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공권력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사용될 경우에만 정당화된다. 그러나 한국의 현대사에는 정당화될 수 없는 국가 공권력의 사용이 확인되곤 한다. 2009년 1월20일 용산4구 남일당에서 철거민들을 진압한다는 목적으로 사용됐던 공력권 역시, ‘누구의 무엇을 지키기 위한 폭력’이었는지 의문투성이다.
2009년 서울지방경찰청장이던 김석기는 용산참사 진두지휘의 책임을 물어 7개월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공직에서 물러난 김석기의 이후 행보는 권력의 비호아래 곳곳에서 출몰했다. 한국자유총연맹 부총재 자리를 거쳐 오사카 총영사를 지낸 이후, 2012년 총선에서는 새누리당 후보로 경주에서 출마하는가 하면, 지난 10월16일 한국공항공사 신임 사장으로 취임하기에 이른다. 권력에 대한 그의 한결 같은 욕망은 지난 총선 출마 당시 “용사참사 때문에 출마하지 못한다면 억울한 일”이라며 마치 스스로를 피해자인 냥 읍소하기도 했다.
멀쩡했던 가장 다섯이 가족의 보금자리를 지키려다 국가에 의해 망자가 됐고, 이 과정에 경찰 1명도 죽었다. 다섯 가장의 유가족들은 지난 5년 동안 무더운 여름의 더위와 매서운 겨울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그들의 억울하고 분한 사정을 바로 잡기 위해 호소하고 눈물 흘렸다. 진정 읍소하고 위로받아야 할 사람들은 용산참사의 희생자와 그들의 유가족들이다. 그러나 국가는 이제까지 사과하고 위로했어야 할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오히려 그들에게 비극의 씨앗을 심었던 대행자의 삶을 비호하는 데 온 힘을 쏟아 왔다.
용산참사 유가족들은 40일이 넘도록 이 추위 속에서도 한국공항공사 앞에서 신임 사장인 김석기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김석기는 지난 5일 적절한 기회에 유가족을 만나서 애도의 마음과 위로를 표할 생각이 있지만, 용산참사 당시 경찰이 법 집행을 잘못했다는 것은 사과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유가족과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대표 등 8명을 상대로 출입금지 및 업무, 통행방해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가처분 신청 재판이 열렸던 13일 유가족들은 결국 경찰에 연행됐다. 국가 공권력 중 그 어떤 주체도 유가족을 지켜주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유가족들은 어째서 이토록 힘든 투쟁을 접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명료했다. 유가족들은 김석기 사장을 퇴진시키지 못하면, 공권력은 앞으로 더 큰일을 저지르게 될 것이고, 이것은 비단 김석기 퇴진이나 용산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유가족인 유영숙씨는 “6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람, 그 엄청난 일을 저지르고도 ‘무전기를 꺼놓았다’는 말 한마디로 면죄 받은 사람이 멀쩡히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그를 저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진상규명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지금 쌍용차, 밀양, 강정보다 더 큰 고통을 겪는 이들이 생길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가톨릭뉴스 지금여기 11월15일자 참조). 결국 유가족들은 그들의 억울함뿐만 아니라 국가공권력으로 닥칠 수 있는 미래의 누군가의 고통을 막기 위해 모두를 대신해서 이 추위에 홀로 버티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당선 직후 낙하산 인사를 없애겠다고 강력한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사회공공연구소와 한겨레의 공공기관 임원 분석 결과, 박 대통령 당선 이후 77명이 선임됐고 이 중 34명인 44.2%가 낙하산 인사로 드러났다. 이는 이명박정부 초기와 비교해서도 증가된 수준이고, 낙하산 인사들은 대선캠프 출신, 영남대 출신, 친박 학자 그리고 김석기에 이른다. 서민의 이해와 충돌하는 정권의 이해를 위해 권력을 사용한 사람들이 공공성을 제고해야하는 공공기관의 장으로 취임하는 현실 앞에서 남게 되는 역사적 교훈은 명확하다. 국민의 목숨보다 권력을 지킨다면 적어도 공공기관의 사장 정도는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국가 공권력은 국민에 대한 폭력을 이어갈 것이다. 그러기에 국민을 대신해서 이 문제를 바로 잡기 위해 투쟁하고 있는 용산참사 유가족 여러분께 그저 미안하고 고마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