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에세이] 도루묵의 진실

2011.12.18 18:19:04 12면

 

강의를 마치고 식사하러 가는 시간, 잠시 여유가 있어 안성천을 걷는데 뜬금없는 소리로 “이곳은 하늘이 참 많아요. 오분의 사는 하늘인 것 같아요.”

태어나 서울에서만 살다 안성으로 이사 온 김선생님의 얘기에 올려다 본 하늘. 정말 하늘이 많았다. 빌딩에 가려 숨은 하늘, 산에 가려 좁아진 하늘과 달리 탁 트인 들판을 향해 온몸으로 환호하는 저 환한 하늘의 존재. 늘 안겨 있으면서도 늘 품고 있으면서도 그 존재를 몰랐다니….

식당에 도착한 우리는 도루묵 찌개를 주문했다. 어려운 시절에 어머니께서 끓여준 그 도루묵의 맛을 잊을 수가 없다는 노 교수님에 대한 배려였던 것이다. 도루묵만 보면 몇 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과 그 더없이 환하게 마주했던 미소가 떠올라 다시 행복해진다는 그. 그는 이미 도루묵의 추억 속에서 얼굴이 화사하게 피어나고 있었다.

도루묵이라는 생선, 원래 이름이 ‘묵’이었는데 병자호란 당시 인조 임금이 피란을 가서 먹을 것이 귀할 때 신하가 올린 ‘묵’이라는 생선이 너무 맛있어 이름을 ‘묵’이 아닌 ‘충미어’로 격상시켜 부르게 했다고 한다. 그 후 전쟁이 끝나고 궁으로 돌아온 인조는 옛날 그 충미어 생각이 나서 요리를 해오게 했는데, 수라상에 오른 ‘충미어’는 옛날 그 맛이 아니었다. 크게 실망한 인조임금이 이름을 도로 ‘묵’이라 부르라 해 그 이름이 ‘도루묵’이 됐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항상 함께 하는 하늘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하고 살 듯 사람들은 없을 때 희귀할 때 간절히 원할 때의 그 절절함이 배가 됐을 때 그 존재가치를 제대로 깨닫게 되는 것 같다.

그런데 참 신기한 일이다. 없을 때 희귀할 때 어려울 때 깨달았던 그 소중한 존재가치에 대한 기억이 먼 훗날까지 행복감을 주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무덤덤해지고 오히려 실망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니. 그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이유를 추억하고 기억하는 이의 마음속에서 찾고 싶다.

도루묵을 추억하는 인조임금의 마음속엔 맛본 순간의 그 황홀한 맛만 담겨 있었지 결코 그리워하는 마음은 담겨 있지 않았다는 것. 하지만 노 교수님의 도루묵을 추억하는 마음속엔 맛과 함께 어머니에 대한 그 어린 날의 그리움이 더 크게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먹을 때마다 도루묵찌개에서 어머니의 손맛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몇 년 전 한라산 산행 중에 백록담 정상에 올라 먹어 보았던 그 평범한 도너츠의 황홀했던 맛을 나는 결코 잊을 수가 없다. 그날 이후로 나는 도너츠 먹는 걸 거부하고 있다. 혹여 인조임금의 도루묵처럼 실망하게 될까봐 9시간 등반 중에 맛보았던 그 황홀한 맛을 가슴속에 오래도록 담아두고 싶을 뿐이다.

식사 끝나고 안성천을 걸어 돌아오는 길에 자꾸 하늘로 눈길이 갔다. 때론 우연히 그 소중함을 깨닫게 되고, 그 소중한 순간의 추억이 오래도록 행복을 안겨주기도 하는 것. 오늘은 가슴 헛헛하다 탓할 게 아니라 저 환한 하늘 가짐에 감사해야지.

/이상남 수필가

▲에세이문예 수필등단 ▲평택문협 회원 ▲독서토론논술 안중문화원장(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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