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모두가 다 뜰 앞의 잣나무이다

2024.01.15 12:51:25 16면

143. 외계+인 2부- 최동훈

 

최동훈 감독의 비운의 역작 ‘외계+인’ 2부를, 영화는 세 가지 좋은 점을 찾을 수 있으면 '좋은 영화'라는 원칙 아닌 원칙에 입각하여 분석해 본다. ‘외계+인’ 2부에 좋은 점 세 가지는 있는가. 있다면 그건 무엇인가. 일단 이 영화의 복잡한 줄거리부터 대략 파악하고 가는 게 좋다. 그건 결코 스포일러가 아니다.

 

 

스토리의 설정

 

‘외계+인’ 1,2부는 알려져 있다시피 외계인 설정이 있다. 오랜 세월 동안 외계인들은 인간의 몸속에 자신들의 죄수를 가둬 놓았는데 어느 날 이들 죄수들이 인간의 몸에서 탈출하면서 가공할 사태가 벌어진다.

 

주인공은 이안(김태리)이고 이안의 아버지(김우빈)가 이들 탈출한 범죄자 외계인들을 추적하는 인물이다. 그의 복제 프로그램이 바로 AI 썬더(김우빈)이다. 썬더는 과거 시대에는 우왕과 좌왕(신정근 이시훈)이라는 이름의 고양이가 돼 이안을 돕는다. 보다 정확하게는 얼치기 도사인 무륵(류준열)의 눈과 발이 되어 이안의 뒤를 쫓는다.

 

무륵은 어릴 때 위기에 처한 이안의 목숨을 구해주었으며 10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이 둘은 서로 좋아하는 사이로 발전한다. 외계인 범죄자 중에 대장은 설계자(소지섭)이다. 그에 준하는 또 다른 빌런은 자장(김의성)이다. 나중에는 행동대장 빌런인 금괴 밀수꾼 윤경호도 나온다.

 

10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과거 시대에는 삼각산의 두 신선 부부 흑설과 청운(염정아 조우진)이 나온다. 둘은 무륵에게 도법을 전수했다. 악당 자장에게서 파문을 당하면서 맹인이 된 검객 능파(진선규)도 있다.

 

 

이들 모든 인물들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신검의 행방을 쫓는다. 이 신검은 1부에서는 어린 이안이 다시 현재의 시간으로 돌아 오기 위해 꼭 필요한 영험한 양날 검으로 묘사된다. 신검은 시간의 문을 열 수 있는 일종의 열쇠라는 것이다.

 

그러나 2부를 들어서면 시간의 문이 비교적 자유자재로 열린다. 에너지가 불안한 곳에서는 그럴 수 있다는 것이 AI 썬더의 설명이다. 신검은 시간의 문을 여는 것이 아니라 굉장히 중요한 일, 무엇을 위해 꼭 필요한 물건임이 밝혀진다. 이안의 운명은 그걸 수행하는 것으로 돼있다.

 

영화의 좋은 점 ① “너는 너다!” 개념

 

어쨌든 영화에 따르면 지구상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몸에는 외계인 악마가 들어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전의 ‘외계+인’ 1부가 2시간 반 가까운 러닝 타임 동안 이야기의 변죽만 울린 채 끝났다며 대중의 호된 ‘질책’을 받은 이유가 바로 ‘인간=외계인’이라는 개념 때문이다.

 

과거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든 2022년 현재의 시대를 살아가는 인물이든 캐릭터들이 의도적으로 애매모호하게 그려져 있기 때문이었다. 이안의 몸에 어떤 외계인이 들어가 있는지, 그게 아빠 같은 외계인이었는지 아니면 알고 보니 진짜 악당이었는지 알 수 없게 처리됐었다.

 

삼각산 신선 부부에 따르면 제자 무륵의 몸 안에 요괴가 들어 있다고 하는데 그 요괴의 정체 역시 과연 누구인지 정확하지가 않다. 다 큰 이안은 역시 다 큰 무륵을 만나 재회하면서 기뻐서 어쩔 줄 모르지만 무륵은 자기 안에 이상한 무엇이 들어왔다며 이안에게 자신을 믿지 말라고 말한다. 자신을 경계하고 떠나라고 말한다.

 

 

그때 이안의 대답은 이것이다. “너는 너야. 네 안에 그 무엇이 들어 있든지 내게 있어 너는 그냥 너야.” 이 대사 한 마디가 ‘외계+인’ 1부에 대한 불만을 일소하게 해 준다. 사실상 1,2부로 나뉘어지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법한 이 영화가 어떤 전개 방향을 가져갈지를 암시해 주고 결정해 준다.

 

너는 너다. 네가 어떤 존재이든 너는 결국 선한 사람이 될 것이고 내가 그렇게 너를 만들 것이며 그럼으로써 우리는 함께 할 것이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영화 ‘외계+인’은 결국 더불어 산다는 것, 자아와 타자가 결합하는 선의의 방식, 더 나아가 내면의 악한 욕망을 외향적인 삶에 있어 어떻게 누르고 절제하며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동양적 선(禪)의 사상을 담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나쁜 것이든 좋은 것이든 인연은 과거에서 현재, 현재에서 과거로 어떻게든 이어진다는 윤회의 사상을 지향하고 있다. 이번 2부는 바로 그 점을 집중적으로 확실하게 보여 준다. 그 점이 좋다.

