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꽤나 잘 나갔거나 잘 만들어졌던 영화를 몇 부작 드라마로 만드는 것이 대세가 된 요즘이다. 거꾸로 옛날 드라마를 영화 한 편으로 만드는 것은 그래서 이색적이다. 최근 개봉된 ‘스턴트 맨’이 그렇다. 리 메이저스(그 유명한 ‘6백만 불의 사나이’의 주연배우)가 주인공 역으로 나온 드라마 ‘더 폴 가이(The Fall Guy)’는 1981년~1986년까지 ABC TV의 인기 드라마였고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TV 시리즈였다. 이 드라마를 영화 한 편으로 리메이크한 작품이 바로 지금의 ‘스턴트 맨’이다. 영화의 원제는 옛 드라마처럼 ‘더 폴 가이’ 그러니까 ‘추락한 남자’지만 개봉 과정에서 제목을 한국 관객들이 알기 쉽게 바꿨다. 눈이 좀 어두운 관객들은 이 영화가 그다지 재미가 없을 것이다. 온통 클리셰(cliché) 덩어리이기 때문이다. 그건 순전히 스토리 구성 탓이다. 영화 ‘스턴트 맨’은 당연히 ▲스턴트 장면을 ‘과하게’ ▲액션만을 ‘중점적으로’ ▲스턴트 장면을 기대하고 온 관객만을 철저하게 고려하여, 영화 구성을 짜야 했기 때문에 스토리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던 작품이다. 스토리’따위’에 신경 쓸 틈이 없다. 얘기는 가장 단순하게 만들면 만들수록 스턴트
우리에게는 아직 낯선 러시아 영화(이건 순전히 감독 이름과 배우 이름이 입에 쉽게 붙지 않아서인데 예컨대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같은 감독 이름은 도통 외워지지가 않는다. Tchaikovsky도 그렇다. 차이코프스키인가 차이콥스키인가. 이것도 오랜 세월 영어교육 대미 의존도가 강했던 문화 탓이다.) ‘차이콥스키의 아내’는 차이콥스키 얘기이긴 하지만 차이콥스키의 음악, 그러니까 그의 『백조의 호수』나 『비창』 같은 것은 나오지 않는다. 음악회나 연주회, 발레 장면도 이렇다 할 게 나오지 않는다. 영화 ‘차이콥스키의 아내’는 완벽하게 그의 아내 얘기이다. 영화는, 차이콥스키의 성적 취향에 따라 철저하게 버림받고 처절하게 유린됐던 아내 니나(안토니나 밀류코바)의 얘기를 담는다. 총 143분 러닝타임 중 절반이 지난 82분쯤 그 이유가 나온다. 차이콥스키(오딘 런드 바이런)의 여동생인 사샤(바르바라 시미코바)는 올케 안토니나 밀류코바(알리오나 미하일로바)에게 자신의 오빠는 ‘부그르’라고 고백한다. 니나는 부그르가 뭐냐고 묻고, 잠시 머뭇거리던 사샤는 이렇게 말한다. “오빠는 여자를 안 좋아해. 평생 여자를 좋아해 본 적이 없어. 오빠는 남자를 좋아해. 그것도 어린 남자
영화계의 중진으로 비교적 큰 영화사의 임원까지 지냈던 R씨는 요즘 주말에 택배 일을 한다. 은퇴 나이를 훌쩍 넘겨 영화 일을 그만 둔 지는 꽤 됐지만 노후를 위해 돈을 모아 두지를 못했던 것이 문제였다. 그럴 여유가 전혀 없었다. 현재 매달 나오는 국민연금은 턱도 없는 얘기이다. 소일 거리라도 하며 주변 사람, 경조사 비용이라도 보탤 겸 하는 심정으로 그는 얼마 전부터 K 배달 업체 엡을 깔고 주문을 받기 시작했다. “잘 연결되면 주말 하루에 10만 원 정도 벌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영화 배급 전문가인 A씨는 요즘 풀 타임 택배 노동으로 생계를 이어 간다. 영화계에서는 그가 일 할 공간은 이제 거의 없다. 그는 배급 마케팅 베테랑이다. 그의 오랜 영화산업의 경험과 지식은 외면 받고 있다. A씨는 야구 모자를 쓰고 다닌다. “나는 괜찮은데, 혹시 영화 쪽 아는 사람을 만나면 상대가 민망해 할 것 같아서”라고 그는 말했다. 이런 사례는 무수하게 많다. 영화 현장 미술 스태프로 일했던 M씨도 요즘 편의점 심야 알바로 생계비를 번다. “일이 전혀 들어 오지 않는다”며 그는 한숨을 쉰다. 나이가 젊은 축에 속하는 사람들은 대리 운전을 뛴다. 유명 영화에 나왔던
프랑스 출신의 촬영감독인 브누아 델롬의 첫 장편 연출작 ‘마더스’의 영어 원제는 마더스 인스팅트(Mothers’ Instinct)이다. 어퍼스트로피 s가 앞이 아니라 뒤에 찍혔다. 그러니까 엄마의 본능이 아니라 엄마들의 본능 혹은 엄마들의 직감이라는 뜻이겠다. 극 중 엄마가 복수하는 얘기이고 제목만으로도 두 엄마의 갈등, 음모, 범죄의 느낌이 나되, 그게 다 엄마 곧, 모성애의 발로나 그것이 원인이 된 것이라는 느낌을 준다. 이 영화는 2018년 올리비에 마셰 드파스가 만든 ‘뒤엘(Duelles, 대결)’을 리메이크한 영화이다. ‘마더스’는 제목을 원래대로 했다면 훨씬 더 이해가 빠를 수 있는 작품이다. 데미언-셀린 부부와 사이먼-앨리스 부부는 이웃간이다. 데미언(조쉬 팔스)은 제약회사에 다니고 사이먼(앤더슨 다니엘슨 라이)은 회계사이다. 셀린(앤 헤서웨이)은 예전에 간호사였고 앨리스(제시카 채스테인)는 기자였다. 네 사람 모두 40대 초반들이고(넷은 어느 날 케네디에 대해 얘기하는데 그가 너무 젊다고 데미언이 얘기하자 사이먼의 아내 앨리스는 "케네디는 43, 당신은 42이라며 나이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중산층이며 막 상류층으로 갈 수 있을까 말까
