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국선언과 반시국선언으로 이어진 노 무현 전 대통령 서거 정국과 북한의 개성공단 폐쇄, 2차 핵실험에 이은 장거리 미사일 발사 조짐 등으로 나라가 극도로 혼란스럽다.
그런데 여야간의 주도권 잡기 기싸움은 말할 것도 없고, 각 정당 내부의 갈등과 분열로 정신없는 정치권은 문제 해결의 기대를 주기보다 국민들의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을 뿐이다. 작년에 시작된 미국 발 경제 위기가 다소 상승하는 기미를 보인다고는 하지만, 최근 실업자 수가 3백만에 가깝다는 통계가 말해 주듯 서민들의 경제적 고통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수준이니, 엎친 데 덮친 격이다. 그런 와중에 강남의 한 클럽이라는 곳에서 수 십 명의 젊은이들이 무더기로 마약 파티를 열다 붙잡혔다는 뉴스가 터져 나와, 대다수의 일반 국민들을 힘 빠지게 만들었다. 이런 뉴스들을 접하며 지금 우리나라가 제대로 갈 길을 가고 있는 것인지 심히 걱정이 된다.
선박건조, 컴퓨터 보급률, 반도체 생산에서 세계 1위인 우리나라의 행복지수는 OECD회원국 중 최하위라고 한다. 세계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은 나라, 자살율이 가장 높은 나라라는 사실은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이 녹녹치 않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며,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이 길이 우리들이 꿈꾸고 그리던 미래로 이어지고 있는 지 되묻게 한다.
물론 소위 국가별 행복지수라는 것을 보면 평균수명도 짧고 경제수준도 열악한 우리에게 이름마저 생소한 나라들이 1위를 차지하는 반면, 선진국이라 일컬어지는 미국, 일본, 독일 같은 나라들이 하위권을 차지하여, 물질적 풍요가 행복감을 높이는 데 필요·충분 조건이 될 수 없음을 보여 준다. 실제로도 그렇다. 누가 보던 성공한 사람들에게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 언제였냐고 물으면, 성공을 이룬 현재라고 답하는 사람은 드물다. 성공하기 위해 노력했던 시절이야말로 인생의 황금기라고 답하는 사람이 더 많다. 일인당 국민소득이 백 달러도 안 되는 세계 최빈국이었던 우리나라가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국가를 재건하며 우리보다 앞선 나라들을 따라잡기 위해 국민 모두가 열정을 다했던 1960-70년대에 우리 국민들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며칠씩 밤을 새며 일하더라도 자부심과 행복감을 느꼈던 것이다. 우리에겐 뚜렷한 목표가 있었고, 성공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독일 중부의 한 도시인 ‘루드빅스하펜’에는 석유화학 분야에서 세계 최고 회사인 BASF라는 회사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효성그룹과 제휴하여 효성바스프로 알려진 회사다. 내가 독일에서 경영학을 공부하던 1980년대 말에 이 회사에 견학을 가게 되었는데, 그 때 이 회사의 홍보 담당자가 들려준 일화는 내게 큰 감명을 주었다. 1960-70년대에 일본이 선진국을 캐치업 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던 시절, 일본 재계와 학계의 방문단들이 여러 차례 이 회사를 방문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일본의 방문단 중 한 사람이 갑자기 화학물질 안에 팔뚝을 텀벙 집어넣었다고 한다. 이 사람은 화학 물질에 타들어가는 팔뚝을 끌어안고 긴급 귀국하였고, 이 상처를 분석하여 얻어낸 정보를 통해 일본은 BASF의 기업 비밀이던 화학공식을 알아내고 신기술을 습득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자랑하는 ‘한강의 기적’ 뒤에도 이처럼 때로는 목숨을 건 도전정신으로 무장한 ‘개척자’들의 숨은 공로가 있었다. 비젼을 만들어 보여준 사회 지도자, 지구 구석구석을 우리의 시장으로 개척한 기업가, 독일에 파견되었던 광부와 간호사, 월남전 참여병사, 이란 대수로 공사 등 중동 각처의 해외건설근로자는 물론이고, 전국적인 새마을 운동, 고단하고 열악한 현장을 지켜낸 산업 일꾼들, 허리띠를 졸라매며 자녀 교육에 헌신한 어머니들에 이르기까지 온 국민의 피와 땀, 희생정신이 대한민국의 오늘, 국민소득 2만 불, 세계 13위의 경제대국을 만든 저력이다.
지금 우리가 서있는 이 자리는 현 세대의 업적이 아니다. 우리가 지금 혼란과 갈등으로 탕진하고 있는 것은 부모님 세대, 선배 세대가 헌신과 열정, 희생과 노력의 산물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 국토는 작고, 부존자원도 거의 없으며, 우리가 믿을 것은 오로지 우리 자신 뿐이다. 특히 젊은이들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세상이 살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며 삶이 행복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꿈과 열정, 자신감과 용기를 가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사회 지도층부터 합심해야 한다. 중국의 한 성보다도 인구가 적은 우리나라가 사분오열해서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 우리 모두 맨주먹으로 시작했던 그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