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더국은 남쪽 언어로 수제비를 말한다. 고향에서는 수제비라고도 하지만 뜨더국이라는 말을 더 많이 쓴다. 더운 여름보다는 찬기운이 돌기 시작하는 초가을이나 겨울에 얼큰하게 해 먹는 뜨더국을 고향에서는 국수만큼이나 좋아하고 자주 먹었던 음식이다.
배고픈 시절에는 옥수수나 콩이 여물기만을 간절히 기다린다. 간절함이 있으면 곡식이 크는 소리와 익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옥수수가 이삭을 업기 시작해서 통통해지고 작은 알갱이가 누렇게 되면 그때부터 갖가지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다. 초가을부터 옥수수로 만든 올챙이국수, 풋 강냉이 지짐, 꼬장떡 등 먹거리가 풍성해진다. 어려운 시기에는 강냉이(옥수수) 알이 들어서기 시작하면서부터 먹었다. 여물기 전의 옥수수는 초당 옥수수 맛과 비슷하다. 영양분도 적어 아무리 먹어도 허기를 면하지 못함에도 가난한 시절에는 밭에 옥수수가 어서 빨리 여물기만을 기다렸다.
뜨더국은 밀가루로 만들어야 제 맛이다. 밀가루를 반죽하여 호박이나 풋고추를 넣고 끓이다가 쭉쭉 늘려 뜯어서 넣으면 된다. 밀가루로 만든 뜨더국은 쫄깃하고 맛있다. 겨울에는 김치를 넣기도 하고, 여름에는 나물국에 넣기도 한다. 밀가루가 흔하지 않은 시기에는 옥수수가루를 섞기도 한다. 순수 옥수수 가루는 밀가루와 달리 탄성이 적어 늘리지 못하고 뚝뚝 뜯어 넣는다. 국물이 세게 끓을 때 넣어야지 덩어리가 풀어지는 경우도 있다. 고향에서는 뜨더국 재료로 밀가루보다는 옥수수 가루로 많이 만들었다. 초가을 햇 옥수수를 잘게 분쇄하여 굵은 것은 밥으로 만들고 나머지 가루는 보드랍게 채를 쳐서 음식을 만든다.
엄마 손이 분주한 가을에 뜨더국은 하루 세끼 먹거리 근심을 덜었다. 뜨더국은 밥과 국, 찬으로 구색을 갖추는 것이 아니어서 번거롭지도 않다. 끓고 있는 국 가마에 가루 반죽을 뜯어 넣으면 된다. 주식과 부식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어 간편하고 맛도 좋다. 배고픈 시절에는 맹물에 나물을 넣고 수제비 조각이 몇 개만 있어도 허기를 채울 수 있어 좋았다. 엄마는 쉽고 간편한 뜨더국을 자주 해 주었다. 뜨더국 반죽할 때 생기는 그릇 부딪히는 소리와 보글보글 끓고 있는 국물에 반죽을 넣은 수제비를 호르륵 맛있게 먹었던 그 시절
남쪽에도 뜨더국(수제비) 맛 집이 있다. 넉넉하게 넣은 수제비 재료에 해물까지 얼큰하게도 담백하게도 만든다. 신선한 재료로 만들어 비교할 수 없이 맛있다. 그럼에도 배고픈 시절에 엄마가 만들었던 뜨더국이 그리울 때가 있다.
요즘 가을비가 자주 내린다. 더위가 언제 있었는가 싶게 바람도 제법 차가워졌다. 코로나19로 사투를 벌이는 동안 여름도 휘딱 지나갔다. 바람이 차갑다고 느낄 때, 나무에 맺힌 빗방울이 눈물처럼 느껴질 때면 엄마가 만들어준 뜨더국이 생각난다. 뜨더국은 가난을 기억하게 하는 고마운 추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