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민의 역작 ‘노량 : 죽음의 바다’는 서사(敍事)의 협공과 그 전략이 뛰어난 작품이다. 흔히들 이 영화는 해상 전투 신의 압도적인 비주얼이 최대 장점이자 볼거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총 152분의 러닝 타임 동안 이렇다 할 전투 장면은 70분이 지나가도록 나오지 않는다.
그 비교적 긴 시간을 김한민은 임진왜란 7년의 전쟁이 갖는 의미, 그것이 어떻게 노량의 전투로 이어지는가를 보여 주려 애쓴다. 그건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읽혀져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말과 생각이 굉장히 중요한데 김한민은 그 ‘논리와 사고’를 위해 얼마나 자신이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는가를 촘촘히 보여 주려 애쓴다.
![영화 ‘노량’ 장면.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https://www.kgnews.co.kr/data/photos/20231252/art_17034675885608_5417f7.jpg)
핵심적인 화두는 이순신 역의 김윤석이 해내는 대사이다. 이순신은 조명(朝明) 연합 수군의 명나라 측 총 도독인 진린(정재영)이 이제 그만 적당히 저들, 왜군에게 퇴로를 열어 주자는 제안에 대해 끊임없이 같은 말을 반복한다. “이번에야말로 저들을 완전히 섬멸시켜야 합니다.”
그는 부하들에게도 같은 말을 똑같이 한다. 부하들 중 충성스러운 장수인 송희립(최덕문)마저도 이제 이미 이긴 전쟁이니 더 이상의 희생은 그만했으면 한다. 그런 그에게 이순신은 말한다. “아직도 내 뜻을 모르겠느냐. 이번에 완전히 끝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이 전쟁은 결코 끝나지 않는 것이느니라.”
![영화 ‘노량’ 장면.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https://www.kgnews.co.kr/data/photos/20231252/art_17034677518135_6b478c.jpg)
관객들 상당수가 놓치고 있지만 엔딩 타이틀이 다 올라간 후에 나오는 일명 쿠키 영상에서는 광해군(이제훈)이 나온다. 노량 앞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그에게 권율(남경읍)이 찾아와 “세자 저하. 이제 왜란이 끝났습니다.’라고 말하자 광해는 매우 의미심장한 답변을 한다.
“모르겠소? 이건 왜란이 아니외다. 전쟁이었소.” 이 부분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상념에 젖게 한다. 김한민 감독이, 임진년에 일어난 조선과 일본 간의 전쟁을 왜란(倭亂)이라고 하는 건 일종의 비하(卑下)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부분이다.
이때의 전쟁을 ‘왜란이 아니라 전쟁으로’ 잘 이해해야 이후 일본 제국주의와 그 실체인 정한론(征韓論)의 배경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임진왜란, 임진년의 전쟁을 국제 정세의 큰 틀에서 봐야 한다는 것이 이번 영화 ‘노량 : 죽음의 바다’의 진짜 내용이고 감독이 짜놓은 서사와 전쟁 신이라는 협공을 통해 관객들에게 전하려는 메시지의 실체이다.
![영화 ‘노량’ 장면.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https://www.kgnews.co.kr/data/photos/20231252/art_17034677911758_a2010c.jpg)
영화의 오프닝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죽음인 이유가 그 때문이다. 히데요시의 죽음은 일본 내부에 필연적인 권력 다툼을 예고하는 것이고 그 중심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있을 것이다. 히데요시의 세력은 나중에 서군으로(그들의 본거지는 원래 오사카였고 히데요시는 거대한 오사카 성을 축조해 그 안에서 살았다.)
이에야스 파는 동군으로(나중에 에도, 곧 도쿄에 막부를 연다.) 무장하고 세키가하라에서 대 혈투를 벌인다. 지금의 기후 현(県) 일대이다. 기후 현에는 나고야 시가 있다. 이게 1600년이고 노량 해전이 벌어진 때는 1598년이다. 조선 남부에 진을 치고 있던 일본의 두 수장, 소서행장들은 고니시 유키나가(이무생)와 시마즈 요시히로(백윤식)이다.
당연히 둘 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수하들이며 反 도쿠가와 이에야스 파 들이다. 이들 중 세키가하라에서 살아남은 시마즈 요시히로는 나중에 사쓰만의 자기 번에서 세력을 키운 후 그 위의 조슈 번과 동맹을 맺고 이에야스 막부에 맞선다.
이들의 ‘삿초 동맹’은 천황 중심의 실질적 중앙집권 체제의 구축을 계획하는 메이지 유신을 일으킨다. 천황 중심의 친위 쿠데타이다. 이 세력 한가운데의 인물이 바로 이토 히로부미이다. 임진왜란이 아니라 임진년의 조일 전쟁의 내면에 일본 제국주의의 흐름이 어떻게 조성되고 있었는 가를 아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래서 김한민은 이순신의 대사에 “이번 전쟁은 여기서 반드시 끝을 내야 한다”는 말을 넣은 것이며 이순신뿐만 아니라 총명했던 광해의 입을 통해서도 “아직도 (그 의미를) 모르겠소”라며 반문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 ‘노량’ 장면.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https://www.kgnews.co.kr/data/photos/20231252/art_17034678476207_b37b6f.jpg)
행상 전투 신의 극한 체험은 수많은 배가 학익진을 펼치거나, 이순신의 전투 선박들이 일본이 짜놓은 대열의 허리를 끊고 들어가는 장면이거나, 후미를 공격하는 모습이거나 하는 등등이 아니다. 결코 흔히들 생각할 수 있는 CG의 극대화를 통해 보여지는 것이 아니다.
