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악마와의 토크를 즐기는 건 우리들 자신

2024.05.20 13:20:15 16면

151. 악마와의 토크쇼- 캐머런 카이네스, 콜린 카이네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귀신을 보거나, 악마와 대화를 나누거나 하는 일이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일은 방송사가 시청률을 원하는 것이다. 신문사가 더 많은 광고 수익이 들어 오기를 원할 때이며,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만의 관객을 원할 때이다.

 

곧, 모두들 매명 욕에 사로잡힐 때이다. 유명 인사를 따라다니고, 그의 뒤를 캐고, 가짜 뉴스들을 스스럼없이 만들고, 그래서 자기도 유명해지고 싶은 욕망에 시달릴 때이다. 그런 방송, 그런 언론, 그런 사람들이 많아지는 사회 그 자체가 악마이다. 영화 ‘악마와의 토크 쇼’가 얘기하려고 하는 건 바로 그것이다.

 

 

최근 극장에서 개봉됐지만 ‘범죄도시4’의 기세와 스크린 독점으로 말미암(은 것인지 정말 악마가 뭔 짓을 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아 어쨌든 사람들의 주목을 크게 끌지는 못한 척한 작품 ‘악마와의 토크 쇼’는(20일 현재 7만 5919명을 기록했다. 놀라운 성적이다.) 매우 흥미로운 소재를 다루고 있는 영화이다. 작은 영화이다. 일종의 독립영화이고 그래서 꽤나 발칙한 느낌을 준다. 재미있다. 실제 사건을 모티프로 한 것(모티프이지 실제 그대로는 아니라는 것)이다.

 

 

1977년 한 TV 토크 쇼에서 벌어진 기이한 일, 그보다는 기상천외한 쇼가 만들어 낸 소동을 그렸다. 실제 벌어졌음직한 일, 실제 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사건을 그대로 보여 주는 척, 사실은 메타포(은유와 주제의식)가 가득한 드라마로 만든 것이다.

 

일종의 다큐드라마일 수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을 보고 있으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헷갈리게 된다. 어쩌면 그 혼란과 혼돈이 이 영화의 궁극의 주제일 수 있다.

 

 

인기 토크 쇼 진행자 잭 델로이(데이비드 다스트말치안)의 ‘올빼미 쇼’는 1971년에 첫 선을 보인 후 5년 넘게 인기 가도를 달렸지만 그의 아내 매들린(조지나 헤이그)이 폐암으로 사망한 후 잠깐 잠적을 했고 이후 곧 복귀는 했지만 시청률이 예전과 같지 않은 상태다.

 

당연히 토크 쇼가 방송되는 UBC와 잭 델로이, 이 프로그램의 프로듀서, 심지어 보조 진행자 거스(리스 오테리)까지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다 할 태세이다. 마침 할로윈 데이이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청률 집계 기간이라는 것이다.

 

방송은 1970년대이든, 온갖 유튜브와 OTT가 난무하는 2024년 현재이든 시청률, 조회수, 좋아요와 구독자 수에 목을 맨다. 1977년 시청률의 위기에 몰린 잭 델로이 쇼(이 쇼는 단 한 번도 NBC의 ‘쟈니 카슨 쇼’를 이겨 본 적이 없다. 만년 2위의 수준이었으며 이런 상황이 이 토크 쇼를 만드는 모든 사람들의 행동 동기를 만들어 냈던 셈이다. 그런데 이 영화 ‘악마와의 토크 쇼’는 호주産이다. 감독은 의도적으로 호주와 미국의 방송 프로그램 산업을 섞어 脫 국적화, 가상화 시켰다.)는 스튜디오에 유령을 불러들이기로 한다.

 

 

첫 번째 초대손님은 스스로를 영매라고 부르는 인도계 크리스투(파이살 바지)이고 두 번째는 마술사 카 마이클 헤이그(이안 블리스), 그리고 세 번째는 초심리학자인 준 로스 미첼(로라 고든)이다. 크리스투는 영매를 불러들이려고 시도하다가 스튜디오에 오물을 토하고 실려 나간다.

 

‘초자연국과수연(초자연현상을 조사하는 국제 과학 수사 연맹)’ 지도자인 마술사 카 마이클 헤이그는 이 모든 것이 잭 델로이의 쇼라고 생각한다. 그는 ‘올빼미 쇼’에서 벌어지는 모든 이상한 일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하며 쇼가 진행되는 내내 초자연 현상의 조작설을 증명하려 애쓴다.

 

그걸 도와주는 사람에겐 50만 달러를 주겠다고 약속까지 한다. 그러니 방청객 여러분들 중 누구라도 휩쓸리지 말고 정신을 차리라고 그는 말한다.

