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무상교복' 세금이 해외로 빠져나간다…외국산 교복의 생태계 파괴

2025.12.10 12:44:04 6면

단가 저렴한 외국산…무상교복 지원금으로 고수익
공공재 산업인데…외국산 걸러내지 않는 교육당국
낭떠러지 몰린 국내산 교복…대규모 적자·폐업 위기
소비자 속이는 '원산지 바꿔치기'까지…행감서도 지적

 

경기도교육청이 매년 800억 원 넘는 예산을 투입하는 '무상교복' 정책이 사실상 해외 공장 지원사업으로 변질되고 있다. 동남아에 대형 생산시설을 둔 외국산 교복업체가 학교 입찰에서 독주하는 동안, 국내 공장은 폐업과 구조조정으로 빠르게 무너지는 모습이다.


그러나 정작 교육당국은 국내산·외국산을 구분해 관리할 장치조차 마련하지 않았다. 교복을 공공재로 규정해 가격까지 관리하는 교육부·교육청의 설계 자체가 헛돌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국민 혈세 대규모 유출되는데…막지 않는 교육당국


10일 경기신문 취재에 따르면, 경기도교육청은 2019년부터 무상교복 정책에 매년 수백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올해에는 중·고등학교 신입생 1명당 40만 원을 지원해 총 816억여 원을 투입했다. 


이 세금은 대부분 외국산(인도네시아산) 교복 업체의 수익으로 돌아가고 있다. 해당 업체는 올해에만 경기도에서 90억 원, 전국에서 180억 원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추정된다. 경기도 기준 2020년과 비교했을 때 125% 증가한 수치로, 매년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높이고 있다. 무상교복 지원금의 상당수가 인도네시아 의류 공장의 수익으로 직결되는 셈이다.

 
2017년에 사업을 시작한 외국산 업체가 빠르게 시장을 과점할 수 있었던 이유는 세금 유출을 방지하는 경기도교육청의 장치가 미비했기 때문이다.


현재 교복 구매는 교직원·학부모·학생 등으로 구성된 교복선정위원회가 직접 업체와 계약하는 '학교주관구매' 방식으로 이뤄진다. 교복선정위원회가 계약 업체를 정할 때 경기도교육청의 가이드라인을 따르는데, 이 가이드라인에는 국내산과 외국산을 가려낼 변별력이 없다.


경기도교육청의 '교복 학교주관구매 적격업체 선정 평가표'(1단계 평가)에는 '국산 섬유제품 인증 여부' 항목이 있다. 교복의 전 품목이 국산 섬유제품임을 인증하면 5점, 일부 품목만 인증하면 3점, 미인증 시 0점을 준다. 


외국산 업체는 일부 소량 품목만 국내에서 생산하고 나머지는 해외에서 생산하는 방식으로 3점을 받는다. 100점 만점 기준으로 80점만 넘기면 통과라서 2점 차이는 아무런 변별력이 없다.

 


인천시교육청의 경우 원산지 증빙서류를 제출하지 않으면 크게 감점해 입찰 대상에서 배제하는 등 국내산 업체를 보호하는 기준을 뒀지만, 경기도교육청을 비롯한 전국 16개 시도교육청은 이같은 기준을 마련하지 않았다. 똑같은 문제가 인천을 제외한 전국 모든 지역에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해당 외국산 업체는 인천에만 입점하지 못했다.


2단계 평가는 블라인드 심사라서 원산지와 업체명을 확인할 수 없다. 전문가가 아닌 교복심사위원회가 국내산과 외국산의 품질 차이를 판별하기도 쉽지 않다. 심지어는 외국산 업체가 원산지를 대한민국산으로 표시했다가 실제 납품 시점에는 인도네시아산으로 바꾸는 '원산지 바꿔치기' 사례도 즐비하다.


경기도교육청 규정에 따르면 교복선정위원회는 계약을 맺은 업체를 수시로 방문해 제작 과정을 점검해야 하지만, 공장이 해외에 있으니 직접 방문점검할 수도 없다. 제작 과정 검증을 거치지 않은 교복이 학생들에게 돌아가는 셈이다. 


결국 단가가 국내산보다 약 30% 저렴한 외국산 업체가 학교 입찰 경쟁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한 구조다. 

