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조계숙
강물 속의 물고기를 낚아채려는
물총새의 속도는 얼마쯤 둔해졌을까
수족관에 갇혀있는 넙치의 한 쪽 눈에는
이 거리가 어떻게 굴절 될까
한 달 째 비가 내린다
점점 두꺼워지는 수막의 렌즈 뒤에서
모든 것은 한 박자씩 미끄러져 가는데
이륙을 준비하는 송골매의 칼눈은
비 오는 어둠 속에서도 여전히 빛날까
- 시집 ‘나는 소금쟁이다’ /푸른사상 /2016년
장마철엔 모든 것이 눅눅하고 탄력을 잃는다. 사람의 마음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내리는 비를 핑계로 만나기로 한 약속을 미루고 자기 스스로 정해 놓은 규율을 미루고 사랑마저도 유예시킬 것만 같은 지루하고 축축한 날들이라니…. 끼니를 해결하려는 물총새의 속도도 느려지고 수족관 속에서 바라보는 넙치의 눈에도 거리는 굴절돼 보이고 모든 것은 한 박자씩 미끄러져 가는데 왜 유독 이륙을 준비하는 송골매의 칼눈은 여전히 빛날까 하고 시인은 묻는다. 아마 시인이 이륙을 준비하는 송골매처럼 무언가 부단히 노력하는 상황인가 보다. 어떤 환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자신을 첨예하게 벼려야 하는 시간을 견디고 있는 것은 아닐까?
/최기순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