 

 

준 로스 미첼 박사는 1974년에 있었던 아브락사스 제일 교회 사건의 피해자 소녀 릴리(잉그리트 토렐리)가 겪는 빙의 현상을 연구한다. 아브락사스의 교주인 샌더 디아보는 납치와 어린 소녀들을 제물로 받친다는 혐의를 받고 FBI의 추적을 받던 중 스스로 교회에 불을 질러 교인 모두를 몰살 시켰다.

 

릴리는 그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이다. 준 박사와 릴리는 잭 델로이 쇼에 나와 빙의를 통해 유령을 불러들인다.

 

 

스튜디오에는 이상 현상이 속출하기 시작한다. 전기장이 일어나고 유리잔이 박살 나는가 하면 릴리가 앉은 의자가 공중으로 부양되기도 한다. 이런 일이 가능한 일일까.

 

진행자 잭 델로이와 출연자 카 마이클 헤이그는 열띤 논쟁을 벌이고 급기야 좀 전에 나간 방송을 한 프레임 한 프레임 되돌려 가며 눈앞에서 벌어진 일들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조작인지, 환상인지, 집단 최면의 결과인지를 알아 내려 애쓴다. 그리고 곧 믿기지 못할 사건이 터지고 잭 델로이를 둘러싼 비밀이 드러난다. 근데 이것 또한 진짜일까 가짜일까.

 

 

영화 ‘악마와의 토크 쇼’는 토크 쇼가 벌어지는 스튜디오 무대와 그 무대 뒤의 풍경을 오가며 지금 여러분이 보는 드라마가 실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 영화가 갖는 최대의 장점 중의 하나는 모든 상황과 모든 인물을 그럴듯하게 그려 내는 데 있어 거의 최고급이라는 것이다.

 

프로듀서들은 저렇게 행동하고 말할 것 같으며, 토크 쇼 기획자들은 저런 생각을 가지고 진행자들을 저렇게 부려 먹을 것 같은 데다, 진행자의 겉과 속, 시청자들에게 보이는 얼굴과 무대 뒤에서 보여 주는 초조함은 완전히 다를 것이라는 점을 확실하게 보여 준다.

 

공동 감독인 캐머런 케언스, 코린 케언스의 작품 장악력이 뛰어나고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히 디자인해 냈음을 보여 준다. 연출의 힘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있을 법 하지 않는 상황을 그럴듯하게 연기해 낸, 곧 ‘연기 혼에 빙의된’ 배우들의 연기력도 한몫을 당당하게 해 낸 작품이다.

 

특히 릴리 역의 잉그리트 토렐리의 빙의 연기는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했던 부분이다. ‘악마와의 토크쇼’를 보는 모든 사람들은 이 영화가 허구, 가짜임을 잘 안다.

 

그러나 소녀가 빙의 되는 모습에서는 살짝 속게 되거나, 더 나아가 정말로 저럴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자발적 착시’에 빠진다. 관객 역시 스스로의 관객을 원하고 거짓이 진짜이길 원하게 된다. 그걸 원할 때 만들어지는 기이한 최면의 환각 상태를 즐기고 싶어 한다.

 

 

아브락사스 교회 사건은 아마도 1993년 미국 텍사스 주 웨이코 시에서 일어난 다윗파의 집단 자살 사건을 가져 온것으로 보인다.

 

다윗파의 교주 데이비드 코레시는 교인을 살해하고 폭행한 혐의부터 미성년자 강간 및 마약 공급 혐의까지 등등으로 ATF(Bureau of Alcohol, Tobacco, Firearms and Explosives : 주류 담배 화기 및 폭발 물 단속반)의 기습 체포 작전에 놓이자 자신을 따르던 신도들과 저항하다 교회에 불을 질러 집단 자살을 했다.

 

‘악마와의 토크 쇼’ 자체도 호주의 한 심야 토크쇼에서 벌어졌던 일, 그 소동을 모티프로 한 것이다.

 

 

영화 ‘악마와의 토크 쇼’는 시청률이라는 악마, 조회수라는 악마에 사로잡힌 현대 매스미디어의 폐해에 대해 얘기한다. 방송(언론)은 혼돈을 즐긴다. 혼란이 돈을 만들어 준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그 혼돈을 정리하고 진실을 알리려고 노력해 오기도 했지만(베트남전의 진실이나 흑인 인권운동의 의미를 알리려 했던 CBS TV 앵커 월터 크롱카이트처럼) 점점 더 정치사회적 아수라장을 조장하는 가학성을 보여 왔다.

 

영화는, 거짓이 돈이 된다면 가짜 뉴스라도 만들라고 난리를 치는 허위 방송의 시대를 빗댄다. 기가 막힌 것은 1977년 때나 2024년 지금이나 그 난장이 전혀 정리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무려 5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언론은 좋아지기는커녕 점점 악마화 되어 왔다. 세상은 진화하지 않았다. 그게 문제다. 늘 악마와 토크를 즐기려는 세상이 문제다. 악마를 불러들이는 것은 우리들 자신이다.

오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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