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카셀 도큐멘타 전시회 탐방기
4월8일∼9월17일 아테네·카셀에서 미술행사
도큐멘타, 독일 나치정권 밑에서 반성으로 출발
프리드리히 광장선 금서로 ‘책의 파르테논’ 제작
도시 곳곳엔 화가 요셉 보이스의 떡갈나무 무성
올해는 유럽에서 베니스 비엔날레를 비롯해 카셀 도큐멘타,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 등 세계적인 미술행사가 4월부터 11월까지 연이어 열리며 전세계 관광객의 발길을 붙잡았다.
베니스비엔날레는 ‘만세, 예술 만세’(Viva Arte Viva)를 주제로 예술의 본질을 찾고자 했다면 ‘아테네에서 배우기(Learning from Athens)’를 주제로 한 도큐멘타는 난민, 젠더, 인종, 전쟁, 테러리즘 등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촘촘히 짚어냈다. 그 의미가 선연히 보이는 도큐멘타의 작품들은 보다 흥미롭게 각인됐다.
독일 헤센 주 카셀에서 열리는 도큐멘타(Documenta)는 독일 나치정권하에 자행됐던 반인륜적 행위에 대한 반성, 자각에서 1955년 출발했다. ‘전시회는 모던아트의 기록(Documentation)’이라는 의미의 도큐멘타는 독일모더니즘 미술의 본질을 찾기 위한 기록들을 14회에 걸쳐 선보이고 있다.
4월 8일부터 9월 17일까지 열린 도큐멘타 14는 ‘아테네에서 배우기’를 주제로 아테네와 카셀에서 개최됐다.
본 전시장인 프리데리치아눔 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는 프리드리히 광장은 밤늦게까지 화려하게 불을 밝히고 있는 신전 건물이 눈길을 끈다. 역대 도큐멘타 작품 중 가장 규모가 크다고 알려진 ‘책의 파르테논’(The Parthenon of books)이다. 이 광장은 1931년 나치를 공격하기 위해 연합군이 폭격한 곳으로, 당시 도서관이었던 프리데리치아눔의 35만권의 책이 불타버린 장소다. 아르헨티나 출신 마르타 미누진 작가는 이곳에 시민들로부터 기증받은 금서 10만권을 모아 신전을 꾸몄다. 전시가 끝난 뒤 책들은 방문객에게 돌려준다.
도큐멘타할레 앞 광장에 설치된 거대한 배수관을 엮은 ‘when we were exhaling imeges’는 이민자 출신 작가 히와 케이(hiwa k)의 작품이다. 각각 주방, 침실, 서재로 꾸며진 20개의 배수관은 난민의 임시주거지를 형상화, 자본주의에 희생된 난민의 현실을 드러내고자 했다.
카셀 전역 30여곳에서 펼쳐지는 도큐멘타는 전시 뿐만 아니라 나무와 꽃이 가득한 수려한 경치도 볼거리다. 특히 도시 곳곳을 수놓고 있는 떡갈나무는 화가 요셉 보이스가 1982년 심은 것으로, 각각의 나무에는 그가 기증했다는 돌이 세워져 있다.
독일의 정치시스템에 불만을 품었던 요셉보이스는 예술과 정치의 경계를 없애는 작업을 이어왔으며 그 일환으로 카셀에 7천 그루 나무심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정치나 경제적 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자유로운 예술을 실천하고자 하는 도큐멘타의 정신은 요셉보이스가 남긴 7천그루의 나무와 함께 성장하고 있었다.
베니스선 행복·아름다움 가득 카셀에선 묵직한 주제에 숙연
김상미 안산문화재단 단원미술관 큐레이터
수개월 전, 베니스로 가기 위한 비행기 표를 먼저 예매했었다. 올해는 5년에 한 번 개최되는 ‘카셀 도큐멘타(Kassel Documenta/ 6.10~9.17)’와 10년마다 열리는 ‘뮌스터조각프로젝트(Skulptur Projekte Munster/ 6.10~10.1)’, 격년제로 열리는 ‘베니스비엔날레(Venice Biennale/ 5.13~11.26)’까지 유럽의 3대 미술제를 한 번에 즐길 수 있는 해이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미국의 ‘휘트니비엔날레(Whitney Biennial/ 3.17~6.11)’와 스위스의 ‘바젤아트페어(Art Basel/ 6.13~6.18)’ 등 갖가지 대규모 국제 미술 행사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열리면서 해외미술계를 뜨겁게 달군 해이다.
