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전의 슬픔을 기억하고 있는 팽목항은 적막감이 감돌았다.
전남 진도군 임회면에 있는 진도항. 우리에게는 팽목항이란 이름이 더 익숙한 자그마한 항구에는 추모객들의 발소리 대신 파도 소리와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는 문구가 적힌 낡은 깃발들이 바람에 부딪혀 내는 소리만 가득했다.
짙은 안개와 무거운 공기 탓인지 괜스레 공허하고 마음이 무거웠다.
텅 비어 있는 항구와는 다르게 팽목항 주변 주차장에는 차량들이 테트리스 하듯 빼곡하게 겹쳐 있었다.
바로 옆 진도항연안여객터미널은 노란 리본 대신 노란 유채꽃을 보러 온 시민들로 붐볐다.
괜스레 섭섭한 마음에 헛헛함이 밀려왔다.
주변 상인들은 “추모 목적으로 팽목항을 찾는 사람들이 많이 줄었다. 지금은 그저 여행 가는 길에 지나가듯 들러 잠시 보고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입을 모았다.
2014년 4월 16일. 제주도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서 304명과 함께 가라앉은 날이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났다. ‘잊지 않겠다’, ‘기억하겠다’, ‘진실을 밝히겠다’고 목청껏 외쳤지만 오늘까지도 참사의 진실은 인양되지 못했다.
안갯속에 가려진 해가 중천에 다다르자 팽목항을 찾는 관람객들이 늘어났다.
"이게 벌써 12년이 지났네", "저기 앞에서 가라앉았다는 거 아니야?", "어휴"
나지막한 탄식을 내뱉으며 '세월호 기억의 벽'을 따라 걷던 사람들의 발걸음은 12년 전 오늘로 향하고 있었다.
짙은 썬글라스를 들추며 흐르는 눈물을 닦는 사람들도 간간히 보였다. 한 손에는 여행 팜플렛이 쥐어져 있었지만, 이 순간 만큼은 관람객이 아닌 추모객이었다.
관람객들의 발을 추모공간으로 이끄는 것은 12년 전 오늘을 기억하고자 하는 시민단체들의 노력이었다.
사회적협동조합 ‘살판’은 팽목 기억관부터 시작해 팽목항까지 연주를 이어가며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넋을 기렸다.
그들의 연주에 이끌려 추모 공간까지 온 관람객들도 희생자들의 영혼을 진심으로 위로했다.
빨간 등대에서는 한국민족춤협회 창립 10주년 기념 추진위가 진행하는 ‘사월에 피는 꽃’ 추모 행사가 열렸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유가족도 팽목항을 찾았다.
안산 단원고 2학년 5반 고(故) 이창현 군의 어머니 최승화 씨는 눈에 고인 눈물을 들키고 싶지 않은 듯 벙거지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있었다.
그의 휴대전화 배경화면에는 12년 째 고2에 머물러 있는 아들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제 아들과 이름이 같네요. 우리 애도 창현인데…”
명함을 건네며 인터뷰를 요청하자, 최승화 씨가 떨리는 목소리로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최승화 씨는 “(아들이) 친구들과 잘 지내길 바라는 마음이 제일 크다”며 “엄마, 아빠들이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과 보다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12년 동안 열심히 했다. 그런데 최선을 다한 게 이런 결과라는 걸 아이들이 납득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전했다.
2027년 개관 예정인 4·16 생명안전공원에 대한 기대감도 드러냈다.
그는 “안산 시내 한복판에 추모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청소년들이 꿈에 대해서, 미래 세대들이 원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이 되길 바란다”며 “세월호 참사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생명에 대한, 인류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많이 오가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팽목항 근처에 있는 팽목 기억관에는 희생자들의 사진이 벽면을 채우고 있었고, 그 앞에는 국화가 놓여 있었다.
노란 리본이 가득한 이곳에는 추모객들이 방명록을 통해 저마다의 감정과 다짐들을 써 내려갔다.
목포신항 철재 부두에 있는 세월호 선체 주변에 설치된 펜스에는 노란 리본들이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그 앞에는 가방을 내려놓고 무릎을 굽힌 채 앉아 조용히 세월호를 응시하고 있는 청년을 만날 수 있었다.
서울 지역 대학에 재학 중인 A 군은 관광 차 목포에 방문했다고 전했다.
A 군은 12년 전 오늘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유가족도, 생존자도 아닌 제3자라고 소개했다.
A 군은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그때의 기억이 선명하다. 2014년 4월 16일은 수학여행을 떠나던 날이었다”며 “그날 저녁 담임 선생님이 학생들을 모아두고 ‘여객선이 침몰했는데, 전원 구조됐다. 너무 걱정하지 말아라’라고 말하셨던 기억이 있다”고 했다.
이어 “하지만 다음 날 선생님이 다시 우리를 불러 전원 구조는 오보였고,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다는 사실을 전해주셨다. 당시 너무 충격을 받았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세월이 흐르며 세월호 참사는 조금씩 기억에서 잊혀져 갔다. 이곳에 세월호 선체를 보러 온 것도 큰 의미 없이 한 번은 직접 봐야겠다는 생각에 왔다”며 “그런데 막상 와보니 복잡한 감정이 교차한다. 생각보다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다.
팽목항에서 약 4㎞ 떨어진 진도 백동 무궁화 동산에 있는 '세월호 기억의 숲'은 교통이 편리하지도, 접근성이 좋지도 못했다.
하지만 12년 전 그날을 기억하는 이들의 흔적이 곳곳에 묻어나 있었다.
2016년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고 유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마련된 기억의 숲은 故 김관홍 잠수사의 동상이 듬직한 모습으로 지키고 있었다.
김 잠수사는 세월호 희생자 수습 작업을 한 민간 잠수사다. 수색 과정 중 물살에 휩쓸려 병원에 이송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응급처치만 받은 뒤 다시 바닷속으로 향했다.
이후 그는 정신적 트라우마로 힘든 시간을 보내다 2016년 6월 17일 급성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났다.
동상에는 김 잠수사의 용기와 헌신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사람들이 남기고 간 노란 리본이 걸려있었다.
기억의 숲은 한산했지만 군데군데 추모객들의 손길이 닿은 흔적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산책로는 잡초 없이 깨끗했다. 앞서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선행자의 흔적을 따라 걷다 보면 '기억의 벽'을 마주한다.
기억의 벽 외부에는 304번 접힌 면이 형성돼 있다. 304는 세월호 희생자 수를 뜻한다.
구조물은 'ㅅ'자 평면으로 이뤄졌다. 각 꼭짓점의 최고 높이인 476㎝, 325㎝, 151㎝는 세월호의 총 탑승객 수, 단원고 학생 탑승객 수, 일반인 탑승객 수를 상징한다.
주름진 면과 평면이 나뉘는 높이인 172㎝, 75㎝, 97㎝는 탑승자, 단원고 학생, 일반인 탑승객 중 생존자 각각의 수를 나타낸다.
기억의 벽 안쪽에는 304명 희생자의 이름이 세겨져 있고, 그 오른쪽에는 추모 메시지가 적혀있다.
팽목항에서 만난 시민은 "그동안 바쁘게 사느라 세월호에 대한 관심이 소흘했던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하지만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은 기억하고 있는 것"이라고 눈을 반짝였다.
[ 경기신문 = 유창현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