넷플릭스가 3월 초 공개했던 송중기 주연의 영화 ‘로기완’은 대단히 인상적인 작품은 아니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잘못 만든 작품이라고 까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특이한 소재의 영화였고 북한, 탈북, 난민이라는 정치적 개념을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간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건 새로웠다. 배우들도 안정적이다. 특히 조연들, 서브 텍스트 인물들이 흔들리는 드라마 전체를 탄탄하게 받쳐 낸다. 로기완 삼촌 역의 서현우와 엄마 역의 김성령은 일단 이 영화의 시작을 좋게 만든다. 연변 여자로 로기완의 고기 공장 선배 격인 선주 역의 이상희는 늘 그렇지만 연기가 최고 급이다. 변호사 역으로 나온 강길우, 여자 주인공 마리의 아버지 역으로 나온 조한철도 영화 전체를 안정적으로 받쳐 준다. 심지어 마리의 죽은 엄마 역의 이일화도 나쁘지 않다. 이 영화는 어쩌면 캐스팅이 살린 작품이다. 여주인공 마리 역을 맡은 최성은은 잘 하지도 못하지도 못했다. 그건 순전히 이 마리라는 캐릭터가, 당초 영화가 추구했던 작품의 방향(그런 게 만약 있었다면)에 비해 지나치게 과장되게 ‘운행됐기’ 때문이다. 그녀는 갱 세계에서 벌어지는 사격 도박판의 선수이다. 마리는 술과 약물, 무엇보다 폭력에
격렬한 역사의 과정을 겪은 나라일수록 문화예술 작품들이 뛰어난 건 각 개개인들의 에피소드가 차고 넘칠 만큼 풍부하기 때문이다. 근데 여기서 정작 중요한 것은 그런 게 아니다. 어두운 역사를 겪은 사람들에겐 선악의 구분 선이 다소 얇을 수밖에 없다. 살기 위해 배신도 했고 한때 지나친 욕망과 오만으로 과도한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기 때문이다. 정치는 자기 눈 앞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 탓, 비난을 하기에 정신이 없지만 예술, 특히 영화는 적어도 자기 반성 없는 비판은 하지 않는다. 영화가 종종 매우 중층적인 주제의식으로 선악이 모호한 결론을 내는 이유이다. 세상의 진실은 절대적일 수 없고 상대적이라는 진리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거기에 덧붙여 세상에서 유일한 진리는 변하지 않는 진리란 없다는 것이다라는 명제조차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는 그렇지 못하다. 자신 아들에게 학교폭력의 전력이 있음에도 모든 자식은 그 부모의 거울이라며 특정 개인을 향한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근데 그 정도는 귀여운 수준이다. 자신의 자녀 역시 유학을 보내기 위해 이런저런 스펙 쌓기를 막대한 돈을 들여 ‘인공적으로’ 만들어 냈다는 의혹이 큰 상황임에도 오히려 특정 집안의 교육 방식을
영화는 종종 도덕의 수많은 회색 지대를 탐색한다. 그래서 영화는 종종 불편하다. 심지어 불온하기까지 하다. 섹스와 성의 얘기가 정치적 선택의 영역까지 확대되기도 한다. 금기의 선을 넘는 것, 그 금기의 선을 만든 사람과 제도, 시스템에 의문을 표시하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제96회 아카데미상 각본상 후보에 올랐고 지난해 5월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경쟁작이었던 토드 헤인즈 감독의 ‘메이 디셈버’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을 수 있)는 작품이다. 제목인 메이 디셈버는 ‘메이 디셈버 어페어(May December Affair)’의 준말이다. 원래는 늙은 남자와 어린 여자와의 섹스 스캔들, 일종의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식의 로리타 스캔들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 영화 ‘메이 디셈버’는 성 관계가 바뀌었다. 나이 든 여자와 어린 소년의 섹스 스캔들을 다루기 때문이다. 그레이스(줄이앤 무어)와 조 유(찰스 멜튼) 부부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부부다. 아내는 59세이고 남자는 36이다. 24년째 살고 있는 부부이다. 이들은 여자가 36살이고 남자가 중1 때인 13살 때 만났다. 두 사람은 여자가 일하던 펫 숍 창고에서 섹스 행각을 벌이다 발각돼 세