베니스비엔날레는 본관의 전시와 국가관 전시가 진행되는 자르디니(Giardin)지역과 대규모 본전시가 열리는 아르세날레(Arsenale)를 중심으로 이어졌다.
비엔날레의 총감독을 맡은 프랑스 퐁피두센터의 수석큐레이터인 크리스틴 마셀(Christine Marcel)이 기획한 본전시는 ‘만세, 예술 만세’(Viva Arte Viva)라는 주제 하에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메시지보다는 예술가와 예술을 위한 예술로, 오늘날 예술의 역할에 대해 되묻고 있다.
국가관중 단연 많은 관람객들로 북적였던 곳은 갖가지 키치한 네온사인으로 반짝이는 한국관이었다. 베니스비엔날레와 한국관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 반응들이 많았다. 코디최와 이완이라는 세대가 다른 작가의 만남 그리고 그들을 이끈 이대형 감독의 총괄에 대해 잘 다듬어진 기획 그리고 뻔한 이야기라는 상반된 평가를 전시를 보면서 이해할 수 있었다. 황금사자상을 받은 독일관도 빼놓을 수 없는 전시다. 안네 임호프(Anne Imhof)의 작품 ‘파우스트’는 정해진 시간에만 유리로 된 전시장 바닥 아래서 라이브 퍼포먼스를 진행, 공연이 끝나면 유리바닥 아래로 퍼포먼스의 흔적들을 쫓을 수 있었다.
14회를 맞은 카셀 도쿠멘타는 ‘아테네에서 배우기’라는 주제를 내세우며 지구상에서 자행되는 인류의 현상과 현대사를 상기시켰다. 카셀과 아테네의 공동 주최로 아테네에서 먼저 전시가 시작됐고 160여명의 작가, 650여점의 작품이 카셀 전역에 걸쳐 광범위하게 설치됐다. 전시 동선을 계획하면서 전부 보겠다는 욕심을 버렸다. 봐야할 전시장 몇 곳과 설치 작품을 우선으로 돌아봤다. 프리드리히 광장에 위치한 프리데리치아눔(Fridericianum)와 도큐멘타할레(Documenta Halle), 노이에갤러리(Neue Gallery)와 노이에 노이에갤러리(NeueNeue Gallery) 등 거의 하루 종일 전시장 위주로 돌아봐야 했다.
이번 도쿠멘타의 총감독은 폴란드 출신 큐레이터 아담 심칙(Adam Szymczyk)이 맡았다. 그는 어제와 오늘에 대한 반성을 자양분 삼아 새로운 예술을 기록하고자 했다. 많은 공공의 소장품들로 채워진 대규모 전시는 지리적 정체성과 이주민의 문제에 주목했다. 이주민의 문제는 독일 사회에서도 꽤나 중요한 화두라고 한다. 카셀도 아테나처럼 이민자의 도시이다. 그리스와 독일의 관계를 묶어 보자면 꽤나 위험한 설정이다. 그리스가 처해진 위기 상황과 독일의 위치, 정치, 사회적으로 불안정해 보이는 이 관계를 정치와 사회, 경제, 문화를 예술 안에서 쏟아내고 있었다. 과거 유럽이 겪은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시작된 카셀 도쿠멘타가 올해는 거대한 역사적 사건과 지구촌에서 일어나는 현상의 중심에 우리를 밀어 넣었다.
행복하고 아름답기만 한 베니스비엔날레와는 반대로 카셀 도쿠멘타는 바짝 날이 선 상태로 유럽의 현대미술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더욱이 베니스에서 독일관을 관람하고 카셀에 대한 기대치가 한층 올라갔던 차였다. 5년이라는 기간, 그리고 그 시간과 비례하듯 무거워진 담론들, 현재 독일이 세계 현대미술을 이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올해 독일은 현대미술의 모든 것을 방출하고 있었다.
/독일=민경화기자 mk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