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제일 선망하는 고등학교는 과학고가 아니라 영재학교다. 모두 8개의 고교과정 영재학교가 학교당 평균 100명, 총 800여 명의 신입생을 뽑아 총재학생이 2500명에 달한다. 압도적으로 남학생이 많아서 현재 7대 1이다. 학생 1인당 교육비가 서울대학교의 1인당 교육비보다 많고 명문대 진학실적도 과학고를 능가한다. 당연히 입학경쟁이 뜨겁다. 그동안 평균경쟁률이 10대 1을 넘었으나 금년부터 1인1교만 지원 가능하게 규정을 바꿔서 6대 1로 줄었다. 머지않아 5000명 지원자 중 3단계 선발과정(서류전형-영재성검사-캠프생활)을 모두 통과한 800여 명이 합격의 영예를 얻고 수학과학 영재로 공인될 것이다.
문제는 현실의 영재학교에는 ‘타고난 영재’들이 아니라 ‘만들어진 준재’들이 더 많다는 사실이다. 가장 확실하고도 충격적인 증거는 서울과학고, 경기과학고 등 수도권 3대 영재학교 재학생의 절반이 강남의 특정학원 출신이라는 점이다. 영재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4~5년의 치밀한 준비기간과 최소한 7~8000만 원의 사교육비가 필요하다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만한 시간과 비용을 쓸 수 있고 유명학원에 가까이 사는 수도권, 특히, 서울 강남의 부유층에 유리하고 농어산촌가정과 저소득층가정의 ‘숨어있는 장영실’들에게 불리하단 뜻이다.
그래서 말이다. 나는 8개 영재학교의 총 2500명 재학생 집단의 계층별, 지역별 구성에 대한 전수조사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진짜 영재는 하늘의 선물이라 부모나 지역, 성별을 가리지 않고 골고루 분포할 게 틀림없다. 진정한 의미의 영재라면 소득상위 10% 부모 아래서도 10%가 나올 것이고 소득하위 10% 부모 아래서도 10%가 나올 것이다. 지역적으로도 서울이나 강남이 인구비례보다 훨씬 많을 리 없고 농어산촌이 인구비례보다 더 적을 리도 없다. 지금처럼 남자가 압도적으로 많을 리도 없다. 요컨대, 타고난 영재만 뽑는 족집게 영재학교라면 그 학생 구성이 지역별, 계층별, 성별로 지금처럼 편중되지 않고 고르게 분산되어야 맞다.
교육당국이 이런 생각에 동의한다면 교육부가 앞장서서 영재학교 학생 집단의 지역별, 계층별 분포를 전수 조사해서 부유층 집중과 수도권 집중 실태를 파악하고 집중 해소책을 마련해야 한다. 대안의 핵심은 먼저 지역인구별, 소득분위별, 성별로 골고루 분산된 바람직한 학생구성을 정해놓은 후 학교당국이 최대한 그에 맞춰 영재 발굴과 선발을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럴 때만이 부모와 지역, 젠더와 상관없이 타고난 영재를 판별하는 교육계의 역량이 발전할 수 있다. 지금처럼 수도권의 부유층 아들 중심 영재학교는 자사고 못지않은 불공정 특권교육의 성채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