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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시론] 독서까지 국가가 관리해야 하나

 

한국의 사교육은 괴기만화와 영화에서 쇠붙이든 뭐든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무시무시한 ‘용가리’를 생각나게 한다. 어떻게든 사교육을 좀 줄여보려고 도입한 EBS 수능강의에 대한 과외까지 생기고, 논술을 강조하면 논술과외, 면접이 이슈가 되면 면접과외, 수행평가를 하겠다면 수행평가과외 등…. 교육에 관한 한 내놓기만 하면 그게 뭐든 사교육으로 연결되지 않은 것이 거의 없었다.

입학사정관이 전형 서류를 보고 “이런 책도 읽었느냐?”며 관심을 보이자 정작 학생은 “읽은 적이 없다”고 완강하게 부인하더라는 어처구니없는 사례를 농담처럼 들었는데, 급기야 독서이력제에 대한 과외도 생겨났다. 강사가 매주 한 번씩 열 권의 책 내용을 강의한 다음 사이트에 학생 대신 실적을 입력해주는 고액 과외나 한 달에 한두 권의 권장도서를 선정해 강의한 뒤 독서이력 사이트의 입력을 도와주는 과외가 대표적 사례다. 인터넷에서 권장도서의 이름, 줄거리, 느낀 점을 찾아 아이에게 이야기해주고 기록하게 하는 ‘부지런한 학부모’도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 자녀가 “그냥 읽고 싶은 대로 읽겠다”고 떼를 쓰면 부모는 “나중에 좋은 대학교에 가려면 귀찮아도 독후활동을 잘 해야 한다”고 설득한다는 사례도 있다.

올해부터 전국 초·중·고 학생들에게 읽은 책에 대해 온라인에서 독후감, 그림, 만화, 편지쓰기 등 다양한 독후활동을 표현하게 하고, 누적관리 및 포트폴리오 작성, 개인·학급 문집 발간 등을 지원하도록 한 독서교육종합시스템을 도입하자 당연한 일이라는 듯 당장 이와 같은 독서과외, 부작용 사례들이 생겨난 것이다. 학생들이 초·중·고 12년간 읽은 책에 대한 기록을 차곡차곡 모아 진로탐색에 활용하거나 대학입학전형에 제출할 수 있게 하겠다며 이 제도를 도입한 정부의 순박한 의지는, 학원이나 학부모의 입장에서 보면 결국 사교육 거리 한 가지를 추가한 꼴에 지나지 않게 된 것이다.

독서교육이 이같이 변질되자 지난 5월초, 정부는 학생들의 독후활동 기록관리 부담 가중 및 독서의 자율성 저해, 사교육 조장 등 부작용 발생을 막기 위한 대책을 내놓았다. “지금까지는 학생이 입력한 내용이 그대로 학생생활기록부(에듀팟)에 올라갔지만, 앞으로는 학생이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에 올린 내용을 바탕으로 담임교사가 학생생활기록부에 입력하겠다”고 밝혔다. 학부모나 학원 강사의 대필을 막는 검증을 거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의 조치로 부작용이 일소되고, 학생들의 독서문화가 입시용으로 변질되는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독서지원 온라인 시스템 운영의 본래 목적은 자유롭고 다양한 독서활동 지원이라지만 그 기록이 대입전형에 반영될 수 있다는데도 초연하게 진정한 의미의 독서가 가능하다고 생각할 교사나 학부모가 흔할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학생들도 그렇다. 그 기록을 일일이 평가하거나 말거나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골라 즐겁게 읽는 학생이 많을 것 같지도 않고, 그런 학생을 그냥 둘 학부모나 교사가 많을 것 같지도 않다. 그렇다면 이 시책은 정부가 나서서 학생들의 독서활동을 대입전형과 연계시키는 것으로 귀결되기 십상이며, 이와 같은 방법으로 12년간 온 국민의 독서를 관리하겠다는 것과 같은 의미가 된다.

철저한 지식주입식 교육, 대입준비 교육으로 남보다 덜 자고 덜 놀면서 하나라도 더 외우고 끝도 없는 문제풀이 연습에 치중해야 할 학생들이, 어느 틈에 무슨 배짱으로 마음껏 읽고 노래하고 그려보고 만들고 체험하는 ‘진정한 학습’을 할 수 있기나 한지 그것부터 의심스럽다. 독서야말로 ‘자유롭고 진정한 학습’으로 남겨 두면 더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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