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갑의 난독일기(難讀日記)] 당신의 그림자는 무엇인가

2022.10.26 06:00:00 13면

 

문(門)은 약속이다. 허락과도 다름없다. 열고 닫음은 허락과 거절의 몸짓인 셈이다. 내가 묵고 있는 바다남쪽(海南) 기와집의 솟을대문도 그렇다. 대문은 안으로 열리는 안여닫이 방식인데, 높이와 넓이가 넉넉해서 팔을 벌리거나 들어도 끝에 닿지 않는다. 양쪽 기둥에 매단 두 짝의 문은 각각 여덟 칸의 널빤지를 세로로 켜고 다듬어서 만들었다. 세로로 세운 여덟 칸의 널빤지는 네 개의 각목을 가로로 덧대 고정시켰는데, 간격이 고르고 반듯해서 세로로 세운 널빤지의 평생 동무로 적격이다. 잘 짜진 문은 하루에 한 번 열린다. 열림이 한 번이니 닫힘 역시 그렇다. 열렸다 닫히는 하루를 흉내 내듯 문은 안으로부터 딱 한 번 열렸다 닫힌다.

 

생각해 보면 사람의 열림과 닫힘도 한 번이다. 엄마를 열고 나왔다가 세상을 닫고 사라진다. 시간을 열고 생겼다가 기억을 닫고 흩어지는 것은 어김없이 한 번이다. 한 번을 뛰어넘는 열고 닫음은 사람의 영역에서는 불가능하다. 껍질을 벗어버리거나 고치를 뚫고 나와 다시 사는 사람은 없다. 플라톤도 피카소도 제임스 딘도 그렇게 닫혔다. 진시황도 이르지 못했던 다시 열림의 길을 보란 듯이 걷는 사람을 나는 보지 못했다. 열렸으면 당연히 닫힌다. 그것이야말로 모두가 고개 끄덕일 수밖에 없는 진리다. 두 번일 수 없고 한 번이라는 것. 그렇게 열렸다가 닫힌다는 것.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살면 살수록 쓸쓸하고 또 쓸쓸한 일이라고나 할까.

 

내가 머물고 있는 집의 대문은 아침 아홉 시에 열렸다가 저녁 다섯 시에 닫힌다. 아침햇살과 함께 열렸다가 저녁노을과 함께 닫히는 대문은, 들이고 거절하는 빛과 색깔조차 극명하다. 열림과 닫힘의 방향이 동쪽이라서 더 그럴 것이다. 대문은 푸름을 품고 열렸다가 붉음을 머금고 닫힌다. 갓난아기의 웃음처럼 열렸다가 둥지로 돌아가는 새의 깃털처럼 닫힌다. 열렸다 닫히는 그 문 사이로 소식이 드나들고, 들고 나는 소식 따라 헤아릴 수 없는 감정이 걸음을 옮긴다. 혹은 기쁨이거나 혹은 아픔인 사연들이 문지방을 넘어 안과 밖을 잇는다. 그리도 분주한 것들이 넘나들지만 문지방에 걸려 턱을 찧는 일은 없다. 열리고 닫힘은 틈보다 자유롭다.

 

자유롭지 못함이 있다면 무게다. 아니, 무게를 견디지 못한 바퀴다. 며칠 전이었을까. 내가 머물고 있는 집의 대문이 기울었다. 무게를 지탱하던 한쪽 대문의 쇠바퀴 하나가 빠졌다. 두 개의 바퀴는 열고 닫힐 때마다 바닥에 자국을 남겼는데, 사람이 들고 나는 곳이라 그런지 ‘人’ 같아 보이기도 하고 ‘入’ 같아 보이기도 한다. 자국조차 사람 곁을 벗어나지 못함이리라. 그리 따지면 두 개로 나아가는 것들은 죄다 서글프다. 두 바퀴로 가는 자전거가 그렇고 두 발로 걷는 사람 역시 그러하다. 두 바퀴 자전거에 멈춤이란 없다. 페달을 굴리지 않는 순간 자전거는 넘어진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쉼 없이 발을 동동거려야 한다. 사람 역시 마찬가지다.

 

두 발로 살아도 넘어지지 않는다고 자신하면 곤란하다. 두 발의 위태로움을 지탱해주는 세 번째 발이 사람에게는 있다. 늘 빛의 뒤편에 뿌리 내리는 그림자처럼. 단 한 순간이라도 사람을 떠나 사는 그림자를 본 적이 있는가. 서든 앉든 눕든 그림자는 사람과 하나다. 기울어진 세상에도 거뜬히 서는 삼각대(三脚臺)처럼. 나나 당신에게는 삶을 버텨주는 또 하나의 발이 있다. 그림자라는 또 하나의 발. 그 발에 붙은 수많은 이름을 되뇌며 우리는 절망으로부터 희망으로 문을 열고 나아간다. 사랑이라거나 연인이라거나 가족이라거나 또는 불꽃이라거나 맹세와도 같은 수많은 이름들을 되뇌며.

 

지금 이 순간, 당신이 읊조리는 그림자의 이름은 무언가.

 

고향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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