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엄마들
/성향숙
모서리에 이불장 들어낸다
곰팡이 핀 벽지 아래 한 소끔의 퀴퀴한 어둠
시커멓게 변한 동전 몇 개,
작은 치부책, 제각각 풀린 볼펜대와 스프링 그리고
실거미줄 살비듬 뭉치 속에
오십년 찾아 헤맨 빛바랜 엄마의 결혼반지
설거지하는 접시 안에서 놀란 엄마 쨍그랑 깨지고
국수 삶는 물에 다급한 엄마 손 순간 빠진다
돌부리에 걸려 무릎이 깨지는 순간에도 아이쿠 엄마!
갑자기 문이 열려도 엄마! 깜짝이야!
오래전 삼베로 얼굴 감싸고 땅속에 숨은 엄마
숨바꼭질하듯 수시로 엄마!, 엄마!,
엄마를 찾는다
빈집 초인종 몇 번씩 누르며 여기 아닌가 ? 당황하는 엄마
걸레질하다 무심코 고개 들면
창문틀 기대 하염없이 밖을 내다보는 허리 구부정한 엄마
- 시집 ‘엄마, 엄마들’ / 푸른사상·2013
어떤 사실들은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우연히 풀린다. 오십 년을 찾아 헤맨 반지가 장롱 밑에서 빛바래 발견되듯이 어머니 또한 돌아간 후에서야 그 사랑과 헌신의 족적이 새록새록 발견된다. 생전의 어머니 염려와 타이름엔 왜 청개구리 심보가 발동하는지, 모든 딸들의 스스로도 이해 못할 감정일 것이다. 하다못해 접시를 깨트리거나 놀라고 위험한 순간이면 엄마! 아이쿠 엄마! 부를 거면서 그 딸들이 성장해 사랑과 헌신으로 키운 자기 자식들의 배척을 받아보고 나서야 쓸쓸히 어머니를 이해하고 사모의 정을 눈물로 호소하지만 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시고 없다. 그런 면에서 모든 딸들은 어머니에게 감정적 빚을 지고 있다. 그런 이유로 빈집 초인종 몇 번씩 누르고 여기 아닌가? 당황하는 허리 구부정한 엄마라도 꿈에서나마 그려보는 것이리라.
/최기순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