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우리에게 ‘위험한 예배당’은 누구인가. 누가 저항하는가

2023.10.23 13:09:50 16면

133. 바디스- 폴 토멀린

 

넷플릭스가 새로 공개한 8부작 영국 드라마 ‘바디스’는 매우 특이한 작품이다. 소재와 설정이 앞선다. 다른 작품에서 흔히 봐왔던 얘기들이 아니다. 봐왔다 하더라도 꽤 영리하게 확장해 냈다. 제목 ‘바디스’는 시체들이라는 얘기이다.

 

영국 런던의 빈민 지역인 화이트채플의 골목길 롱하베스트 레인에서 시체가 발견된다. 남성이고 알몸이며 이마에 상처가 있고 손목에 뜻 모를 문양의 문신이 있으며 무엇보다 왼쪽 눈에 총알을 맞고 죽은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총알이 머리를 뚫고 나간 흔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머릿속에서 총알은 발견되지 않는다. 총알이 없는 것부터 이 사건은 미궁으로 빠지기 시작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시체가 다른 시대에도 똑같은 장소 똑같은 모양으로 발견돼 왔다는 것이다. 한번은 1890년, 그리고 또 한 번은 1941년, 그리고 현재인 2023년 그리고 마지막으로 2053년이다.

 

영화는 이 네 개의 시공간을 오가며 경찰 4명이 각자 사건을 풀어 가는 과정을 추적한다. 사건을 풀어가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진실에 직면하게 되는 과정인데 그건 당연히 2023년 현재에 이르러서이다.

 

이 시즌 드라마가 흥미로운 것은, 요즘 그토록 젊은 세대들이 (이유 없이, 그리고 이해할 수 없지만) 싫어한다는 PC, 곧 정치적 올바름이 돋보이기 때문이다. 각각의 시대에서 수사를 맡는 캐릭터들을 하나같이 소수자를 대변하는 인물로 그린다.

 

2023년은 사하라 하산(아마카 오카포)이라는 인도계 흑인 무슬림이다. 1941년은 찰스 화이트먼인데 유대인이다. 원래 이름은 칼 화이트먼이었고 독일계이다. 1941년이라면 2차 대전이 한창인 시점이고 런던에 독일 전투기의 기습적인 대폭격이 잦았던 때이다.

 

1890년의 주인공은 알프레드 힐링헤드(카일 솔러)인데 놀랍게도 게이이다. 빅토리아 시대가 끝나가는 말미이긴 해도 당시는 호모포비아가 극심했던 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이트채플 같은 곳은 윤락녀보다 남창(男娼)이 들끓었던 것으로 묘사된다.

 

 

힐링헤드는 이들을 풍기문란죄로 체포해야 하는 직무를 행사해야 하지만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만난 ‘더 스타’지의 기자 헨리 에시(조지 파커)를 만나면서 뜻밖의 동성애에 빠진다.

 

이런 경우 대체로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지게 되는데 힐링헤드는 드라마에서 가장 비극적인 상황에 처하게 된다. 2053년 근(近) 미래의 주인공 아이리스 메이플우드(쉬라 하스)는 가녀린 몸매지만 ‘미친개’라 불릴 만큼 사건 해결에 수완을 보인다.

 

그녀는 사실 다리를 못 쓰는 장애인이지만 2053년의 신 전자 기술이 그녀를 걷고 뛰게 한다. 그녀는 자신을 그렇게 만들어 준 신 사회, 새로운 공동체이자 준(準) 국가 조직인 ‘카이알’에 비교적 충성을 다하려고 하고 반 국가 세력을 일망타진하는데 앞장 서려 한다.

 

하지만 아이리스의 이 같은 행동은 일종의 방어기제이자 자기 합리화인데 그녀는 마음속 무의식 속에 그렇지 않았다면 자신은 차별받고 버려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녀가 카이알의 지도자 일라이어스 매닉스(스티븐 그레이엄)에게 충성하는 것은 일종의 생존 본능 때문으로 보인다.

 

 

드라마 전편에는 몇 가지 키워드가 나오는데 그중 하나가 미래 세계(라고 해봤자 20년 후인 2053년)에 암약하는 ‘위험한 예배당’이라는 반 카이알 조직, 혹은 반체제 단체이다. 여기에는 게이브리얼 디포(톰 마더스 데일)란 과학자, 양자물리학자가 주요한 역할을 한다.

 

그가 무엇을 발견한 모양이고 이것이 카이알 조직에게 굉장히 큰 위협이 된다고 생각된다. 일라이어스 매닉스가 아이리스 메이플 우드를 조직 내에 침투시켜서 위험한 예배당 일당을 급습하려고 하는 이유로 보인다.

 

 

에피소드를 따라가면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 그 점에 대한 일종의 힌트는 왜 아이리스 메이플 우드냐는 것이다. 왜 사하라 하산이며 왜 일라이어스 매닉스냐는 것이다. 그건 힐링헤드에게도 찰스 화이트먼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 얘기이다.

