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이지 오랜만에, 책 한 권에 오롯이 빠져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소설도 아닌데 다음 장이 궁금해 손에서 놓을 수 없을 만큼 재밌었고, 꼬박 하루 만에 230여 쪽의 분량을 다 읽어냈다.
큰 기대 없이 펼치게 된, 아니 실은 약간의 거부감과 ‘보나마나 뻔한 내용이겠지’하는 빈정거림의 마음으로 열었던 책, 제목은 ‘이재명에게 보내는 정조의 편지’다.
갑자기 어딘가에서 누군가 ‘에이~’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또한 당연히 그럴 것이라 여겨진다. 더구나 현 시점에서, 그 의도가 미루어 짐작되고도 남으니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다. 저자 김준혁(한신대학교 교수)은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정조와 같은 개혁의 리더로서, 반드시 성공한 개혁가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대놓고 밝혔다. 왜? 정조를 통해 이재명을 보게 됐고, 이재명을 통해 정조를 다시 보게 됐기에, 정조가 품었던 ‘개혁의 꿈’을 그가 오늘날 현실에서 꼭 실현해주길 바라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그 결과는, 정조의 한계를 넘어 남북이 화해하고 강대국의 눈치를 보지 않는 자주국가, 지역갈등이 사라지고, 학력 차별과 경제적 차별로 고통 받지 않는 나라가 됐으면 한다는 기대감도 숨기지 않았다.
그것은 곧 정조가 ‘꿈꾸었던 세상’에 대한 기대였고, 또 정조가 ‘끝내 이루지 못한’ 개혁 정책들을 완성해줄 적임자로서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바라보는 믿음이기도 했던 까닭이다. 그러니 굳이 ‘아닌 척’ 해야 할 이유도 없고, 또 그래야 할 필요도 없었다.
김준혁 교수는 이처럼 명확한 뜻과 명분을 가지고 이 책을 썼다. 그런데 그 출발이 고작 2개월 전이다. 지난 7월 1일 이 지사의 대통령 출마선언을 보고 시작됐으니, 기획부터 출간까지 2달도 채 걸리지 않은 셈이다. 특히 글 쓰는데 할애한 시간이 불과 일주일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고 해 놀라움을 더했다.
김 교수는 “이재명 지사가 대선 출마 선언문을 발표할 때 기본소득부터 규제 합리화, 문화유산 등 여러 가지 내용을 이야기했다. 특히 문화를 콘텐츠화 해 활성화 하겠다고 밝혀 깜짝 놀랐다”며, “이 사람이 문화를 알고 있었나? 돌이켜보니, 성남문화재단을 당시 독보적인 존재로 만들었던 것이 떠올랐고, 그의 마인드에 확신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김동균 변호사한테 자세히 들은 얘기”라며 이 지사가 사법연수원에서 나올 때 5등 안에 들었음에도 불구, 노동자를 위한 변호사가 되겠다고 선언하며 검사나 판사를 하지 않은 일화를 들려주기도 했다.
김 변호사에 대해서는 연수원 17기인데 몸이 안좋아 18기인 이재명 지사와 1년을 같이 다니고 졸업을 하게 된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이렇듯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책을 써야겠다고 마음을 굳히게 된 결정적 배경에는 사실 하나의 한자성어가 자리잡고 있었다. 바로 ‘특권과 반칙에 기반한 강자의 욕망을 누르고, 약자의 삶을 보듬어 안정되게 살아가게 한다’는 의미의 ‘억강부약(抑强扶弱)’이다.
주지하다시피, 이는 정조의 원대한 꿈이기도 했다. 그래서 모순을 바로잡고 백성들의 삶을 지켜주기 위해 반드시 해내야 한다는 신념으로, 평생 온갖 노력을 다하면서 개혁을 추진했다. 하지만 결과는 쓰디쓴 실패였다. 지금으로부터 221년 전의 일이다.
그런데 이재명 경기지사가 이번에 제20대 대한민국 대통령 경선 출마선언문을 통해 이 말을 언급한 것이다. “약자의 삶을 보듬는 억강부약 정치로 모두 함께 잘 사는 대동세상을 열어가야 한다”면서.
