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에세이] 바보의 꿈 이야기

2023.07.18 06:00:00 13면

 

비가 멎으니 먼 산은 비구름 안개 속에 산수화의 묵선인 듯 희미하다. 산도 낯가리고 쉴 시간이 필요한가 보다.

어렸을 적 쪼들리는 초가지붕 아래서 비가 오는 날이면 어머니는 동백기름 바른 머리를 단정하게 빗어 낭자머리하고 바느질하셨다. 옆에서 바느질하는 어머니를 찬찬히 바라보고 있는 내게 어머니는 혼잣말이듯, ‘잠을 자야 꿈을 꾸고 꿈을 꿔야 임을 보지’라고 하셨다. 그때 그 말씀을 왜 하셨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엉뚱스럽게 지금도 그 말씀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어머니는 나의 언덕이요 뿌리였기에 기대고 싶은 것인가! 나이가 늘어갈수록 기대고 싶고 불러보고 싶은 ‘어머니’라는 이름이다.

 

작가로서 가장 힘든 일은 나를 드러내는 일이다. ‘인생의 미학, 수필의 미학’을 생각할수록 그렇다. 수필은 문학으로서 체험과 정서를 진솔하게 표현해야 한다는 데 있어 글을 쓰려고 시도할 때마다 살가죽을 벗겨내고 자존심의 본적지를 건드리는 고통이요 두려움이다. 몸과 마음 그리고 삶을 섬세하게 다뤄야 할 때가 되었다. 생각 깊게 마음의 방향을 점검해 보는 이유이다. 그러면서도 ‘수필은 자기 삶과 철학이 탑재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평론가의 말을 떠올리면서도 바보같이 꿈 이야기를 하게 된다.

 

얼마 전 일이다. 이런저런 일로 마음 무거웠다. 우울증을 염려하며 마음 저려 하기도 했다. 그렇게 잠이 들고 깨다 하면서 새벽녘 꿈속에서 어머니와 아내가 나타나 내 손바닥에 젖을 대고 한동안 있다 말없이 사라지고 나는 생시로 돌아왔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처음 일이다. 출근 시간이 지나서였다. 멀리 있는 아들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어제 아버지가 보낸 사진을 보니 아버지 얼굴이 너무 야위고 허약해 보였다는 것. 생각 끝에 아버지 친구인 한의원 원장에게 전화하여 약을 지어 보내도록 했다고 한다. ‘내가 무슨 약을?’하고 있는데 원장의 전화다. 몸을 보호하고 원기를 살리는 약을 오후에 택배로 보낸다는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본다. 어머니는 ‘내가 네 아들에게 약을 지어 보내도록 할 것이니 나의 젖으로 알고 정신 차려 먹어라. 그래야 네가 건강을 지켜갈 것이다. 그리고 엉뚱한 소리 같지만, 가족을 소중히 생각하여라. 그래야 사막의 폭염 같은 여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라는 뜻으로 꿈에 나타난 것인가! 싶었다.

 

풍류는 사는 멋을 아는 이요. 풍미를 즐기는 자는 음식의 미각을 아는 자일 것이다. 나는 이 둘 중 해당 사항이 없다. 그래도 한마디 뱉는다면, 아들의 보약이 현금보다 낫다는 생각이다. 또한 해외여행을 시켜주는 것보다 실속이 있다는 것이다. 용돈이 여유가 있다고 하여 어디 가서 기분을 내며 힘자랑하겠는가. 여행도 나이 따라 몸의 균형이 부실해 실답지 않은데 누구를 따라다니며 무얼 보고 느끼며 깨달아 새 생명으로 살자고 허둥댈 일 있겠는가.

행복은 건강이라는 나무에서 피어나는 꽃이다. 아들이 때맞춰 지혜롭게 보낸 약, 기분 좋게 복용할 것이다. 그로 인하여 몸도 얼굴빛도 좀 좋아졌으면 좋겠다. 관상은 바꿀 수 없어도 인상은 바꿀 수 있다고 했다. 얼굴 경영 잘하면서 자신을 믿고 내 길을 찾아 걷고 싶다.

김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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