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약점조차 흥행의 요소가 되는 영화가 있다면

2026.02.16 13:04:12 16면

‘왕과 사는 남자’ – 감독 장항준

 

개봉 직후 폭발적인 입소문과 함께 2주 만에 200만 관객을 넘은 장항준 감독의 ‘왕과 사는 남자’는 인기와는 다르게 몇 가지 치명적인 약점이 있는 영화이다. 흥미롭고 특이한 점은 그 흠결들조차 대중들이 너그럽게 받아들이며 즐기고 있다는 데에 있다. 이 영화의 패착은 다소 즐비하게 나열되며 때론 불필요해 보이는 코미디의 요소이지만 오히려 그것이 흥행의 주요인이 되고 있다. 장항준은 슬랩스틱 형 코미디 드라마(‘라이터를 켜라’ ‘불어라 봄바람’ ‘리바운드’)에 장기가 있는 감독이다, 가 아니라 자신의 장르적 변신(‘기억의 밤’ ‘오픈 더 도어’)을 대중들에게 인정받지 못한 불운한 감독이었다. 어쩔 수 없이 감독은 자기가 잘하는 걸 해야 영화를 잘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건 당위의 사실이지만 한편으로는 서글픈 현실이기도 하다. ‘왕과 사는 남자’는 장항준 표 코미디 사극 그 자체이다.
 

 

그럼에도 내용은 사실 무거운 얘기이다. 옛날 작가 박종화가 쓴 '단종애사'와 같다. 조선 왕조 초기는 그야말로 피 바람의 역사였다. 특히 수양대군(훗날 세조)이 한명회와 함께 쿠데타로 실권을 장악했던 1453년의 계유정난 때 서울 종로의 재동(지금의 헌법재판소 일대)은 황보인, 김종서 등과 그 일파를 죽이느라 동네에 피가 넘쳐흘렀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그걸 덮기 위해 집안에 가지고 있던 초목회(草木灰, 연료로 썼던 풀과 나무를 태운 재)로 동네 전체를 덮어 이후 이곳은 잿골이라 불렸다가 한자어로 재동(齋洞)이 된 것이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바로 그 직후에 해당하는, 단종 폐위 - 세조 즉위(1455년) 2년 후인 1457년부터의 일을 그린다. 세조의 최측근이자 권력 실세인 한명회(유지태)가 성삼문 등 사육신이 단종 복위를 도모했다는 이유로 그들을 모두 척살하고 이를 알면서 방조했다는 누명을 씌워 상왕인 단종을 노산군으로 강봉한 후 강원도 영월의 한 고립된 섬, 청령포로 유배 보내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청령포는, 앞은 서강이 흘러 왕래가 어려우며 뒤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어서 나갈 수가 없다. 천혜의 감옥이다.
 
노산군 이홍위가 청령포에 갔다가 영월 관아인 관풍헌에서 사약 혹은 다른 방법으로 사망한 것은 단 4개월 만의 일이다. 6월에 유배지에 왔고 10월에 ‘살해’당했다. 이 짧은 시간은, 당시의 권력이 얼마나 잔인하고 참혹했는가를 보여준다. 영화는 단 4개월의 기간을 파노라마로 보여준다. 매우 영화적인 발상이자 착안인데다 그래서 이야기는 역동적이지만 과연 현실성과 개연성 면에서 얼마만큼 ‘윤색의 윤리학’을 지킬 수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영화는 상상력의 산물이다. 단 4개월간의 이야기지만 대중들은 그렇게 느끼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가 갖는 진정한 모토, 곧 권력의 잔혹함과 그 허망함에 대해, 우리 역사가 지닌 굴곡에 대해 정서적으로 공감하는 것으로 보인다. 극장 안이 눈물바다가 되는 이유이다.
 

 

영화의 주인공은 이홍위=단종=노산군(박지훈)이 아니라 청령포가 속한 광천골의 촌장이자 보수주인인 엄흥도(유해진)이다. 보수주인(保授主人)은 조선시대 유배지 관리인을 뜻한다. 엄흥도는 옆 고을 노루골에 권세가가 유배를 왔다 복권되는 과정에서 마을이 흥하게 됐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자기 마을에 권세가가 유배를 올 수 있도록 군감(박지환)에게 애걸복걸하지만 그게 잘 안되다가 지형을 직접 본 한명회에 의해 단종의 유배지로 청령포가 낙점된다. 엄흥도는 이곳으로 오는 권세가가 폐위된 상왕이라는 사실을 처음엔 추호도 알지 못한다.
 
