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워도 여기서 사는 게 좋아요. 돌아가고 싶진 않네요"
겨울의 차가운 밤공기가 연신 부는 18일 수원역에서는 두꺼운 옷을 껴입고도 추위에 몸을 떠는 시민들을 볼 수 있었다. 이들은 시린 손을 호호 불며 주머니에 넣고 몸을 잔뜩 움츠렸다. 몇몇 시민들은 최대한 찬 바람을 막으려 목도리로 얼굴을 칭칭 감기도 했다.
이 가운데 길거리에서는 꽁꽁 얼어붙은 나무 의자와 보도블럭에서 시간을 보내는 노숙인들도 있었다. 수원역 정문에 위치한 노숙인 쉼터로 향한 이들도 있었지만 몇몇은 삼삼오오 모여 대패삼겹살과 소주로 그들만의 저녁 밥상을 차리기도 했다.
이후 저녁을 마친 이들은 잠을 청하기 위해 이불을 가득 쌓은 텐트 안에서 몸을 녹였다. 이마저도 구하지 못한 이들은 하나 둘 모은 종이박스로 사람 한 명 겨우 누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추위를 피했다.
식사를 하던 노숙인 A씨는 "노숙 생활을 한 지 10년 정도 된 것 같긴 한데 잘 기억은 안 난다"며 "사업이 망해 빚을 지고 길거리에 나왔다. 지금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아서 좋다"고 말했다. 이어 취재진이 비닐봉투에 담은 핫팩을 전달하자 "비닐봉투를 잘 때 발에 두르면 따뜻하다"며 그들만의 겨울을 보내는 방법을 설명하기도 했다.
종이박스 더미에서 쉬고 있던 노숙인 B씨도 "여기에 온 지 한 5년 정도 지난 것 같다"며 "겨울은 많이 춥고 배고플 때도 많지만 노숙 생활이 더 편하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이들이 하루아침에 노숙인이 된 것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한때 사업으로 큰 돈을 벌거나 성실하게 직장생활을 해왔던 평범한 시민이었다는 것이다.
올 겨울에는 영하 18도의 '역대급 한파'가 예고되면서 길거리에서 생활하는 노숙인들이 동사 등으로 변을 당할 위험이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문제는 노숙인을 위해 숙식을 해결할 주택과 사회 복귀를 위한 직업훈련 등 지원책이 있음에도 노숙인들이 이를 거부한다는 점이다. 각종 지원책에도 불구하고 추위에 떨며 노숙을 선택하는 만큼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고동현 수원다시서기노숙인지원센터 실장은 "코로나19 사태가 한창이었을 당시 각종 치료 시스템이 먹통이 되면서 노숙인들이 동사로 사망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들은 사회에서 큰 고난을 겪은 결과 본인들의 자유로운 생활을 침해당하는 것을 싫어한다" 며 "따뜻한 생활 공간을 지원해도 공동 생활의 규칙을 거부하는 등 통제를 싫어해 지원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끝으로 "노숙인을 위한 진정한 지원은 이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자존감을 회복시키는 것으로 약 10년 동안 노숙인 지원을 실시한 결과 약 127명이 사회에 복귀했다"며 "심리 치료를 진행해 희망을 전달한 후 직업을 갖고 지원받은 임대 주택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노숙인 지원 프로그램을 개선시키고 있다"고 덧붙였다.
[ 경기신문 = 박진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