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맷돌고성(孤聲)] 송양지인(宋襄之仁)

2023.04.05 06:00:00 13면


 

춘추전국시대 송나라와 초나라가 전쟁을 벌였다. 막강한 초나라 군대가 송나라를 향해 강을 건너는 중이었다. 송나라의 참모가 주군인 양공에게 건의했다. “적이 강을 반쯤 건너왔을 때 공격하면 이길 수 있습니다.” 양공은 “그건 의로운 싸움이 아니다. 정정당당히 싸워야 참된 패자가 될 수 있다.”라며 거절했다. 강을 건넌 초나라가 채 진용을 갖추려 하는 순간 다시 건의했다. “마지막 기회입니다. 진용을 미처 가다듬기 전에 치면 적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양공은 “군자는 남이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 괴롭히지 않는 법이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며 거절했고 전쟁의 결과는 송나라의 패배와 송양공의 죽음으로 이어졌다. 후세사람들은 이를 ‘송양지인’이라 하여 제 분수를 모르고 명분만을 내세워 상대방을 동정하는 어리석은 행위를 일컫는 말이 되었다.

 

영웅 안중근 의사에게도 비슷한 일화가 있었다. 1908년 안중근은 대한의군 참모중장으로 함경북도 경흥과 신아산 부근에서 국내 진공작전을 수행하면서 5명의 일본군을 포로로 잡는 등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그러나 포로 처리를 두고 안중근은 주위의 반대에 국제공법을 들어 처벌치 않고 석방해 주었다. 포로의 정보로 일본군은 독립군의 아지트를 정확하게 공격해 안중근 부대는 괴멸하고 해체되었다. 명분을 중시하다 참혹한 결과를 야기한 그는 독립운동진영의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그가 12명의 동지와 단지동맹을 하고 다시금 일어서 이토 히로부미를 척살하러 가게 된 계기도 민족과 동지들 앞에 참회가 있었다.

 

이처럼 명분은 순리와 이치를 앞세워 감동을 줄 수 있지만, 현실은 결코 명분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베푼다는 것도 명분에 맞아야 하지만 이 역시 실질적 이해타산이 전제이다. 송양공이나 안중근 의사를 탓하는 이유도 전쟁 중인 상황에서의 명분 논리가 얼마나 비현실적인지를 지적하고자 함이다. 양공의 잘못된 명분으로 수없이 죽임을 당했을 송나라 군인들과 백성, 그리고 베풂의 결과로 희생되었어야 할 독립군들 모두 지도자의 명분 집착의 결과였다. 그래서 역사로부터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한일정상회담의 결과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징용피해자들의 제3자 변제로 시작된 명분이 멍게와 수산물 그리고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와 일본 초계기, 급기야 독도문제까지 온통 일방적인 결과들 뿐이다. 단 한 번의 정상회담 결과치고는 완패도 이런 완패가 없다. 그런데도 폼생폼사, 일본과는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란다.

 

이제 3주 뒤면 한미정상회담이다. 이번엔 또 무슨 청구서를 받아들고 올까. IRA(인플레이션 감축법)와 반도체법 등 이미 엄청난 피해를 본 한국을 미국이 특별히 국빈 대접을 한다고 한다. 1년에 한두 차례뿐인 미국의 국빈초대를 한다고. 왜? 설마 우크라이나에 무기지원을 요청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와 러시아의 관계는... 국제외교의 무대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포장되지만, 현실은 국익을 위한 치열한 각축의 장이자 소리 없는 전쟁터이다. 제발 송양지인의 교훈을 잊지 않길 바란다.

임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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