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詩산책]그날은 새

2012.12.11 20:23:41 13면

이젠 몇 년이었는가

아이론 밑 와이샤쓰 같이

당한 그날은……



이젠 몇 년이었는가

무서운 집 뒷창가에 여름 곤충 한 마리

땀 흘리는 나에게 악수를 청한 그날은……



내 살과 뼈는 알고 있다.

진실과 고통

그 어느 쪽이 강자인가를……



내 마음 하늘

한편 가에서

새는 소스라치게 날개 편다.

/천상병

-천상병 전집-1996년 평민사

 

 

 

바보 시인이라 불리던 시인이 있었다. 시 「귀천」으로 친숙한 천상병 시인.

이 세상을 “소풍”으로 비유했던, 그의 삶은 너무나 기구하여 자주 회자되곤 한다. 오래전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 고문을 받으며 6개월간 감옥생활을 했던 시인.

고문 후유증과 영양실조로 쓰러져 정신병원에 수용되었는데, 가까운 문인들은 그가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여 유고시집 『새』(1971년)를 펴내기도 했다.

이 일화는 부끄러운 유신의 역사가 만들어낸 것이다. 그가 억울하게 “아이론 밑 와이샤쓰 같이/ 당한 그날”, 비로소 그의 살과 뼈는 깨닫는다. “진실과 고통/ 그 어느 쪽이 강자인가를”…… 그의 “마음 하늘/ 한편 가에서” 소스라치게 날개를 펴던 새는 자유로운 하늘에 있던 것이 아니라, 시인의 “마음 하늘”이라는 공간에 갇혀 있었던 것이다. 새는 저 하늘에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은 자기 자리에 있어야 한다. 그런 세상이 어서 오기를, 우리 손으로 만들 수 있기를……

/이설야 시인

 

경기신문 webmaster@kgnews.co.kr
저작권자 © 경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영덕동 974-14번지 3층 경기신문사 | 대표전화 : 031) 268-8114 | 팩스 : 031) 268-8393 | 청소년보호책임자 : 엄순엽 법인명 : ㈜경기신문사 | 제호 : 경기신문 | 등록번호 : 경기 가 00006 | 등록일 : 2002-04-06 | 발행일 : 2002-04-06 | 발행인·편집인 : 김대훈 | ISSN 2635-9790 경기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Copyright © 2020 경기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kg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