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인이 하루에 1억알 넘게 먹는다는 아스피린이 조팝나무 추출성분으로 처음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1899년 독일 바이엘사가 상품화한 아스피린이라는 명칭도 화학명 아세틸살리실산의 머리글자와 조팝나무의 학명 스파이리어가 결합돼 탄생했다. 오늘날 아스피린은 단순한 진통해열제를 넘어 심장병, 뇌졸중, 고혈압은 물론 식도암 대장암 등의 예방 및 치료제로 쓰인다.
생물은 이처럼 우리에게 무한한 이로움을 준다. 자원으로서 커다란 경제적 가치를 지닌다. 또 종의 다양성과 유전자의 확보라는 측면에서 그 부가가치도 날로 커지고 있다. 따라서 나라마다 자국의 생물자산 관리와 보호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 모습이 마치 전쟁을 방불케 할 정도라 해서 ‘생물자산전쟁’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영국·독일은 이미 자국 생물자원을 9만6천종, 7만6천종을 이미 발굴했고, 일본도 9만여종에 대한 종 정보를 확보하고 보호에 나선 상태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총 10만종으로 추정되는 국내 생물종 가운데 약 4만1천종 정도만 발굴된 상태여서다.
생물자원을 지키지 못한 우리에게는 쓰라린 경험도 있다. ‘미스킴라일락’이 대표적이다. 1947년 미국적십자 직원이 북한산에서 한국 토종 털개회나무(수수꽃다리)를 채집해 자국으로 가져가 개량한 뒤 ‘미스킴라일락’이라는 이름으로 상품화했다. 지금은 미국 라일락 시장의 30%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가 좋다. 개량된 이꽃은 국내에도 수입된다. 꽃이름은 한국근무 당시 같은 사무실 여직원의 이름을 붙였다고 해서 더 유명하다.
뿐만이 아니다. 한라산에서 자라는 토종 구상나무는 1904년 유럽으로 건너간 뒤 개량돼 세계 각국에서 크리스마스트리로 각광받고 있다. 1917년 미국이 지리산에서 가져간 노각나무는 해외에서 고급 정원수로 탈바꿈했고, ‘하루백합’으로 개량된 토종 원추리 역시 외국에서 인기 있는 우리나라 토종 자원들이지만 지금은 로열티를 물며 수입해야 하는 처지다.
자국의 생물을 지키고 지구생태계를 보존하기 위한 ‘제12차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총회’가 강원 평창에서 어제 개막했다. 참가인원만 세계 194개국 2만여명이다. 총회에서 벌어지는 ‘생물자산전쟁’을 통해 생물다양성의 보전과 지속가능한 이용, 공정한 분배가 이루어지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램이다.
/정준성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