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가진 유일한 인생은 일상”…뮤지컬 ‘호프 : 읽히지 않은 책과 읽히지 않은 인생’

2023.05.16 10:24:55 10면

평생 원고를 지켰던 한 여인의 일생 다뤄
프란츠 카프카 유작 반환 소송 모티브
의인화된 원고 'K'로 관객에 위로 전해
6월 11일까지, 서울 대학로 유니플렉스

 

“그때 엄마는 망설이지 않고 다가와 원고를 먼저 주웠어. 하나 남은 빈자리에는 원고를 올렸어. 거긴 내 자리였어.”

 

‘호프’의 8번째 생일, 겨우 케이크의 촛불을 불고 이제 막 소원을 빌었다. 그런데 전쟁이 터지기 일보직전, 황급히 짐을 챙겨 국경을 넘어가야 했다. 엄마는 이동 중인 버스에서 넘어진 호프가 아닌 원고를 품에 안아들었다. 마지막 빈자리도 호프는 원고에 양보해야 했다. 그때부터 70년이 흐르도록 호프는 원고와 함께했다.

 

현대 문학 거장의 미발표 원고를 둘러싼 재판과 평생 원고만 지키며 살아온 78세 ‘에바 호프’의 삶을 그린 창작 뮤지컬 ‘호프 : 읽히지 않은 책과 읽히지 않은 인생’이 3년 만에 다시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지난 2019년 초연 당시 평균 객석 점유율 94.5%를 기록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제8회 예그린뮤지컬어워드’ 3개 부문, ‘제4회 한국뮤지컬어워즈’ 8개 부문 수상 등 작품성도 인정받았다.

 

 

프란츠 카프카의 유작 반환 소송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작품은, 미발표 원고를 두고 이스라엘 도서관과 호프의 재판이 열리는 재판장을 배경으로 한다. 법정 드라마 형식으로 호프의 치열했던 삶을 풀어간다.

 

호프가 원고를 처음 만난 건 8살, 엄마의 연인인 ‘베르트’ 아저씨가 찾아와 죽은 ‘요제프’의 미발표 원고를 맡기면서부터였다. 호프는 엄마의 품을 원고에게 빼앗겼고, 수용소에 들어가서는 원고를 지키는 엄마를 호프가 지켜야 했다.

 

어렵게 다시 만난 베르트는 호프의 엄마를 잊고 이미 새 삶을 살고 있었고, 엄마는 원고에 더욱 광적으로 집착했다. 그런 엄마를 보살피는 것 역시 호프의 몫이었다.

 

요제프의 작품이 사람들에게 각광받으며 높은 값에 팔린다는 것을 알게 된 호프는 엄마에게서 원고의 절반을 훔쳐 경매에 내놓고 행복한 삶을 꿈꾼다. 하지만 사랑했던 이에게 속아 원고를 판 돈을 모두 잃게 된다.

 

엄마의 사랑도, 연인도 잃은 호프는 그렇게 자신을 잃어간다.

 

 

극에는 재판을 받는 78세 호프와 젊은 과거 호프가 등장한다. 원고는 ‘K’라는 존재로 의인화돼 나타난다. 이들이 관객에게 보내는 대사들은 위로가 돼 깊은 여운을 남긴다.

 

“우리가 가진 유일한 인생은 일상이다.”

 

한 번도 자신의 인생을 살지 못했던, 원고가 전부였던 호프에게 K가 건네는 말이다.

 

그리고는 “일흔아홉이 되면 후회할 거잖아, 여든이 되면 그때는 더 후회할 거고.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매일매일 오늘 도망친 너를 또 후회할 거잖아”라며 호프에게 스스로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하라고 다그친다.

 

마침내 호프는 말한다. “원고만 남겨진 여자, 원고를 지키는 여자”에서 “이제야 날 만난 여자. 나 하나를 지키는 여자”라고.

 

 

공연은 내달 11일까지, 서울 대학로 유니플렉스에서 진행된다. 에바 호프 역에 김선영, 김지현, 이혜경, K 역에 김경수, 조형균, 백형훈, 과거 호프 역에 최서연, 이예은이 출연한다.

 

[ 경기신문 = 정경아 기자 ]

정경아 기자 kyunga1013@kgnews.co.kr
저작권자 © 경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흥덕4로 15번길 3-11 (영덕동 1111-2) 경기신문사 | 대표전화 : 031) 268-8114 | 팩스 : 031) 268-8393 | 청소년보호책임자 : 엄순엽 법인명 : ㈜경기신문사 | 제호 : 경기신문 | 등록번호 : 경기 가 00006 | 등록일 : 2002-04-06 | 발행일 : 2002-04-06 | 발행인·편집인 : 김대훈 | ISSN 2635-9790 경기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Copyright © 2020 경기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kg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