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베고 이성만 남아, 아주 무덤덤한 마음으로 읽어도 안구돌출(眼球突出)되는 역사가 있다. 우리 역사 이야기다.
일본의 ‘에조보고서’는 1895년 8월 20일 경복궁내 건천궁 옥호루에서 벌어진 참사를 이렇게 묘사한다.
일본낭인 20여명이 난입해 명성황후를 살해한 사건의 전모다. 작전명 ‘여우사냥.’
이 보고서는 당시 조선 정부의 내부 고문관인 이시즈카 에조가 작성했다. 그는 일본에 있는 직속상관 스에마쓰 가네즈미 우정국 장관에게 이 사건의 주모자가 미우라 공사임을 알렸다.
명성황후 살해 현장의 모습이 너무 생생해 명성황후 시해 사건을 다룬 ‘민비암살’의 저자 쓰노다 후사코도 ‘당시 현장에 있던 일본인 중에는 같은 일본인인 나로서는 차마 옮길 수 없는 행위를 하였다는 보고가 있어….’라고 말끝을 흐릴 정도였다. 보편적인 인간의 감성을 지녔다면 차마 저지를 수 없는 만행이 벌어졌다는 것을 암시하는 근거다.
이 보고서에는, ‘먼저 낭인들 20여명 정도가 궁에 쳐들어와서 고종을 무릎 꿇게 만들고 이를 말리는 세자의 상투를 잡아 올려서 벽에다 던져 버리고 발로 짓밟았다. 그리고 명성황후를 발견하자 옆구리 두 쪽과 배에 칼을 꽂은 후(…)돌아가면서 20여명이 강간을 했다.(…)너덜너덜해진 명성황후의 시체에 얼굴부터 발 끝까지 차례대로 한 명씩 칼로 쑤셨다.(…).’
이 보고서는 지난 2002년 공개됐다. 그러나 당시 우리나라 주류 언론들은 모두 외면했다. 한국 언론의 현주소다. 부끄럽다.
그리고 이 천인공로(天人共怒)한 사건에 유길준과 조선국 국군 1대대장 우범선, 2대대장 이두황, 3대대장 이진호 등이 동참했다고 전해진다. 아니겠지. 그런데 최근 이들의 후예가 부활한 것일까. 뉴라이트 인사들이 이끈다는 한국현대사학회가 집필한 고등학교 한국사교과서를 둘러싼 논란이 일파만파다. 일부 언론과 SNS 등에 따르면 이들은 김구 선생을 ‘빈 라덴 같은 인물’, 김좌진 장군을 ‘체제를 부정한 악질 테러분자’, 명성황후를 ‘외세에 의존한 수구적 인물’로 표현했다고 한다. 아닐 것이다. 뉴라이트거나 종일주의자(從日主義者)거나 한민족인데, 설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반드시 그렇지 않을 것이다.
최정용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