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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두의 시선]땅끝, 백련재 문학의집

 

 

 

 

 

해남 땅끝순례문학관 백련재 문학의집에서 입주 작가를 공모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작가선정도 입주도 늦어졌다. 아버님의 병환도 살피고, 시나리오작업도 촉박해서 신청했는데 선정소식과 더불어 아버님은 그사이 병마가 호흡기에서 췌장암으로 판명되면서 소천하셨다. 아버님이 참 그립다. 병상에서 통증을 호소하시던 아버님 생각이 일어날 때면 눈방울이 떨어진 채로 책장을 넘기곤 한다.

산그늘이 조석으로 백련재를 덮는다. 대흥사 산사와는 떨어진 거리지만 그윽한 고요함을 만끽한다. 신록의 푸르름이 펼쳐진데다 산새소리와 자연을 감흥하며 홀로 지내자니 삶의 현장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마저 든다. 새삼 사람들과의 관계, 아픔, 상처, 나는 세상과 별리를 오래전 준비해 왔던 셈이다.

절실하게 고민하고, 사유하는 동안 섬마을들을 훔쳤다. 외진 섬을 돌며, 자신을 돌아봐야 할 때가 많아졌다. 막연한 세월은 아니었지만 좋았던 일, 아쉬웠던 일들을 재생하면서 지금의 나를 더 격려하는 시간들을, 다시 백련재에서 찾았다.

짧은 삶을 어떻게 살까? 소유물이 있다면 어떻게 나눌까? 방충망에 울어대는 나방도, 짙게 내려앉은 구름도, 소슬하게 불어오는 바람도, 귀하고 아름답다. 집을 떠나 아내의 그리움을 뒤로하고 알을 품은 닭처럼 둥지를 잡은 한옥이 달밤처럼 곱고 차분하다. 작가의 길로 걷는 동안 생물학적인 정신을 만들고, 책과 씨름도 하고, 사색으로 몰입하려면 잔가지 같은 일들은 잊어야 하는데 떨치지 못한 나는 세상과 아직 이별을 못하고 있다. 내게 있어서 글쓰기는 고통이요, 독서하는 즐거움은 기쁨 그 자체이다. 많은 사람들의 글을 읽다보면 내 안에서 발효되고 육화되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야 독자들에게 사색을 안겨주는 글 한 줄이 나온다.

가끔 책을 덥고 내 고향 산하를 둘러본다. 면적이 넓은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산과 바다, 강으로 길을 잇는 남도땅끝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유년시절 온기와 정감은 세속과 함께 시절이 수상하게 달라졌지만 그럼에도 내 고향은 아름답다. 백련지에서 이름을 따 올린 백련재 문학의집에 입소한 작가1기 주인공이 되었다. 대학에서 문학의 길을 열어주신 황지우 교수님과는 사제지간으로 어려운 시절에 문학의 길을 만들어주신 고귀한 스승이다. 긴장된 나날과 경직된 공직생활 30년은 문학이 있었기에 견딜 수 있었던 추억의 회상들이다. 작가로서의 삶이 그랬고, 정서와 환경이 따라주지 못한 때문이 아니었겠는가, 귀촌하신 스승님과 뜻하지 않는 백련재 조우는 그래서 더 반갑고 고맙다.

문학의집에는 필자를 포함해 작가 세분이 상주하고 있다. 코로나 19로 철저한 방역과 소독을 하고 있고, 작가들의 개인위생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조직이나 사회가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그 구성원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갖는 일이 어려운 일인데도 불구하고, 이은주 고산문학팀장을 중심으로 학예사 이유리선생과 정윤섭 박사의 리더와 운영관리가 돋보인다. 작가들에게 섬세한 배려는 물론, 가족처럼 따스한 관심과 애정은 창작몰입에도 큰 몫을 더해주고 있다.

孤山(고산) 선생의 체취가 묻어나는 五友歌(오우가) 수(水)방에 나약한 육체를 의탁하고 있다. 문학의 길이 내게 물질적인 넉넉함은 안겨주질 못했지만 배려와 나눔을 실천하며, 사랑을 안겨주는 동시에 생명력에 대한 사회적인 책임감과 사명감을 일어나게 해주었다. 삶에서 겪는 회의감도, 지독한 절망과 신의에 대한 상처들이 집요하리만치 따라다녔지만, 고독에만 그치지 않는 사유로 이끌어 준 것이다. 백련재는 그래서 내게 또 다른 문학의 빚을 남겨준 셈이다. 사회가 어려울수록 인문학의 가치와 역할은 실로 크다.

백련재 문학의집이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로 인문학이 되살아나는 동시에 한국문학의 미래가 울림과 끌림으로 빛을 발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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