새로운 무장, 그리고 기억과 정신의 성으로 발전해 온 남한산성의 역사를 되짚는다.

 

남한산성역사문화관 기획전 '침묵 속의 무장, 남한산성 2.0'은 총 30점의 유물을 통해 병자호란 이후 남한산성이 어떻게 군사적 요새에서 기억의 성으로 진화했는지를 보여준다.

 

주요 전시품으로는 정조의 지시로 간행된 '어제 병학지남'(남한산성 개원사판), 영조가 수어사 김시묵에게 내린 '밀부유서', 숙종이 사액한 '현절사 숙종대왕 어제 편액', '좌승당기 편액 탁본첩', 봉암성 출토 개축전돌 등이 있다.

 

 

1부 ‘난공불락의 산성을 완성하다’에서는 병자호란 이후 진행된 성곽 증축과 방어체계 보강을 다룬다.

 

인조는 연주봉과 남쪽 성벽에 옹성을 축조해 성의 취약점을 보완했으며 숙종은 봉암·한봉 일대에 외성과 포대를 설치하고 신남성을 개축해 동·남부 방어선을 강화했다.

 

영조는 신남성에 돈대를 세워 적의 동향을 감시하고 포격이 가능하도록 했고 정조는 성곽 전체를 대대적으로 재정비하며 네 개의 성문에 상징적 이름을 붙였다. 이 과정에는 주민들도 적극 참여해 술과 음식을 마련하고 어린아이들까지 회와 벽돌을 날랐다.

 

전시에는 '봉암성 출토 전돌'과 '남한산성 축성 공로첩', '교지' 등이 함께 공개돼, 산성이 민중과 군이 함께 지켜낸 요새였음을 보여준다.

 

 

2부 ‘용호, 호방하고 용맹하게 일어나’는 남한산성이 단순한 요새를 넘어 ‘읽고 훈련하는 군사 도시’로 자리잡은 과정을 다룬다.

 

수어청은 수도 한양의 동남부를 방어하기 위한 중앙 군영으로, 국왕으로부터 밀부를 받아 비상시 독자적으로 군을 지휘할 수 있었다. 산성 안에는 300여 종의 무기와 화약이 분산 배치되었고, 병사들은 활과 조총을 함께 사용하는 전술로 훈련했다.

 

정조는 '병학지남'의 수정 간행을 직접 지시하며 군사훈련 강화를 도모했고, 남한산성에서 간행된 '어제 병학지남' 초간본은 그림과 한글 해설을 더해 병사들이 쉽게 익힐 수 있도록 했다.

 

2부에서는 '어제 병학지남'을 비롯해 '밀부유서'와 '좌승당기 편액 탁본첩'이 전시돼, 남한산성이 언제든 전쟁에 대비할 수 있는 전략적 거점이었음을 보여준다.

 

 

3부 ‘항쟁을 기리는 장소가 되다’는 병자호란 당시 끝까지 항전을 주장하며 순절한 삼학사 홍익한, 윤집, 오달제를 기리는 현절사의 역사를 조명한다.

 

숙종이 직접 사액한 현절사 편액과 오달제가 심양으로 압송되며 남긴 편지, 윤집 후손이 정리한 '가세구문'등이 전시된다.

 

영조는 이들의 절의를 기리기 위해 후손들에게 특별 과거인 충량과를 허락했으며 현절사는 무기가 아니라 정신으로 항거한 역사를 담은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아울러 이번 전시는 남한산성이 근대 이후에도 저항과 독립의 상징으로 이어졌음을 보여준다. 1896년 항일 의병이 이곳에 집결했고, 2014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며 인류 공동의 유산으로 자리했다.

 

남한산성이 치욕에서 결의로, 무력에서 기억으로 변모한 역사를 통해 오늘의 관람객에게 자주와 독립의 의미를 다시 일깨운다.

 

전시는 컬러 유니버설 디자인(CUD)과 점자 촉각 체험물 등 사회적 약자를 배려한 요소를 반영했다. 또 9월부터는 어린이 체험교육 ‘수어청의 병사 박상번의 하루’가 진행돼 성쌓기와 활쏘기 등 전통 무예를 직접 체험할 수 있다.

 

병자호란의 상처와 항전의 정신, 그리고 오늘날까지 이어진 자주의 역사를 담아낸 '침묵 속의 무장, 남한산성 2.0'은 2026년 7월 12일까지 남한산성역사문화관에서 이어진다.

 

[ 경기신문 = 류초원 기자 ]

류초원 기자 chowon@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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