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2024)이 코앞에 왔다. 제47대 대통령직을 누가 차지하느냐. 공화당이 탈환하느냐, 민주당이 수성하느냐에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세계 최강국 미국이 어떤 대내외정책과 세계전략을 펼치느냐에 따라 세계사의 진로가 달라지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등 지구촌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는 크고 작은 전쟁·분쟁과 미·중 갈등의 강도에 영향을 미친다. 이것이 국제사회의 엄연한 현실이다. 남·북한 관계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8·15 해방(1945) 이후 분단체제와 대결구도가 좀처럼 해소되지 않는 현실에서 민족사의 염원인 ‘평화·번영의 한민족공동체’로 나아갈 것인지 ‘가깝지만 머나먼 남북’ 관계 또는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물러설 것인지도 미국의 대선 결과에 연동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것 또한 한반도의 엄연한 현실이다.
이런 중차대한 역사적 변곡점을 앞두고 260만 재미동포들은 150만 한인 시민권자들의 유권자 등록에 이어 이들의 투표권 행사를 독려하고 있다. 이번 대선이 다른 선거와 달리 좀 더 주목받는 이유는 대선과 함께 치러지는 연방상원선거에 연방하원 3선 출신의 한인 2세 앤디 김(Andrew Kim. 뉴저지주·민주당)이 첫 도전하고 있고, 영 김(캘리포니아주·공화당), 미셸 박 스틸(캘리포니아주·공화당), 메릴린 스트릭랜드(워싱턴주·민주당) 등 현역 연방하원 3명이 3선에, 그리고 데이비드 김(켈리포니아주·민주당), 데이브 민(캘리포니아주·공화당), 유진철(조지아주·공화당) 등 신진 정치인들이 연방하원 초선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번 기회에 한인이 연방상원의원에 당선된다면 이는 아일랜드계 가톨릭신자였던 존 F. 케네디 제35대 대통령(1961)이 연방하원(1947)을 거쳐 연방상원(1951)에 당선된 것에 비견할 만한 역사적 사건이며, 다수의 한인 연방하원의원들도 미국의 인도·태평양정책이나 대한반도정책과 같은 외교·안보 아젠다 설정에서부터 동포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이민·보험·노인·소상공인·헤이트 문제에 이르기까지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 또한 경제적 성공과 한국정치에 기울어져 있던 기성세대들과 달리 미국의 건국이념인 자유·평등, 개척자정신·청교도윤리를 바탕으로 이민자 전체의 권익 보호와 ‘아메리카 드림’을 실현하려고 애쓰는 140만 한인 차세대들의 진정성과 전문성이 주류사회로부터 더 많은 지지를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뒤돌아보면 1970년대 이후 미국으로 본격 이주한 한국인들이 1992년 L.A폭동을 겪으면서 다민족·다인종사회에서 다른 문화·이념·신념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현실인식을 갖게 되었다. “정치력이 없으면 법의 보호를 기대할 수 없다”는 뼈저린 교훈까지 얻었다. 백인 중심의 이민사회에서 아일랜드계·폴란드계·유태인계·아프리카계 등 후발 이주자집단들이 정치압력 세력을 형성하여 자기 권익을 보호하고 차별을 방지하는 것 외에 모국과의 관계에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비밀 아닌 비밀’도 알게 되었고, 이민 1.5세를 중심으로 ‘재미한인(Korean American)’이라는 새로운 정체성까지 찾아내었다. 현장에서는 한인유권자센터(KACE. 현 시민참여센터), 청년학교(YKASEC), 미주한인봉사교육단체협의회(NAKASEC) 등이 나서서 한인유권자 명부 작성, 현장 투표 참여 유도, 고령자를 위한 통역 서비스, 선거 관련 포럼·워크숍을 비롯하여 대학생 한인 풀뿌리 컨퍼런스, 고등학교·대학생 풀뿌리 인턴십 프로그램 등을 꾸준히 전개해오고 있으며, 세계한인정치인협의회·미주한인회총연합회·미주한인정치력신장위원회 등 한인동포가 주도하는 풀뿌리 공공외교도 저변을 확대하고 있다.
2024 미국 대선과 연방의회 선거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자유·평화·번영의 통일한국’을 위해서라도 한인 정치력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져야 한다. 특출나고 유능한 차세대 한인 정치인들에게 기대하는 것 못지않게 한인 유권자 등록율과 투표 참여율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환경 조성에 힘써야 한다. 이민 20년이 지났는데도 시민권을 취득하지 않고 영주권자 신분에 머물러 있거나 유대감·소속감·충성심을 구분하지 못한 채 자신이 한국인인지 미국인인지 불투명하거나 어렵게 유권자 등록까지는 했으나 투표 현장에는 나가지 않는 현실을 직시하고 개선해야 한다. 자유가 공짜가 아니듯 정치력도 공짜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