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에세이] 겨울바람과 호숫가의 고요

2026.01.07 06:00:00 13면

 

낙엽 쓸리는 소리에 고향집 마당과 어머니가 생각났다. 서재로 돌아와 2000년도에 발행한 나의 시집 '태양의 이마'에서 '젖과 꿀이 흐르던 시절'이란 시를 펼쳤다.

 

‘그을음 꺼멓게 오른/ 처마지붕 위로/ 저녁연기 피어오르고/ 고드름 팔뚝 같이 매달려/ 낙숫물 소리 여위어 갈 때/ 어머니/ 솜저고리 꺼내 입고/ 질화로 곁에서 바느질할 때/ 아랫목/ 이불속으로 파고들던/ 철부지의/ 어릿광대짓/ 당시는 몰랐다/ 젖과 꿀이 흐르는 시절인 것을’

 

창 밖엔 지금도 바람 소리가 가시지 않는다. 겨울바람과 눈 속에서 겨울나무와 식물들은 어떻게 살아낼까 싶다. 나무에게는 두 번의 삶이 있다고 한다. 첫 번째 삶은 나무 자체의 삶이고, 두 번째 삶은 목재로 쓰인 뒤의 삶이다. 일본의 법륭사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이라고 하는데 무려 1300년이 되었다는 것이다. 노송나무 기둥도 1300년이 되어 수령은 2000년쯤 되는 나무를 기둥으로 쓴다고 했다. ‘천년 거목’의 공통점은 모두 야생이라는 완전경쟁 환경에서 자랐다는 것이다. 온갖 풍상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그 어떤 어려움도 이겨내는 단단함을 갖춘 결과물이다.

 

'생전에 남긴 나무의 마음 나무의 생명'이라는 책에서는 대패를 나무에 대면 지금도 그런 나무는 상품(上品)의 향기가 난다며 '아직 살아 있다'고 한다. 향기가 나는 건 나무로써의 가치를 잃지 않았다는 뜻이라고 한다. 오래 산 나무를 연구한 실물학자 '에드먼드 슐번'도 같은 얘기를 한다. 좋은 환경에서 바르게 성장하는 나무들이 오래 살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좋지 않은 환경에서 자란 나무들이 오래 산다고 '악한 환경의 나무'를 이야기하고 있다.

 

식물의 일생은 씨앗을 맺어 퍼트리는 데 있다. 벌과 나비가 씨앗을 퍼트리는 식물도 있지만, 식물의 10–30%는 바람을 이용한다고 한다. 바람을 이용하는 식물 중 70%는 온대기후에 집중되어 있다, 겨울과 봄철 바람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민들레는 솜털을 씨앗에 붙여서 그 가벼움으로 약 10km를 날다간다는 것이다. 헬리콥터 씨앗이라고 불리는 양 날개를 지닌 단풍나무의 씨앗도 5km 정도를 날아간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겨울 매서운 바람이 없다면 지구의 많은 식물은 씨앗을 맺거나 퍼트리는 일이 어려워 생존이 위험해진다는 것이다. 알고 보면 지구의 생명체는 기후를 잘 이용하며 살고 있다. 인간의 삶도 결코 다르지 않은데 기후 위기를 소홀히 하고 지내는 것 같다.

 

따뜻한 햇살이 좋아 덕진공원 호숫가 정자 곁 의자에 앉아 호수의 풍경에 마음을 주고 있었다. 그런데 물가에서 긴 목을 세우고 앞산을 바라보는 백로(해오라기)에 눈에 멎었다. 깨끗한 몸으로 세상을 초월해 높게 멀리 바라보는 새의 형상이 ‘새 중의 선비’일까 하는 마음이 앞섰다. 한평생 깨끗한 몸가짐으로 아무거나 배불리 먹지 않고 부정을 멀리 하는 저 새의 정신이 2026년 새해의 내 마음가짐을 새롭게 일깨우는 것만 같았다.

 

지금처럼 새해가 되면 금년의 열두 달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이성적인 무게감이 가슴을 무겁게 한다. 선인들은 일촌의 광음(光陰)도 가볍게 여기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사라져 가는 인생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가에 따라 소멸되지 않는 삶의 가치가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김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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