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의 달리는 열차 위에서] 내가 홍범도이고 내가 이동순이다!

2023.09.13 06:00:00 13면

 

아내 단양 이씨는 일제의 가혹한 고문으로 철창 안에서 목숨을 버렸다. 17살 소년인 아들은 아비의 의병부대에서 함께 싸우다 아비 앞에서 전사했다. 홍범도는 일지에 적었다. “정평 바맥이에서 500명 일본군과 싸움하여 107명 살상하고 의병은 6명이 죽고 중상자가 8명이 되었다. 그때 양순이는 중대장이었다. 5월18일 12시에 내 아들 양순이 죽었다.” 

 

온 가족을 잃으면서도 평생을 일제에 맞서 무장투쟁을 벌여온 홍범도 장군, 일제마저 “날아다니는 홍범도”라 칭하며 두려워하던 독립운동가는 끝내 해방조국을 보지 못하고 카자흐스탄에서 눈을 감았다. 유해는 78년이 지난 2021년에야 고국땅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난데없이 육사에 전시된 장군의 흉상을 들어낼 것이란다. 불패의 전사로 빛나던 독립군대장의 흉상을 걷어내고 그 자리에 관동군에서 독립군 때려잡던 백선엽의 흉상을 놓을 것이라 한다. 나라가 정녕 미치지 않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봉오동, 청산리 대첩 직후 일제 관동군은 간도 조선인들을 대상으로 참혹한 초토화 작전을 전개한다. 일명 간도 경신참변이다. 박은식은 기록했다. "일본군들은 조선의 민간인들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죽였다. 총으로 쏴 죽이고, 칼로 찔러 죽이고, 몽둥이로 때려 죽이고, 도끼로 찍어 죽이고, 산 채로 땅에 묻고, 솥에 삶고, 가죽을 벗기고, 허리를 자르고, 팔다리를 자르고, 사지에 못을 박았다. 인간이라면 차마 할 수 없는 짓을 오락으로 삼았다." 그 관동군의 졸개 흉상이 육사에 선다.

 

흉상철거논란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차마 할 수 없는 짓’을 이념이라는 노리개로 부관참시하는 패악질이다. 일찍이 40년을 홍범도장군 관련 연구에 바친 시인 이동순은 '홍범도 장군의 절규'라는 시로 피를 토했다. “...야 이놈들아/내가 언제 내 동상 세워달라 했었나/왜 너희들 마음대로 세워놓고/또 그걸 철거한다고 이 난리인가/내가 오지 말았어야 할 곳을 왔네/나, 지금 당장 보내주게/원래 묻혔던 곳으로 돌려보내 주게/나, 어서 되돌아가고 싶네...” 시는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며 퍼져나갔다. 그러자 어느날 시인의 담벼락에서 시가 사라졌다. 페이스북이 혐오표현을 빌미로 게시물을 삭제하고 계정경고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에 항의하는 다수의 게시물도 똑같이 없애버렸다.

 

일찍이 페이스북이 편향된 기준으로 이용자의 계시물에 함부로 만행을 부린다는 이야기는 종종 접했지만 시인의 창작물을 마음대로 삭제하다니 기가 막혀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이 MBC,KBS 경영진 교체를 위해 저지르고 있는 폭거와 다를 바가 없다. 어디 이뿐인가? 박은식의 표현을 빌자면 현 정권은 뉴스타파를 상대로 “고소고발로 쏴 죽이고, 압수수색으로 찍어 죽이고, 행정조치로 팔다리를 자르고, 조중동이 땅에 묻는” 마녀사냥 형국이다. 이렇게 정권이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페이스북은 개인 표현의 자유마저 틀어막는다면 이런 세상이 일제식민지와 무슨 차이가 있을까? 

 

생전에 DJ는 이런 참담한 현실에 직면하면 담벼락에 소리라도 질러라고 했다. 그래서 외친다. ‘우리가 홍범도이고 우리가 이동순이다’ 그러므로 시인의 詩 ‘후레자식’ 일부를 옮긴다. “한 집안 망하는 것도/한나라 거덜나는 것도/모두 순식간의 일이라 하는데/우리는 어찌 팔짱만 끼고/저 망.나.니의 미친 칼.춤.보고만 있는가/대체 언제까지 이럴 것인가?”

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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