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에세이] 이별과 죽음의 방향

2023.07.04 06:00:00 13면

 

상갓집에서 문상하고 오는 것만이 이별은 아니다. 김수영은 어느 날 잘 나가는 소설가와 탐탁지 않은 모습으로 헤어져 돌아오다 교통사고를 만나 세상을 떠났다. 시골 처녀가 도시의 공장으로 가서 돈을 벌기 위해 부모 몰래 가출한 것도 이별이고, 아르바이트해서라도 공부를 하겠다고 가족 곁을 떠나는 것도 이별이다.

 

그녀의 심장 수술 뒤, 저런 병이 있으니 내가 결혼하여 끝까지 지켜주는 게 사랑이라고 다짐했던 첫 직장 애인은 끝내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그 뒤 무심히 정들어 아흔 살까지는 살 것 같았던 가족도 인사도 나누지 못하고 떠나는 이별도 경험했다. 주위에서 누가 아프다고 하면 며칠 밤을 설치게 된다. 후덕하지 못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세월도 보낼 만큼 보냈다. 남 앞에서 수필창작을 위한 강의를 하면서 문학과 삶을 이야기하는 동안 가난할 줄 아는 사람으로서 어쩌고… 하면서 인생 학위 논문이라도 지닌 듯 말하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그 모두가 이별하는 과정 속의 일이요 바람과 구름이 지나가는 소리였으며, 잠시 머무는 형상이었다. 그런데도 영혼의 이웃 같고 인문학적 혈액형과 정서적인 칼라가 닮은 친구가 입원한다면 남의 일 같지 않다. 남루한 모습으로 인생의 어떤 고개를 또 넘고 있는가 싶다. 젖은 가슴 축축해지는데 재채기 콧물도 나오고 살갗이 굳어진다.

 

호랑이 그림으로 이름을 널리 알린 H 화백에게 전해 들은 ‘이별의 예의’가 생각난다. H 화백이 말하는 서예가는 취운 선생이라는 분이다. 그분은 초서의 대가요 뼈대 있는 당당한 집안 후손이다. 그런 그분은 80대의 연세에도 작업을 열심히 했다. 그리고 그분은 세상을 떠나기 전 자녀들에게 부고를 보내지 말 것을 당부했다. 이어서 살아생전에 ‘지는 생명의 불꽃 앞에서’라는 제목으로 편지를 썼다. 많은 지인에게 ‘살아생전에 자신의 허물로 상처받은 것을 용서해 달라는 것’과 ‘자신의 허물과 함께 자신을 사랑한 친지여 세상이여! 고맙다.’ 고 썼다. 이 편지는 그분이 돌아가시기 한 달 전에 쓴 것이다. 따라서 그분이 작고하고 난 뒤 그 편지는 발송되었다.

 

자녀들은 자기 아버지의 3주기를 맞이하여 생전의 아버지와 친했던 분들에게 ‘모시고자 식사 자리를 마련했으니 참석해 주시라.’는 초청장을 발송했다. 따라서 서울의 어느 분위기 있는 장소에서 세계적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진 바이올린 연주자가 연주하는 가운데 즐거운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사막은 끝이 없기에 천천히 걷는 것 아닐까. 내 인생길도 그와 같을 것으로 생각했다. 대신 ‘슬픔은 정신 근육을 강하게 할’ 것이라 믿고 예까지 걸어왔다. 이별의 예의가 있다면 ‘죽음의 예의’도 있을법하다. ‘역사의 등불 사마천, 피로 쓴 사기’(김영수)의 350쪽을 보면, ‘태산보다 무거운 죽음, 깃털보다 가벼운 영혼’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한번은 죽습니다. 하지만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죽음은 새털보다 가볍습니다. 죽음을 사용하는 방향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라고 쓰여 있다. (기원전 91년, (보임안서))

 

나는 어떻게 해야 행복할 수 있고, 죽음의 방향은 어디에 둘 것인가? 하는 생각에 심신이 긴장될 때가 있다.

김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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