 


◇ 낭떠러지 놓인 국내산 교복산업…"희망이 안 보여"


국민의 세금이 투입되는 '공공재' 산업은 국내에서만 운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세금을 들여 자국 내 기업을 보호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경찰복, 군복, 소방복과 같은 공공성을 띤 의상 산업도 국내산으로만 운용된다.


무상교복 정책 역시 교복이 공공재라는 전제에서 시행됐다. 가정 환경이 어려운 학생들도 차별 없이 교육받고 학부모의 경제적 부담을 덜겠다는 취지로, 교복의 공공성을 인정한 것이다. 교육부 역시 교복을 공공재로 보고 가격관리 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경기도교육청을 비롯한 교육당국은 수백억 원의 세금이 투입되는 교복 산업에서 국내산 업체들을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 2017년 외국산 교복 업체가 최저가 낙찰 경쟁에 뛰어들면서부터 기존 국내산 업체들의 매출은 급락했으며, 일자리를 대폭 줄이다가 줄줄이 폐업하는 실정이다.


지난해부터 교복을 의무화한 프랑스는 자국 내에서 생산한 교복만 허용하고 있어 일자리 창출 효과가 기대되고 있으나, 한국은 반대로 일자리가 감소하는 것이다.


실제 2017년 외국산 교복 업체가 출범하면서부터 국내산 교복 산업은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경기신문 취재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전국 국내 섬유·봉제 공장 23곳 중 3곳이 폐업했다. 전국 근로자 1641명 중 496명(30%)이 일자리를 잃었다. 경기도에서도 52명(31%)이 실직했다. 


일 년 중 특정 기간에만 수입이 들어오는 업계 특성상 이같은 타격은 훨씬 치명적이다. 공장 유지비 및 인건비는 그대로인데 일시적 수익은 급격하게 줄었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공장 대다수가 대규모 적자를 떠안고 있으며 폐업 위기에 놓여있다.


익명을 요구한 교복 공장 대표는 "지난 몇 년간 매출이 40% 줄었다. 외국산 업체 쪽으로 물량이 다 빠져버렸다"며 "대출을 받아가면서까지 죽어라 버티고 있는데 솔직히 그만둬야 하나 싶다"고 토로했다. 


한 교복업계 관계자는 "다른 공공재는 전부 국내산 보호를 받는데, 똑같은 공공재인 교복은 외국산이 들어와 업계 생태계가 완전히 무너져내렸다"며 "적어도 같은 조건에서 경쟁하게끔 교육당국이 나서서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소비자 우롱하는 '원산지 바꿔치기'…행정감사서도 지적


이같은 원산지 불투명성 문제는 소비자에게도 피해를 주고 있다. 원산지를 모르고 구매했다가 뒤늦게 학교에 민원을 제기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실제 지난 9월 과천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교복선정위원회가 인도네시아산 교복을 낙찰하면서 뒤늦게 사실을 알아챈 학부모들의 비판이 일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학부모는 "국민 세금으로 지원되는 교복을 인도네시아산으로 고른 건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며 "내 아이가 입을 옷인데 믿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달 19~20일 경기도교육청 행정사무감사에서도 '원산지 바꿔치기' 문제가 지적됐다. 경기도의회 교육행정위원회 소속 이은주 의원(국힘·구리2)는 "국산 교복이라고 믿고 선택했는데 실제로는 외국산이 납품됐다면 이는 신뢰를 크게 훼손한 것"이라며 "부적격 업체에 대해 손해배상과 같은 강력한 행정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교육기획위원회 소속 임광현 의원(국힘·가평)도 "원산지 허위 기재는 대외무역법 위반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원산지 바꿔치기 현황을 전수조사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경기도교육청은 이른 시일 내에 매뉴얼을 점검하고 개편하겠다는 입장이다.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는 "학교와 전문가 의견, 타 교육기관 사례를 수렴해 규정을 고치고, 외국산 업체에 대한 변별력을 높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까지 블라인드 테스트를 할 때 업체명을 비공개하면서 원산지 표기가 같이 가려지는 문제가 있었는데, 앞으로는 원산지를 확인할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고 했다.

 

[ 경기신문 = 안규용 기자 ]

안규용 기자 gyong@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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