영화의 서사는 엄흥도를 위시한 마을 사람들의 정치적 의식화를 점층적으로 이어 가도록 짜였다. ① 엄흥도 등은 누군가 유배를 온다고 좋아한다 ② 그 유배자가 단종이라는 걸 알지 못한다 ③ 이후 그가 단종이라는 걸 알게 되고 두려움에 떤다 ④ 단종과 함께 살아가는 게 불편하고, 따라서 불만을 품는다 ⑤ 단종에게 점점 동화한다 ⑥ 단종을 지키려 한다 ⑦ 단종을 어떻게든 보호하고 살리려 한다 ⑧ 단종의 죽음을 역사적으로 지켜내려 한다, 가 이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지닌 스토리의 골격이다. 단종이 삼촌의 쿠데타로 죽임을 당했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 거의 모두가 잘 알고 있다. 그건 영화로서는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결론이 이미 정해져 있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영화가 갖는 역동성은 어디서 끌어올 것인가. ⑤와 ⑦이다. 그리고 ⑧은 클라이맥스이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유약한 단종(마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역적으로 몰린 왕족)이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휘어잡는 계기가 되는 것은 호랑이 사냥이다. 마을 사람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자 마을의 왕으로 불리는 호랑이를 17살 나이임에도 화살 한 촉의 솜씨로 제압한다. 이 장면은 어쩌면 매우 상징적인데, 왕이 왕을 죽이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단종이 세조를 죽이고 왕권을 되찾으려는 의지를 보여주는 장면일 수 있다. 실제로 영화는 이후 단종과 금성대군(세종의 아들, 세조의 동생, 단종의 삼촌)의 역(逆)쿠데타 모의 과정을 보여준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영화가 보여주는 취약성이다. 호랑이를 묘사하는 CG가 빈약하다 못해 유치한 수준이어서 실소를 자아낸다. 이건 제작비 탓이 아니다. 제작비는 105억이었다. 따라서 그보다는 기술력과 상상력의 문제로 보인다. 무엇보다 단 한 발의 화살이 모든 분위기를 반전시킨다는 설정도 다소 식상할 수 있는 수준이다. ‘왕과 사는 남자’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한명회 캐릭터이다. 감독은 세조의 마초적이고 잔인한 이미지를 한명회와 중첩함으로써 세조를 더욱 미스터리하게 그리려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명회는 육탄전보다는 두뇌 싸움에 능했던 자이다. ‘벌크업’한 유지태가 도포 자락 휘날리며 검객처럼 호통치는 모습은 영화를 정서적으로 상당히 유리시킨다. 더욱 중요한 것은, 세조를 감춤으로써 영화가 어느 쪽을 옹호하는지 그 정치적 판단을 유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현실에서 쿠데타 세력은 과연 누구인가, 이쪽저쪽 모두 자기가 아니라 상대가 그렇다고 할 수 있게끔 영화를 위치 지었다. 영화 속에서 금성대군과 단종이 얘기하는 ‘잘못된 역사를 바로 세우겠다’는 의지도 어느 쪽이든 자신의 것으로 합리화할 수 있게 만들었다. 따라서 세조의 이미지를 한명회에 중첩시킨 것은 감독 장항준과 투자배급사 쇼박스의 교묘한 정치 상업주의의 소산으로 보인다. 그 정교함에는 칭찬을 마다할 이유가 없지만, 그것을 균형감각으로 볼 것이냐, 기회주의로 볼 것이냐는 각자가 판단할 몫이다.
 

 

대중적으로 ‘왕과 사는 남자’의 최고 장면은 엔딩씬일 것이다. 엄흥도 역할을 한 유해진의 연기가 돋보인다. 이 영화는 배우 유해진과 감독 장항준의 영화이다. 박지환 오달수 김수진 등 조·단역 연기자들의 합도 유난히 좋은 작품이다. 코미디는 연기자들 전부의 희생 어린 한 컷(프레임 한구석에서도 연기를 하고 있어야 한다)이 중요한 장르이다. ‘왕과 사는 남자’는 그걸 해냈다. 충분히 ‘대박’ 흥행을 이룰 자격이 있다. 다만 이런 흥행 이후 자신의 약점을 어떻게 보완할 것인 가는 순전히 감독 장항준의 몫일 것이다. 흥행은 감독을 자만하게 만든다. 그 점을 조심해야 할 영화이다.

오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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