김한민이 창조해 낸 해상 전투 신의 진정한 쾌감은 거의 후반 마무리 즈음에 나온다. 조선과 일본 수군은 양측 모두 정면 공격을 감행하고 접선(接船)으로 충돌을 일으킨 다음 양측 병사 모두가 엉켜 어느 쪽이라고 할 것도 없이 양쪽 배 위 모두에서 백병전을 벌이는 장면이다.
이 장면을 김한민과 촬영감독 김태성은 ‘원 씬 원 컷 롱 테이크’로 찍어 냈다. 카메라를 한 번도 끊지 않고 하나의 컷으로 이어 가면서도 이를 핸드 헬드(들고 찍기)로 촬영한 것이다. 어마어마한 고난도의 촬영이며 이런 그림을 만들려면 감독의 완벽한 디자인이 사전에 머릿속에서 이미 짜여야 한다. 배우 모두와의 합이 절대적인 건 기본이다. 한 번의 NG는 처음부터 다시 찍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영화 ‘노량’ 장면.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https://www.kgnews.co.kr/data/photos/20231252/art_17034678859966_08da12.jpg)
그러나 이 장면이 좋은 진짜 의미는 ‘무명의’ 병사들이 벌이는 생존의 살륙전을 보여줌으로써 임진 전쟁이 얼마나 잔혹하고 비극적이었는가, 그걸 넘어 전쟁 자체가 갖는 희생이 얼마나 큰 것인 가를 육체의 언어로 형상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원 테이크 신’을 보여 준 후 김한민은 그 지옥의 싸움을 내려다보는 이순신의 얼굴을 클로즈업해 커트한다. 그리고 다시 치열한 싸움을 벌이는 병사들을 바라보는 이순신의 시점을 쇼트로 커트한다. 김한민은 이순신의 얼굴에 살육의 비극을 바라보는 복잡한 심정의 표정을 담아낸다.
근데 그 표정과 이순신의 반복되는 대사 ‘이번에 이 전쟁을 반드시 끝내야 한다’는 것은 오히려 상충되는 듯 보인다. 살육을 통해 살육을 끝내겠다는 그 이율배반의 철학이야 말로 이순신이 지닌 궁극의 전쟁 철학이었음을 영화는 밝혀 내고 있다.
이순신 노량 해전의 의미는 거기서 나온다. 전쟁으로 전쟁을 끝낸다! 그리하여 전쟁을 할 때는 때론 끝까지 싸워야 한다는 것, 중도에 화친을 주장하는 것은 곧 전쟁을 끝내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조선 내의 주전론과 화친론 사이의 전쟁 철학의 차이를 그려 내고 있다.
![영화 ‘노량’ 장면.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https://www.kgnews.co.kr/data/photos/20231252/art_17034679251538_4b090b.jpg)
얼마나 윤색이 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이순신이 전투를 독려하며 치는 북소리는 영화 후반부의 극장 안을 휘어 감는다. 일본의 시마즈 요시히로는 이 북소리 때문에 미쳐 간다. 그는 귀를 틀어막으며 ‘누가 저 북소리 좀 멈추게 하라’며 구토를 한다.
이순신의 북소리는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이다. 관객들 역시 영화가 끝난 후에도 여전히 귓가를 울리는 그 북소리에서 자유롭지 못한 자신들을 발견한다.
상업영화가 가져가야 할 여운의 극대화를 이만큼 살려 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고 김한민의 노련한 연출은 그 점을 충분히 염두에 뒀던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의 흥행이 또다시 성공의 수치로 육박해 갈 수 있다면 그건 순전히 영화 속 이 이순신의 북소리 때문이다.
![영화 ‘노량’ 장면.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https://www.kgnews.co.kr/data/photos/20231252/art_17034679635411_c295d6.jpg)
셋째 아들 이면(여진구)의 죽음과 그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는 이순신의 내면을 담아내는 방식도 특이하다. 이순신은 자주 아들에 대한 꿈을 꾼다. 방 씨 부인(문정희)은 그런 그를 두고 방을 나서면서 말한다. “아들은 죽어서도 아비 곁으로 오는군요. 다음에 또 만나면 이제는 어미한테도 좀 오라고 얘기해 주시구려.”
임진년의 전쟁이 모성과 여성성에 얼마나 큰 상처를 냈는가를 보여 준다. 이번 영화에는 문정희처럼 그렇게 한 신만 나오는 배우들이 적지 않은데 아들 이면 역의 여진구가 나중에 이순신의 환상 속에 나와 ‘아버님 너무 힘들어 하지말라’고 말할 때 사람들은 울컥하는 심정이 된다.
![영화 ‘노량’ 장면.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https://www.kgnews.co.kr/data/photos/20231252/art_17034679983245_955ebb.jpg)
이순신 한 명에게만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지 않고 정재영이 맡은 진린의 캐릭터라든가, 항왜 준사 역의 김성규, 송희립 역의 최덕문, 심지어 일본 장수 시마즈 역의 백윤식까지 캐릭터들을 매우 입체적으로 다뤄 냈다는 점은, 이 영화가 균등의 미학에 얼마나 치중했는가를 보여준다. 그 점이 좋다.
김한민의 이순신 3부작 중 이번 노량은 단연 최고의 작품이다. 감독은 영화를 만들면서 자신의 영화를 통해 진화하고 진보한다는 진리를, 김한민은 이번에 톡톡히 보여 준 셈이다. 그의 ‘임진 전쟁’에 대한 행보, 새로운 해석이 어떻게 이어질지 궁금해진다. 그것도 매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