 

왜 다른 사람이 아닌 이들을 콕 집어서 사건이 터졌으며 벌어지게 되느냐이다. 드라마 속에는 누군가 남긴 LP 레코드판이 있고 이건 주로 주인공들이나 주변의 핵심 관계자들에게 남긴 것인데 이들의 앞날을 예견하는 내용이거나 그렇기 때문에 지금 당장 수행해야 할 임무에 대한 지시사항을 담고 있는 것이다.

 

왜 이들인가. 바로 그 점이 이 드라마를 이해하고 따라 가는데 있어서의 핵심적인 요소이다.

 

 

드라마는 일종의 예정론과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다소 해묵은 논쟁을 기초로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모든 세상의 운행 방식, 그 시기와 장소, 인물은 신에 의해 다 정해져 있다는 것이 바로 예정론인 바, 이렇게 되면 모든 계급과 차별도 다 받아 들여야 하는 중세 봉건시대가 되는 만큼 그 해결책의 일환으로 신이 또한 인간에게 준 특권 중 하나가 자유의지인 바 아무리 신이 모든 걸 정해 놨다 해도 인간은 그걸 선택할 자유가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양쪽 다 그 정도의 문제이다. 신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다 예정하는 것이며 인간의 자유의지는 어디까지이냐는 것이다. 드라마 ‘바디스’는 이 오랜 논쟁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것이며 다만 여기서는 신이 양자물리학으로 대체돼 있을 뿐이다.

 

극중 게이브리얼 디포가 발견한 것은 1:1로 분리돼 서로 정반대로 똑같이 활성화되는 양자의 운동 법칙으로 보인다. 이 운동 법칙 대로라면 버려진 알몸 시신이 네 개의 시대에 똑같이 나타날 수 있다. 시간 이동이 가능해진 것이다.

 

 

위험한 예배당이 도전하고 저항하는 대상은 일라이어스 매닉스 지도자 체제이다. 매닉스는 2023년 런던 시내에 핵이 터졌을 때 부패한 정치권을 일소하고 권력을 잡았다.

 

그의 독재는 일종의 나치의 방식으로 보이는 바 아이리스 메이플 우드와 같은 사회적 루저들에게서 지지를 끌어냈기 때문이다. 위험한 예배당 조직은 20년 전 런던 테러야말로 정작 일라이어스 매닉스가 저지른 범행으로 보고 있다. 그 모든 것을 알게 되는 사람이 바로 사하라 하산이며 그녀가 나중에 위험한 예배당의 리더가 되는 이유이다.

 

 

드라마를 보면서 정말 헷갈리는 것은 인물들의 관계망이다. 예컨대 1890년의 힐링 헤드가 그토록 아끼고 애지중지했던 딸 폴라가 (정략) 결혼(당)한 상대는 줄리언 하커 경이라는 것이고 이 하커가 모든 음모의 진정한 시작인 바, 일라이어스 매닉스가 그의 직계 증손자가 된다.

 

그 사이의 계보를 잇는 남자 둘(일라이어스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2023년 런던 경찰 내부의 하산의 상사 바버이며 1941년 찰리 화이트먼의 직계 보스인 누군가이다.

 

모든 관계가 씨줄날줄로 엮여져 있지만 곰곰이 복기해 보면 이 모든 것이 하커 가문(하커 은행으로 명명되는 금융자본가)의 계보에서 파생된 것이다. 복잡한 것 같지만 사실 복잡한 것이 아니며 다만 여기에 우주 평행이론과 시공간의 이동이라는 SF적 요소를 덧붙인 것이다.

 

 

그러니까 궁극적으로 이 드라마가 하고 싶은 얘기 역시 비교적 명료한 편이다. 다소 단순하게 해석하자면 1890년부터 2053년, 그러니까 163년간 3대의 세대가 관통하는 기간 동안 세상은 좋아지고 진화하고 진보했느냐, 혹은 그렇게 될 것이냐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160년간이라고 하면 대체로 자본주의가 산업화와 고도화, 첨단화를 겪는 시기가 된다. 드라마 ‘바디스’는 결국 자본주의 체제에 대해 ‘신박한’ 방식으로, 그리고 우회적으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는 셈이다. 인간의 삶은 나아지고 있는 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위험한 예배당은 20년전인 2023년으로 사람을 보내 폭탄 테러를 막으려 했던 것은 아닌가. 그 같은 인간의 자유의지는 환상에 불과한 것일까. 드라마 ‘바디스’가 던지는 예리한 질문이 머무는 대목이다. 인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지금 우리에게도 위험한 예배당 같은 저항의 정신이 남아 있는가. 이 드라마를 두고 디스토피아적이라고 하는 이유이다.

오동진 krh0830@kgnews.co.kr
저작권자 © 경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흥덕4로 15번길 3-11 (영덕동 1111-2) 경기신문사 | 대표전화 : 031) 268-8114 | 팩스 : 031) 268-8393 | 청소년보호책임자 : 엄순엽 법인명 : ㈜경기신문사 | 제호 : 경기신문 | 등록번호 : 경기 가 00006 | 등록일 : 2002-04-06 | 발행일 : 2002-04-06 | 발행인·편집인 : 김대훈 | ISSN 2635-9790 경기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Copyright © 2020 경기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kg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