 

 

영화의 좋은 점 ② “뜰 앞의 잣나무”를 말하다

 

별다른 의미가 없는 듯하면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이 말은 2부의 인물 우왕(혹은 좌왕인데 그건 중요하지가 않다. 그 둘은 고양이 몸에 들어간 존재들이다.)의 입에서 나온다. 우왕은 이 얘기를 할 때 시종 킥킥대는 모습이다.

 

자신이 주인으로 섬기는 청년 도사 무륵이 도통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을 때이거나 혹은 난처한 상황에 처했을 때 이 고양이 변신인간(신정근)은 어김없이 이 말을 던진다.

 

‘뜰 앞이 잣 나무지 뜰 앞의 잣나무.” 이 대사는 또 다른 고양이 요괴인 좌왕(이시무)의 존재가 소멸될 때도 쓰인다. ‘뜰 앞의 잣나무’는 불교의 명상에서 쓰이는, 일종의 선시(禪詩)의 일부이다. 한자로는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라고 쓴다.

 

불교의 선 사상은 서구식 이성의 논법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냥 모든 개념과 관계를 통틀어 순간적으로 다가오는 깨달음 같은 것이다. 선승(禪僧, 참선 중인 승려)이 스승에게 묻는다. “달마가 서쪽에서 온 까닭은 무엇입니까?” 스승은 답한다. “뜰 앞의 잣나무이니느라.” 선문답(禪問答)은 해괴망측한 대화법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고고한 진리가 숨어 있다.

 

‘외계+인’ 1,2부는 사실 이 선문답에 기초한 스토리 라인으로 짜여 있다. 영화는 늘 논리의 구성에 치중해 왔다. 그러나 우리가 스스로 짜고 보여주고 나누는 모든 이야기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으며(우주평행이론) 종종 신비스럽게도 그 모든 시간이 뒤틀리는 지점이 있어 이야기도 앞뒤 순서가 맞지 않을 수가 있다.

 

세상의 모든 일이 다 논리정연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무륵이 나중에 무슨 일을 저지르고, 이안의 존재가 왜 뒤바뀌고, 민개인이라는 현대 여성(이하늬)은 왜 맹인 검객 능파의 초상을 벽에 걸고 살아가고 있으며, 그녀가 물려받은 조상의 무기는 과연 무엇인지, 그게 어떻게 과거에서 현재로 왔는지는 달마가 왜 서쪽에서 왔는지에 대한 궁금증과 같은 맥락인 것이다. 최동훈이 얘기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것이다. 모두가 다 뜰 앞의 잣나무이거늘.

 

 

영화의 좋은 점 ③ 미래는 과거이고 과거는 미래이다

 

‘외계+인’ 2부의 화룡점정은 외계인 빌런들(소지섭 김의성 윤경호)과 일대 혈투를 벌이는 무륵과 이안, 흑설과 청운 부부도사, 관세청 조사원 민개인, 그리고 AI 프로그램 썬더가 한 공간에 모인다는 것이다. 이들이 싸움을 벌이는 모습은 모두 다 만화적인 것이어서 보다 보면 지치는 감이 없지 않지만 탈선하는 열차 신 같은 CG는 영화 테크놀로지의 극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시각적 쾌감을 준다.

 

외계인 악당의 차에 부딪혀 날라가는 교통순경 차량 안이 360도 돌아가는 장면, 그 뒷좌석에서 수갑을 찬 채 몸이 같이 돌아가는 흑설과 청운, 민개인의 모습 같은 것은 촬영의 난이도, 차량 세트 구성 등의 난도가 높은 것이다.

 

최동훈은 영화 기술이 남다르지만 그걸 가져가려는 상상력이 뛰어난 인물이다. 이번 2편에서도 그 점을 유감없이 보여 준다. 무엇보다 과거 시대의 인물과 미래적 존재인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현재의 한 공간에 모인다는 설정은 감독이 나름 각을 준 장면처럼 느껴진다.

 

썬더는 과거로 돌아가 현재에서 죽어(소멸해) 가던 이안의 아빠에게 이안이 신검으로 임무를 어떻게 달성해 내는가를 보여 준다. 미래는 과거가 된다. 과거가 미래가 되는 것뿐이 아니다. 미래는 그냥 과거이다. 같은 존재이다. ‘외계+인’ 2부가 보여주는 시간의 철학이다. 그 점이 흥미롭다.

 

 

결론적으로 이번 2부는 꽤나 흥미롭다. 애당초 1부 없이 이 2부만으로, 그때그때 플래시 백 기법을 사용해 가며 한 편의 영화로 만들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만들 때는 그걸 그 누가 알았겠는가. 모든 것이 다 뜰 앞의 잣나무일 뿐이다.

오동진 krh0830@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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