물이 백성이라면 달은 곧 군주라. 모든 강물 위에 달빛을 고루 비추는, 달과 같은 군주가 되길 소망했던 정조. 그런 그가 그토록 애타게 만들고 싶었던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 찰나, 그 시점은 마치 정조가 김준혁 교수에게 빙의(?)되는 것만 같은 순간이었다.
책 한 권의 원고를 완성하는데 일주일이면 충분했다는 김 교수의 설명이 그제야 이해가 됐다. 얼마나 하고 싶은 얘기들이 많았을까를 생각하니 왠지 측은한 마음까지 들었다. 결국 이 책은 그렇게 정조의 ‘심정’을 고스란히 받아 정리한 이재명 후보에 대한 당부라 할 수 있다.
“아, 눈물이 모두 말라버린 줄 알았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른다. 억강부약. 이미 사라진 줄 알았던 말이 다시 이 세상에 당당하게 등장했으니, 놀라움과 기쁨 그리고 환희로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책의 시작을 알리는 정조의 말이다. 그러면서 자신이 실천했던 일들을 열거하며 성공의 희열과 좌절의 아픔을 털어놓을테니, 그러한 역사적 경험을 토대로 부디 억강부약의 시대를 열어달라고 말한다.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책은 펴는 순간부터 김 교수를 까맣게 잊게 한다. 진짜 정조가 옆에서 자신의 인생과 삶의 우여곡절에 대해 차분하지만 강한 어조로, 조곤조곤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는 듯한 착각이 있을 뿐이다.
고통스러웠던 어린 시절, 고난과 공부에 대한 집념, 가족 간 불화 등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비극적인 사건에서부터 거중기와 첨단 과학기술 육성, 부정부패 척결, 혼인 정책과 양극화 해소 등 조금은 생소한 일화들까지, 때론 콧등을 찡하게도 혹은 웃음짓게도 한다.
이밖에 ▲융정과 국방 개혁 ▲자휼전칙과 복지국가 ▲신해통공과 경제부흥정책 ▲과거 응시 금지와 지역갈등 해소 ▲대유둔 개발과 삶의 질 보장 ▲탕평과 포용 정책 ▲이단 포용과 문화 다양성 등 정조의 혜안이 담긴 특별한 정책들도 만나볼 수 있다.
무엇보다 강자들의 시대, 즉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은 결코 대우 받을 수 없던 시대, 권력을 가진 자들에 의해 나라가 움직이던 시대, 돈 있는 자들이 권세 있는 자들과 결탁해 이익을 얻는 시대를 살았던 자신의 처지를 비통해 하는 모습도 안쓰럽게 다가온다.
“억강부약은 내세울 순 있어도 실천하긴 어려운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 억강부약을 위해 목숨을 건 이들 중 누구 하나 살아 남지 못했다. 그들이 가진 혁명의 영혼은 저 권력의 칼날에 힘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이렇듯 정조는 자신의 한계를 고백하고, 실천의 문제를 강조하면서 강력한 지도력으로 그러한 저항을 뚫고 나가야 한다고 피력한다. 물론 이러한 모든 이야기들은 김준혁 교수의 손끝을 통해 완성되고 우리에게 전해졌다. 다만, 그 정신과 조언의 말, 새로운 시대를 향한 갈망 등은 온전히 정조의 것이라 감히 말할 수 있을 듯하다.
김준혁 교수는 “차기 정부가 18세기 실학에서 가장 좋은 장점들을 21세기 대한민국의 현실에 맞춰 국가 경영이나 복지, 노동 등 분야에 적용시켜야 한다”면서 이는 지방분권, 지방자치 속에서 활성화시키고 확대하는 문제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특히 실학 전문가로서 관련 정책을 마련하는데 크게 기여하고 싶다는 의지를 강하게 어필했다. 그는 “정조와 다산의 정신이 녹아든 이재명의 개혁, 그러니까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을 아우르면서 이어지는 민주개혁 세력들이 정조의 개혁을 이어 나가는 그런 국가가 될 수 있도록 나 역시 노력하고 큰 역할을 하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 경기신문 = 강경묵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