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대학생 박모(22)씨 사망 사건은 해외에 나간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비상등을 켰다. 그러나 정부의 대응은 여전히 ‘사건·사고 발생 후 영사조력’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제는 사후대응이 아닌 사전예방 중심의 국가 보호체계로 근본부터 재설계해야 한다.
21세기는 말 그대로 대이주(great migration)의 시대다. 교통과 통신의 혁명적 발달로 사람과 자본, 정보의 이동이 폭발적으로 늘었고, 국경의 의미는 빠르게 희미해지고 있다. 유엔 인구국과 세계관광기구에 따르면 자국 밖에서 사는 인구는 전 세계 80억 인구의 4%, 매년 해외로 나가는 국제 관광객은 17.5%에 달한다. 이제는 ‘어디서 태어났느냐’보다 ‘지금 어디에 있느냐’가 더 중요한 시대다.
대한민국도 예외가 아니다.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 이후 출국자는 폭발적으로 늘어 지난해 2,800만 명을 넘어섰다. 하루 평균 8만 명이 국경을 넘나들고, 90일 이상 해외에 체류하는 유학생·주재원·현지 취업자·영주권자·복수국적자 등도 300만 명에 육박한다. 체류 기간과 관계없이 이들 모두가 외부 위협에 노출된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점이 문제의 본질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첫째, 법률 명칭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2021년 제정된 ‘재외국민보호를 위한 영사조력법’은 국가의 보호 의무를 임시적·보조적 성격으로 제한하는 인상을 준다. 헌법 제2조 2항이 명시한 재외국민 보호 의무를 온전히 담아내려면, 법 명칭을 ‘재외국민보호법’으로 변경해야 한다.
둘째, 재외국민 보호와 영사업무를 외교부의 부수적 업무로 여겨온 관행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외교부는 재외공관을 지휘하며 주재국 정부와의 교섭을 담당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에 집중하되, 재외동포청은 한인회·동포 언론·한국기업 등 현지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사회적 협력망을 구축해야 한다. 경찰청은 경찰영사와 한인 자경단, 현지 경찰과 협력해 긴급구조와 범죄 피해자 지원을 전담하고, 국가정보원은 대테러 및 국제범죄 정보 공유를 상시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재외국민 보호는 특정 부처의 업무가 아니라, 해외에 주재관이나 직원을 둔 모든 정부기관이 합심해 총력 대응해야 할 국정과제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셋째, 선진국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자국민 보호를 국가의 핵심 책무로 명문화했다. 미국은 1868년 제정한 법률(22 USC 1732)에서 “해외에서 구금된 미국 시민을 구출하는 것은 대통령의 의무”라고 규정했다. 9·11 뉴욕 테러 (2001) 이후에는 국토안보부를 신설하고, 비자 발급, 해외정보 공유, 위기관리 체계 등을 전면 개편했다. 이번 사건을 교훈 삼아 우리도 외교부 장관이 위원장인 현 ‘재외국민보호위원회’를 대통령 직속 위원회로 격상하고, 외교부 내에 범부처가 참여하는 재외국민보호 통합상황실을 상설화해야 한다. 또한 ‘재외동포기본법’에 재외국민을 포함한 전(全) 재외동포 보호 조항을 명문화해 법적 근거를 강화해야 한다.
머지않아 우리는 해외여행자 3000만 명, 재외동포 1000만 명 시대를 맞게 된다. 더는 사건·사고가 터질 때마다 ‘사후약방문식’ 대책으로 대응할 수 없다. 위기 발생 이전부터 작동하는 예방 중심의 보호체계가 필요하다. 단 한 명의 국민, 단 한 명의 동포라도 위난에 처했을 때 국가가 어떻게 구조하고 지킬 것인가, 여기에 국력과 행정력을 집중해야 한다.
국가의 품격은 위기의 순간에 드러난다. 이번 한국인 대학생 사망 사건과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지금이 바로 재외국민보호 체계 전면 재설계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동시에 해외 체류·거주·방문 국민들도 현지 법과 관습을 존중하고, 공관·한인회와의 비상연락망을 상시 가동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대한민국이 진정한 선진국으로, 한국인이 존경받는 세계인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