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시산책]유품

2019.03.24 19:08:00 16면

 

 

 

유품

                       /김종경



월남한 당신이

한평생 품고 살았던

낡은 지갑 속

깊은 주머니에서 나온

흑백 사진 한 장



까까머리 청년이

고향에 두고 온

첫사랑인가, 아니면

오래된



애인이었을까



어머니는

짐짓

고개를 돌린다

- ‘기우뚱, 날다’ / 실천문학사·2017년

 

 

아버지의 유품 속에서 낯모르는 사진을 발견한 어머니, ‘첫사랑인가, 아니면/오래된/애인이었을까’ 깊은 의문을 가진 사진을 보고도 ‘어머니는/짐짓/고개를 돌린다’. 어머니는 감정을 회피함으로써, 뜻하지 않는 상황을 포용하는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위장된 수용이고, 일종의 도피다.‘월남한 당신’의 일생은 어디에도 쉽게 뿌리 내릴 수 없었을 것이다. 부유하는 사내의 일거수일투족은 아내의 생존권과 연동되었을 것이다. 이해와 배려 속에서도, 여자의 육감(六感)은 수시로 작동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 어머니는 감지하지 못했을까. ‘흑백 사진 한 장’에 대한 역사가 生-너머에서 재편집되고, 아버지는 죽음으로부터 재소환 중이다.숨겨진 역사는 남는 자의 뜨거운 저울 위에 오른다. 혹여 사내의 숨겨둔 그리움을, 분단된 사랑을, 여자는 알고도 모르는 척 지켜준 건 아니었을까. 슬픔이 큰 사람끼리는 서로 봐주는 게 있지 않았을까(!). 아들의 시선을 따라가던 독자는 詩 밖에서 문득 상상력을 높이게 된다.

/박소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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