세상의 영화가 ‘파묘’와 ‘듄 파트 2’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극장의 한편에서 조용히 상영되고 있는 일본 영화 ‘오키쿠와 세계’란 작품도 있다. 하늘에 구름이 있으면 땅에는 똥이 있는 법이다. 그렇다고 ‘파묘’와 ‘듄 파트 2’가 천상의 영화이고 ‘오키쿠와 세계’가 ‘똥 같은’ 작품, 곧 졸작이라는 얘기 따위는 결코 아니다. 세상의 고귀함과 비천함은 다르지 아니하며 손바닥 안과 손바닥 밖의 차이일 뿐이라는 얘기이다. 영화는 늘, 그 두 가지를 염두에 두고 이쪽 저쪽 모두를 찾아봐야 한다. 물론 ‘오키쿠와 세계’는 똥 얘기로 가득 차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의 남자 주인공 두 명, 야스케(이케마츠 소스케)와 츄지(칸 이치로)의 직업은 ‘똥 장사’이기 때문이다. 두 청년은 에도(도쿄)를 돌며 똥을 사(퍼) 와서는 채소밭 농부에게 거름으로 파는 일을 한다. 1860년대 즈음해서 그 앞뒤로 한참 동안 그런 ‘비천하고 비루한’ 직업이 있었다. 야스케와 츄지는 주로 빈민가 공동주택을 돌며 똥을 푸는데 여기에는 몰락한 사무라이의 딸 오키쿠(쿠로키 하루)가 살고 있다. 이 셋이 처음 만나는 곳도 동네 변소 앞이다. 츄지는 헌종이를 구해 떼다가 파는 일을 하다 비를 피
유인촌 장관님. 저는 영화평론가 오동진이라고 합니다. 프리랜서 라이터입니다. 프리랜서 생활을 한 지는 20년쯤 됩니다. 생면부지(라고 생각됨)에도 불구하고 장관께 이렇게 글을 올리는 이유는 이것 때문입니다. 원고료 좀 올려 주십시오. 원고료가 너무 낮아 프리랜서들의 생계를 이어 가기가 너무 힘든 지경입니다. 프리랜서 원고료 만이 아닙니다. 대학 강사들의 강의료도 좀 올려 주십시오. 여기도 굉장히 열악한 조건으로 일하고 있는 분야 중 한 곳입니다. 한국의 지식인 사회는 값이 너무 쌉니다. 지식의 가격이 너무 낮게 책정돼 있습니다. 프리랜서들이 받는 원고료는 제가 이 일을 시작한 2000년대 초반부터 200자 원고지 장당 8000원~1만 원 수준에서 요지부동, 고착화 된지 오랩니다. 원고 청탁은 대체로 원고지 10장, A4 용지로 한 장 반, 자수로는 2000자를 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10만원을 받을 때 3.3% 심지어는 8.8%까지 세금을 원천 징수 합니다. 결국 9만 원 남짓을 받는다는 얘깁니다. 한달에 원고지 300장, A4 17장, 글자 수로 6만 자 정도를 써야 300만원을 벌까 말까 합니다. 도시 노동자로 아이들을 키우며 살아 가는 사람이라
2018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일본의 미래사회, 정확하게는 일본의 10년 후에 대해 가한 예측은 많은 부분이 정확하지가 않다. 그는 코로나가 창궐하기 전에 신인 감독 5명을 기용해 ‘10년’이란 제목의 옴니버스 영화를 만들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세상이 코로나 이전과 코로나 이후로 나뉘게 될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전혀 생각지 못했다. 따라서 영화 ‘10년’은 역설적으로 미래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과거에 대한 영화이다.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우리가 그동안 미래 예측을 하는 데 있어 이른바 돌발 변수들을 얼마나 고려하지 않고 살아왔는가를 보여 준다. 우리 모두 코로나가 과거 흑사병 같은 팬데믹이 될지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영화는 인간의 상상을 기초로 하고 그런(상상하지 못했다는) 면에서 영화 역시 뒤처지고 말았다. 영화 ‘10년’은 그런 의미, 우리의 오류와 영화의 오류, 특히 세계적 거장인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오류를 확인할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에서 오히려 흥미를 가지고 지켜볼 만한 영상 기록물이다. 무엇보다 10년으로는 세상이 그렇게 바뀌지 않는다. 물론 10년 사이에 별의 별 앱의 개발이 뒤따르고(예를 들어 2018년에서 6년이 지난 2024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