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지 경기도 38선 횡단 최다 기록 보유자

2013.06.05 17:06:15

 

해방 직후다. 우리나라에는 미국과 옛 소련의 분담 점령을 위해 북위 38도를 경계로 선이 하나 그어졌다. 38선이다. 이 선을 경계로 미국과 옛 소련은 우리나라를 남과 북으로 나누어 영향력을 행사했고, 사상·이념 등이 대립하면서 6·25전쟁이라는 비극을 맞아야 했다. 그렇게 38선은 1953년 휴전선이 생겨나기 전까지 남과 북을 가르는 경계점이었다.

어느덧 정전 60년이다. 하지만, 전쟁의 아픔은 치유되지 않은 채 그대로다. 당시 희생된 호국영령의 넋을 기리기 위해 매년 38선을 횡단하는 부부가 있다. 유대지(64)씨 부부가 그 주인공이다. 19년 동안 무려 80회를 횡단, 경기도 38선 횡단의 최다 기록 보유자다. 그를 만나 전쟁에 대한 아픈 사연과 횡단 이유를 들어봤다.

 


전쟁으로 희생된 호국영령들의 애국애족 정신을 기리기 위한 38선 횡단

그는 유복자다. 1949년 3월, 경상북도 경주경찰서 안강지서장으로 재직 중이던 그의 아버지는 동료 경찰 2명과 순찰을 돌던 중, 북한 인민군 소속 빨치산 부대원 20명과 교전하다 전사했다. 당시 아버지의 나이는 스물일곱이었다. 이 사건이 바로 그에게서 아버지를 앗아간 두류리전투다.

3살 때는 어머니마저 돌아가셨다. 할머니 슬하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그에게 얼굴도 보지 못한 아버지는 늘 그리움과 자랑스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런 그가 전쟁으로 희생된 호국영령들의 애국애족 정신을 기리기 위해 38선을 횡단하기 시작한 것이다.

38선 횡단은 늘 아내와 함께였다. 국가유공자인 친 오빠와 시아버지로 인해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아내에게도 전쟁의 아픔은 남의 일이 아니었다. 강원도 양양에서 파주 임진각까지 이들은 걷거나 자동차, 자전거를 이용해 횡단한다. 그렇게 19년 동안 유씨 부부가 38선을 횡단한 횟수는 80회다.

1994년 당시 남한의 김영삼 정부와 북한의 김일성 정부는 핵 문제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고, 유씨는 핵문제 반대와 나라의 평화를 위해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백령도까지 20여일 동안 걸었다. 이 행보가 횡단의 첫 시작이었다. 이후, 매년 3~4회씩 38선을 걷던 유대지씨는 2000년에 조국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미국에 건너가 10일 동안 워싱턴, 샌프란시스코, LA 등 13개 주를 자동차로 달렸다. 그래선지 유씨는 ‘38선맨’이라 불린다.

“38선은 우리 민족이 잊지 못할 전선입니다. 38선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호국영령들이 산화했고, 많은 사람들에게 그들의 애국애족 정신을 전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38선을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이유 외에도 제가 38선을 찾는 것은 아버지와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기도 합니다.”

에세이 ‘나는 호로자식이 아니야’ 발간

38선 횡단은 보통 1월1일, 3월23일(선친의 기일), 6월25일 이렇게 3차례에 걸쳐 이루어진다. 매년 찾는 38선이지만 횡단이 늘 쉬운 것만은 아니다. 비가 올 때나 눈이 올 때는 언제나 힘들었고, 졸음에 잠긴 운전으로 위험천만한 고비를 넘기기도 부지기수다.

하지만 그의 걸음은 멈출 줄 몰랐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호국영령의 가족들 심정을 이해하기 때문인지, 한때 대한민국전몰군경유족회 회원부장을 맡았던 그는 현재 유족회 일은 하지 않고 있지만,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알려주며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그런 유씨가 지난해 9월 육필에세이 ‘나는 호로자식이 아니야’를 발간했다. 정전 60주년을 앞두고 발간한 이 책은 전쟁의 참상과 가정의 소중함을 전하기 위해 할머니와 손자의 파란만장한 삶을 내용으로 한 그의 자서전이다. 어린 시절, 양 부모를 여의고 할머니 슬하에서 자라온 이야기를 책에 담았다고 소개하던 그의 목소리가 점점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젖어갔다.

책을 통해 대중들에게 메시지를 주고 싶고, 판매 수익금의 일부를 기부하려는 그이지만 홍보가 부족한 탓에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이 책에 대해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책을 읽어 본 독자들의 호평이다. ‘내용이 참 좋다’ ‘너무 감동적이다’라는 평들이 들려올 때마다 그의 마음은 뿌듯하다.

아버지의 동상을 세우는 것이 필생의 소원

그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38선을 향한 걸음을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아내와 함께하여 외롭지 않은 길이지만, 그런 그도 사람들이 무관심한 모습을 보여줄 때면 안타깝다고 한다.

“요즘에는 38선 하고 휴전선의 개념을 잘 모르는 분들이 많아서 답답하더라고요. 38선은 광복과 동시에 그어진 거고, 휴전선은 6·25전쟁이 끝나고 그어진 건데 젊은 사람들이 그걸 잘 몰라요….”

요즘 북한과의 핵 문제로 대립 중인 상황을 얘기하던 그는 “얼른 남북 간에 화해를 해가지고 우리 국민들에게 전쟁이 없는 평화스러운 분위기가 조성됐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한다. 이어 그는 “여건이 된다면 완전한 38선, 황해도 옹진반도까지 달리고 싶고, 남북관계가 좋아지면 평양에서 출판기념회도 하고 싶다”라고 북한과 관련된 자신의 소망을 드러냈다.

그에게는 바라는 게 또 있다. 여력이 된다면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북미 대륙의 38선을 한번 더 횡단하고 싶다는 유씨는 자신의 책을 한·미 두 나라의 대통령과 반기문 UN 사무총장에게 전해주고 싶다단다. 소망을 이야기하던 그는 생전에 한번도 보지 못한 아버지의 남겨진 사진을 기자에게 보여주며 마지막 말을 이었다.

“아버지의 애국애족 정신과 살신성인의 자세를 기려 생전에 아버지 동상을 세우는 것이 제 필생의 소원입니다. 앞으로도 저는 보훈가족의 복지를 위해 여생을 보내고, 아버지의 애국애족 정신을 추모하는 데 심혈을 기울일 것입니다. 이와 더불어 우리 국민들도 우리나라 역사와 선열의 애국애족 정신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백미혜 기자 qoralgp9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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