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경의 사소한 발견] 바늘의 삶

2024.04.12 06:00:00 14면

 

요즘 삶의 방식 중 현대인들이 따르고 싶어하지만 쉽지 않은 삶이 바로 미니멀리즘이다. 적게 가지고 심플하게 살며, 느리고 여유 있는 삶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너무나도 값싸고 품질 좋은 물건들도 많고, 우리는 늘 구매의 욕구를 촉진하는 광고에 노출되어 있다. 물욕을 끊기는 정말 힘들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물건을 계속 사들이고 있다. 그래서 호텔처럼 정갈한 집 인테리어를 꿈꾸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비싼 집 안에는 대부분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이 살고 있다.

 

며칠 전 셔츠 단추가 떨어져 오랜만에 바느질을 했다. 요즘 옷은 잘 헤지지도 않지만 헤진다 해도 바느질을 해서 다시 입지 않고 그냥 버린다. 바늘 귀에 길고 가느다란 실을 꿰다가 무심코 바늘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바늘의 모양이 이렇게 생길 수밖에 없는 이유와 바늘이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얼마나 적합하게 사용되고 있는지 찬찬히 생각해보니 바늘이야 말로 미니멀리즘의 삶을 살고 있는 게 아닌가.

 

바늘은 목표가 정확하다. 단 하나의 점을 뚫기 위해 모든 장식은 필요 없고 버릴 수 있는 모든 것은 버리고 그 한 점의 중심에 집중하도록 단순하다. 눈도 코도 입도 없고 따끔거리는 촉각을 모아서 예리하게 씨실과 날실의 뒤엉킨 직조사이를 지나다닌다. 끝이 뭉툭해서는 직조 사이를 뚫고 갈 수 없기 때문에 언제나 예리함을 갖추어야 한다.

 

그러나 바늘에 남은 단 하나의 감각기관은 청각이다. 바늘이 바늘귀를 포기할 수 없는 까닭은 귀를 통해 들어오고 나가는 온 세상의 실마리들을 풀어나가기 위함이다. 끊어질 듯 위태로운 가느다란 실이지만 그것의 끝을 놓치지 않고 한 땀 한 땀 바늘은 자신의 길을 걸어간다. 그러다 보면 뜯어지고 떨어지고 나뉘어졌던 세상의 모든 것들이 서로 합일하는 구도를 이루기 때문이다.

 

바늘의 최후는 가장 멋지다. 자신의 갈 길을 모두 간 후 마지막 바늘땀을 꿰고 나면 더 이상 삶들이 너덜거리지 않도록 매듭을 묶고 실을 끊어낸다. 끊고 맺음이 너무도 분명한 삶이다.

 

이제 총선이 끝났다. 누군가는 당선이 되어 기쁨에 웃고 있고 누군가는 낙선하여 초상집이 되어있겠지만 그 누구라도 바늘의 삶에서 교훈을 얻어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분명한 목표를 정하고, 그 지위와 권력이 주는 반사이익에 눈을 감고 오로지 국민과 약속한 것에 집중하여 실행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무엇보다도 귀를 열고 국민들의 작은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고, 어려운 문제들의 실마리를 풀어 가길 바란다.

 

모든 일은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한 땀 한 땀의 바느질처럼 건너뛰지 말고 체계적으로 행하고, 나눠진 민심을 봉합하는 역할을 제대로 해 주길 바란다. 그리고 자신의 역할이 끝났을 때 서로 물고 뜯지 말고, 미련도 없이 자리에서 내려오면서 끝맺음을 잘 하길 기대한다. 그건 사소한 바늘조차 잘하는 일이다.

권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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