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가 정란·바둑기사 정운창 등 당대 기인 재조명
“속된 뿌리가 골수에까지 파고든 사람은 비웃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수백 년 뒤에 비웃는 사람의 이름이 남아 있을까? 아니면 비웃음을 당하는 사람의 이름이 남아 있을까? 나는 알지 못한다.”
성호학파의 대표적 문인 이용휴는 남들이 추구하는 삶과는 다른 인생을 살았던 프로 여행가 정란에 대해 수 백 년 뒤에는 어떤 평가가 내려질 지 기다려보자고 했다.
20세기에는 ‘마니아’로 호명하고, 지금은 ‘프로페셔널’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
하지만 18세기에는 ‘무리와 다른 짓 하는 놈’으로 무시당하고 어리석은 기인으로 여겨졌던 이들이다.
강한 신분 제약과 획일적인 의식, 분명한 직업 귀천 등이 사회를 지배했던 조선시대에 가업과 고정적인 ‘선비정신’을 저버리고 낯선 분야를 개척한다는 것은 분명 기인이자 남들에게 비난받을 행동이었다.
비좁은 사회가 쳐놓은 테두리 안에서 그들의 탐구정신과 몰입은 주류사회로부터 일탈이거나 반항적인 행위로 보였을 터.
그래서인지 여행가, 바둑기사, 무용가, 책장수, 과학기술자 등 현대에서는 전문분야로 분류해 인정받는 각 분야 프로들을 조선시대에서는 찾기 힘들다.
명지대 국어국문학과 안대희 교수는 신간 ‘조선의 프로세펴널’에서 이용휴의 시각으로 조선시대의 프로를 발굴하고 그들에 대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
그가 찾은 조선의 프로는 대개 18세기를 살았던 인물들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다.
예를 들어 전라도 보성의 이름 없는 평민 소년 정운창은 조선 제일의 국수가 되기 위해 10년동안 오로지 바둑만을 연습했다.
안정된 신분과 출세길에 연연하지 않고 백두산부터 한라산까지 조선 팔도의 산천을 모두 오른 정란은 중국과 일본 그 이상의 세계 여행을 꿈꿨으리라 확신할 수 있다.
천민으로 남의 집 종이었던 이단전은 신분에 걸맞지 않게 시인이 되고자 밤새워 글쓰기를 10년간 지속했다.
연암 박지원의 글에 등장하는 기생 ‘운심’은 검무를 잘 추고 자신의 예를 사랑하며 춤의 최고봉에 올랐던 춤꾼이었다.
꽃을 사랑하는 열정으로 화훼 관련 전문지식에서 최고를 자랑했던, 원예가 유박도 잘 알려지지 않은 전문가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인물은 한국의 역사교육에서 주목한 정치가나 학자, 문인과 예술가들이 아니다.
생전에 주목받았고 사후에도 주목받았던 친숙한 인물도 없다.
안 교수가 발굴한 10명의 조선시대 프로들은 생전에 주목받지 못하고 오히려 비난받았던 인물들이다.
때문에 낯설다. 하지만 그들에게서 찾을 수 있는 공통점 한 가지를 이해한다면 시간이 흐른 지금, 조선의 ‘진정한’ 프로를 만났노라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은 바로 한 분야에서 독보적인 경지를 이루기까지 다른 이의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그것에 대한 순수함과 열정을 지켰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자신을 팔아 돈을 잘 버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옳다고 믿는 한 가지 일에 조건 없는 도전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수백 년 뒤에 비웃는 사람의 이름이 남아 있을까? 아니면 비웃음을 당하는 사람의 이름이 남아 있을까?’
과거 이용휴가 조선 산천 밟기에 오롯이 인생을 건 정란을 두고 던진 질문이다.
이 책을 읽는 이들은 어떤 대답을 할 지 궁금해진다.
류설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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