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국회의원이 울릉도 방문을 거부당해 김포공항에서 비빔밥 먹고 한국 김 사가지고 다시 올 것임을 비추며 되돌아갔다. 한편 울릉도엔 일본 기자들이 몰래 여객선으로와 취재하고 갔다.
일본은 1905년 독도를 임자 없는 땅이라며 시마네현에 편입시켰다. 1910년 한일 병합으로 35년간 지배해오다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하여 약탈한 한국 영토를 1946년에 연합군의 지령으로 한반도, 제주도, 울릉도, 거제도, 독도를 한국에 반환하여 우리 땅이 되었다.
그러나 1951년 샌프란시스코 최종 조약에 일본이 반환할 한국영토에서 독도가 빠져있었다. 이유는 미국인으로 일본에 귀화한 시볼트의 로비가 큰 작용을 하였다고 한다. 이에 대한 이승만 대통령의 항의를 받은 미국무성은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독도를 한국령으로 기재 해줄테니 15일내에 정확한 자료를 제출토록 요구하였다. 그러나 한국 대사나, 학자들이 제대로 자료를 주지 못 하였고, 일본은 수많은 정보를 제공하여 미 국무성은 독도를 일본 영토로 잘 못 이해하여 한국에 반환 영토 속에 기재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이때 많은 자료와 논리적 주장만 했더라도 독도 영유권 문제는 종료되었을 것이다.
1948년 8월 18일 건국한 지 3일 뒤 이승만 대통령은 첫 기자회견에서 일본에게 대마도를 한국에 반환할 것을 언급했다. 1952년 6.25전쟁 속에서도 이승만라인 선포로 독도는 한국 땅임을 세계만방에 알렸고 일본인들을 강제 철수시켰다. 이것으로 독도 영유권 논란이 시작 되었다고 보고 있다. 일본은 처음엔 외무성만이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주장하다가 이젠 정부가 방위백서와 외교청서를 통해 세계에 알리고 있다. 1965년 박정희 정권 때 한,일 어협협정 때도 독도는 한국 영토로 인정되었다.
그 후 김대중 정권 때 독도를 한,일 중간 수역 안에 넣어 신 한,일 어업협정을 맺어 국민의 질타를 받았다. 이후 일본은 2005년도에 시마네현의 ‘다케시마의 날’ 조례를 제정함과 동시에 전 주민들에게 신문, 방송, 등기우편물로 독도는 일본 땅임을 주지시켰다. 그리고 난후에 총리가, 외무성이, 주한 일본 대사가 한국 땅에서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세계가 다 알도록 소리쳤다. 이어서 청소년들에게 독도는 일본 땅임을 세뇌시키기 위해 초,중,고교 교과서를 통해 일본 땅인 독도를 한국이 불법점유 하고 있다고 거짓 교육을 하고 있다.
이것도 모자라 정치인, 학자들까지 허위 자료를 들이대면서 야단이다. 언젠가는 후손들이라도 독도를 일본 땅으로 만들기 위한 각종 허위 근거 자료를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를 통해 국내 여론과 국민단합을 계기로 삼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것은 단기목표일 뿐, 아마도 장기 목표로는 독도를 분쟁 지역화 하여 한,일 공동관리 개발지역이거나 아니면 통째로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그러기에 그 큰 쓰나미 발생 후 한국의 봉사와 성금도 아랑곳없이 독도에 대한 검정교과서를 검인정해 발표하지 않았는가? 이런 일본의 만행에 대한 우리의 대응책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당장 독도를 중간수역에 있는 신, 한일어업협정을 파괴할 수는 없는가? 만약 국제법이 바뀌어 국제사법재판소에 가게 된다면 이길 수 있는 자료와 의지가 있는가? 일본이 수 십년을 대비하는 전략이라면 우리도 이에 맞서는 전략이 있는가? 우리현실은 어떤가? 교원들은 과연 독도가 우리 땅인 근거와 일본 주장의 허구성을 반박 할 수 있을까?
학생들에게 얼마나 교육하고 있는가? 학교장은 독도의 영유권에 대한 학부모 안내장 1장이라도 매년 보내고 있는가? 교원들의 그 많은 연수과정에 독도에 대한 연수시간이 얼마나 배정하였는가? 학생들의 독도 이해도를 교육청에서는 파악하고 있는가? 외국에 유학 가는 한국유학생에게 독도에 대한 교육은 어떻게 시킬 것인가? 걱정이 많다.
일본은 수십 년을 내다보면서 단계적이고 점진적인 정책으로 외국인에게까지도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인식을 주지시키고 있다. 우리도 우선 공무원과 교원, 학생들부터 일본 주장에 대한 허구성과 우리주장의 근거를 지속적으로 교육해야 한다. 10년 아니 20년 후에도 독도 영유권 논쟁에서 일본 학생들을 제압 할 수 있는 독도교육을 해야 한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