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성은 부드럽고 연한 성질 또는 그 정도를 일컫는다. 나라안팎 곳곳에서 갈등이 점철된 상처를 남기고 있다. 한·일 관계도 더 방치하면 설 곳이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미국의 동아시아정책에서 일본의 전략적 가치가 급상승 중이다. 우리 입지만 좁아지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다.
“사람들이 혀를 너무 빨리 놀린다. 그 혀가 생각을 경유해서 놀리는 게 아니다. 나한테 침 뱉으면 너한테 가래침 뱉는 격으로 서로를 공격하기 바쁘다” 소설가 김훈 작가가 한국 사회의 현 세태를 지적한 말이다. 내가 옳다면 남도 옳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말문이 열린다. 자신만이 옳다는 독선과 독주는 증오를 부추긴다. 정치판이 좀 더 유연성을 가질 필요가 있다. 유연성은 ‘유연(柔軟)하다, 부드럽고 연하다. 몸놀림이 매우 유연하다’라는 뜻이다.
두 눈 질끈 감았다 뜨면 다시 새날이다. JP는 “정치는 속이 텅 빈 허업(虛業)”이라하지 않았나. 미국 정치학자 사뮤엘 헌팅턴의 민주화 이론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두 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통해 이제 민주주의의 공고화 단계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민주주의가 성숙되는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의회정치는 퇴행하고 있는 듯해 안타깝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시장경제체제의 구현을 위한 입법 활동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
협상과 타협을 통해 국민이 필요로 하는 법을 제때에 처리하는 국회정상화가 하루빨리 이뤄져야 한다. 당론과 계파에 의한 입법 활동보다는 지역주민 및 국민이 필요로 하는 민생법안을 소신 있게 처리하는 입법 관행이 형성돼야 한다. 20대 국회도 오는 2020년 5월 29일이면 끝이다. 채 1년도 안 남았다. 법률안 심사기간이 턱 없이 부족하다. 연중 상시(常時)국회 운영제도를 도입한 국회가 아닌가. 처리되지 못한 법안은 임기만료 시 폐기된다. 예산안도 중요하지만 국가의 가계부라고 할 수 있는 결산안은 더 중요하다. 부실심사가 반복되고 제대로 처리되지 않아 익년도 예산안처리도 늘 순조롭지 못했다. 이마저 준비 심의기간을 고려하면 시간이 별로 없다.
밥값을 제대로 해야 하지 않는가. 국회의원의 급여는 임금개념 대신 수당의 의미로 세비(歲費)를 받는다. 이것저것 포함에 연액 1억3천700여만 원을 받는다. 외부기관 권고 방식과 같은 선진국과 달리 국회단독결정이다. 우리나라 세비상승률은 최근 10년간 51% 상승했다. 미국의회 세비상승률 20%, 영국 27%의 2배내지 2.5배에 해당한다. 인상폭도 문제지만 국회법을 위반하고 의정활동에 소홀해도 세비는 감액되지 않고 지급된다. 일반국민들에게 적용되는 ‘무노동 무임금’원칙과 괴리가 있다.
바른사회시민회의 조사에 의하면 국회의원 핵심 특권도 6가지 분야에 걸쳐 31가지 항목에 이른다. 국회의원 스스로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특권은 과감하게 내리겠다고 했지만 공염불이다. 정치가 더 이상 민생과 경제를 죽이면 안 된다.
기업이 투자를 하고 일자리를 만들 여건을 만들어 줘야 한다. 기업의 기(氣)를 살려야 밀려오는 저성장 먹구름도 돌파할 수 있다. 농산물 경매시장에서 농산물을 취급하는 상인은 사가는 사람이 없어 출하농가에 되돌려 줘야할 형편이라고 한다. 모두가 어렵다.
유연성을 발휘한 정치 유모(humor) 한 토막이다. 처칠이 ‘대기업국유화’를 주장하던 노동당과 싸우고 있던 때였다. 어느 날 처칠이 화장실에 소변을 보러갔다. 그곳에는 라이벌인 노동당 당수 애틀리가 볼일을 보고 있었고 빈자리는 그의 옆자리뿐이었다. 하지만 처칠은 그곳에서 볼일을 보지 않고 기다렸다가 다른 자리가 나자 비로소 볼일을 보았다. 이상하게 여긴 애틀리가 물었다. “내 옆자리가 비었는데 왜 거긴 안 쓰는 거요? 나에게 불쾌한 감정이라도 있습니까?” 처칠이 대답했다. “천만예요. 단지 겁이 나서 그럽니다. 당신들은 큰 것만 보면 국유화(國有化)를 하려 드는데 내 것이 국유화 되면 큰일이지 않소?” 애틀리는 폭소를 터뜨렸고 이후 노동당은 국유화 주장을 철회했다. 우리 정치판에서도 이런 조크(joke)를 주고받는 정치인들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창밖 세상사 워낙 힘들어 감동과 웃음을 찾을 여유도 없다는 푸념이다. ‘국민에게 힘이 되는 국회’. 대한민국 국회를 소개하는 인터넷 홈페이지 맨 위에 자리 잡고 있는 캐치프레이즈다. 이 문구가 그저 장식용이 아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