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섬을 가다 8 - 북도면의 꼬마섬, 섬 속의 섬, 모도(茅島) 산책

2020.11.19 09:11:57 15면

 

 행정구역, 인천광역시 옹진군 북도면 모도리! 혹시 ‘모도(茅島)’라는 섬을 들어보셨나요? 조선시대까지 강화군 제도면(諸島面)에 속해 있다가 일제강점기인 1914년 부천군 북도면(北島面)으로 행정구역이 바뀌었다.

 

당시 부천군 소재 섬 지역 중 가장 북쪽에 위치해 북도면이라 명명했고, 그 이름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북도면에 속한 4개의 섬 중 가장 작은 꼬마 섬, 섬 속의 섬처럼 느껴져 정겨운 섬! 아늑하면서 따스함을 느끼기에 좋은 섬, 모도를 소개한다.

▶ 감상 Point 1. 섬의 주변 환경과 교통편

 

북도면은 4개의 섬으로 이뤄졌다. 오른쪽부터 신도(信島), 시도(矢島), 모도, 장봉도(長峰島) 순으로 일렬로 위치하며 장봉도를 제외한 신도, 시도, 모도는 섬 사이에 다리가 연결(連島橋)돼 자유롭게 왕래가 가능하다.

 

북쪽으로는 강화도 남단 즉, 화도면 마니산과 초피산, 길상면 길상산이 머리 위에 펼쳐져 있고 남쪽으로는 영종도와 용유도를 거점으로 건설된 인천국제공항이 턱 밑이다.

 

모도를 가기 위해서는 먼저 영종도 삼목선착장에서 여객선을 타고 10분 정도 가면 신도에 도착한다. 신도에서 모도까지는 연도교가 놓여 있어 매우 가까운 편이다. 여름철에는 피서객들로 인해 한적한 어촌 마을이 차 반, 사람 반으로 매우 복잡하지만 요즘은 비교적 한적한 상황이 이어져 여행하기에 제격이다.

 

자신의 승용차를 갖고 유람하길 권하며, 인천 시민은 뱃삯의 반만 지불하면 된다. 모도에 들어서자마자 입구에 식당이 있어 모도산 해산물을 직접 공수한 재료로 푸짐하고 다양한 음식을 제공한다. 요즘은 굴요리가 제철이다.

 

▶ 감상 Point 2. 섬의 지명 유래

 

왜, ‘모도’의 지명유래는 어떻게 될까? 모도는 한자로 ‘띠 모(茅)’, ‘섬 도(島)’로서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진다. “통진 조강포에서 중선을 부리던 차영선(車永善)이라는 사람이 그물질을 하는데 고기는 한 마리도 안 잡히고 띠 뿌리(벼과의 풀) 뭉치만 올라와 화가 나서 그물을 거두었다. 그 때부터 띠만 걸리는 섬이라고 해서 ‘띠염’ 즉 ‘띠 모(茅)’자와 ‘섬 도(島)’자를 써서 모도라 부르게 됐다는 것이다.”

 

이곳 어르신들은 이 섬을 ‘띠염’으로 부르고 있으며, 실제 섬의 중앙에 위치한 산의 이름도 ‘띠염산’이다. 전설은 전설일 뿐 모도 주변에는 조선시대 3대 어장이었던 만도리 어장을 비롯해 황해의 독특한 멍텅구리 배인 곳배가 새우를 잡아 만선의 기쁨을 누렸던 곳도 시도와 모도 사이의 수로 일명, 곳배웬돌끼미였으니 아이러니하다.

▶ 감상 Point 3. 섬 사랑으로 일궈낸 모도 간척지와 간척의 배경

 

모도에는 원래 논이 없었지만 여기에는 당시 모도출신 북도면사무소 최영윤씨의 숨은 공로가 크다. 그는 모도 주민의 편의를 위해 연도교 건설을 제안한 바 있고, 특히 모도 주민에게 개구리 울음소리를 들려주고 싶다는 건의를 했다. 1982년 내무부 장관이었던 노태우 전 대통령이 이곳을 방문한 이후 1984년 7월 400m의 제방을 쌓아 8㏊의 농경지가 조성돼 벼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됐다고 하며, 개구리는 자연적으로 생겨나 그 울음소리를 듣게 됐다고 한다.

 

당시 간척지 면적은 총 40필지였으며, 모도 주민에게 1인 당 2필지씩 싼 값으로 불하했다고 한다. 그러나 인천국제공항이 들어서면서 이웃 섬인 영종 주민 등 외지인들이 현 간척지를 매입하는 등 현재 모도 간척지 대부분은 외지인의 소유라고 하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현재 모도는 물이 부족해 농사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어 저수지를 논 옆에 마련했으며 쌀은 맛있기로 유명하다. 현재 간척을 위해 쌓은 제방에 해당화 꽃길을 조성했으며, 간척지는 논과 논농사를 위해 저수지로 활용하고 있다. 현재 간척의 사실을 알리는 목제 안내판이 섬 입구에 서 있다.

▶ 감상 Point 4. 이건창 암행어사 불망비

 

모도에 들어서면 마을 앞에 작은 공원이 있고, 그 공원에 이건창 암행어사 불망비가 있다. 이 비석 안내문에는 “1880년경 경기도지역 암행어사의 배명(拜命)을 받아 모도 주민들의 어려움을 해결해준 이건창의 공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이건창은 구차한 차림새로 가장하고 자기 고향인 강화도를 비롯해 외따로 떨어진 섬들을 두루 암행하며 민정을 살폈다. 당시 모도의 주민들은 과중한 세금과 부역으로 인해 생활고가 극심해 그 실상을 눈뜨고는 못 볼 지경이었다. 이에 이건창은 조정에 건의해 세금과 부역을 면제토록 해줬다. 그 이후 주민들은 생의 의욕을 되찾아 더욱 부지런히 생업에 종사해 살림이 풍요로워졌다고 한다. 이에 을유년(1885년) 6월에 주민들은 이건창 암행어사의 은혜에 보답하고 그 뜻을 잊지 않겠다는 간절한 마음을 모아 ‘이건창암행어사불망비’를 세우게 됐다”고 적혀 있어 당시 상황에 대한 이건창의 주민 사랑을 엿볼 수 있다.

▶ 감상 Point 5. 배미꾸미 해변과 조각공원에서 힐링의 시간을

 

모도 남단에 위치한 배미꾸미 해변, 이곳에는 이일호 작가의 작품을 전시한 야외 조각공원이 있으며, 음료와 다과를 즐길 수 있는 카페도 마련돼 있다. 특히 해질 녘 바다를 바라보는 전망과 한적한 모래해안가는 나를 감싸는 여유로움과 함께 바로 이곳이 ‘별유천지 비인간’임을 깨닫게 된다. 섬 속의 꼬마 섬, 모도를 추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석훈·인천섬유산연구소 이사(문학박사)

이인수 기자 yis6223@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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