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경의 사소한 발견] 동백꽃과 동박새

2024.12.06 06:00:00 13면

 

제주도에는 사철을 대표하는 식물의 색이 있다. 봄에는 유채꽃의 노랑, 여름에는 수국의 분홍, 가을에는 억새의 갈색, 겨울에는 동백의 빨강. 그 중에서 겨울에 피는 동백꽃을 보면 시련 속에서 헤치며 절개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동백꽃은 알면 알수록 매력적인 꽃이다. 꽃이 필 때도 아름답지만 질 때 더욱 멋진 꽃이다. 대부분의 꽃들이 팔랑팔랑 꽃잎을 떨어뜨리며 지지만 동백은 꽃송이 째로 뚝 떨어진다. 마치 목이 베어 죽을지언정 절개를 지키겠다는 애국자를 보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동백은 대략 11월부터 꽃이 피기 시작하여 2~3월까지 만발하는 겨울 꽃이다. 추운 환경을 이기는 것도 힘든데 이 시기에는 기온이 낮아서 수정을 해주는 나비나 벌들이 없어서 사실 동백은 생존의 위기에 처해야 맞다. 그런데 나비나 벌 대신 동백의 수정 작업을 돕는 존재가 있는데 그게 바로 동박새이다. 이렇게 새가 수정을 돕는 식물을 조매화라고 한다. 동백꽃은 나비나 벌과 같은 곤충을 불러들이기 위한 향기는 가지고 있지 않지만 동박새가 빨아먹을 만큼 충분한 꿀을 가지고 있다.

 

먹을 것이 없는 겨울에는 많은 새들이 따뜻한 곳을 찾아 떠나지만 연초록색 자그마한 동박새는 동백꽃이 필 무렵 돌아온다. 동백꽃 위에 앉아 아기가 엄마 젖을 물듯이 동백꽃의 노란 젖꼭지를 물고 달콤한 꿀을 흡족하게 빨며 추운 겨울과 이른 봄을 살아내는 것을 보면 이들의 공생관계가 참 눈물겹다. 나비도 벌도 없어서 쓸쓸히 세대 보전도 못헸을 동백꽃인데 꿀 먹여 키워준 은혜를 아는 예의바른(?) 동박새가 옮겨준 꽃가루 덕분에 열매를 맺어 삶을 이어가니 말이다.

 

그런데 동백꽃과 동박새에는 아비와 두 아들에 얽힌 전설이 전해내려온다.

어느 왕과 왕의 동생이 있었는데 왕에게는 후사가 없고, 동생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다. 왕좌를 뻇길까봐 늘 불안해하던 왕은 동생의 아들들을 죽이려고 불러들였다. 이를 눈치챈 동생은 자기 아들들 대신 다른 사람을 들여보냈다. 왕이 그 사실을 알고 대노하여 동생과 아들들을 불러들여 동생에게 칼을 주며 아들들을 직접 죽이라고 했다. 이떄 아들들은 새가 되어 날아갔고 동생은 왕이 준 칼로 자신을 찔러 붉은 피를 흘리며 죽었다고 한다. 바로 그 자리에 붉은 피를 닮은 동백나무가 자라났고 날아간 두 아들은 동박새가 되어 동백꽃이 필 때마다 찾아온다는 슬픈 전설.

 

아무리 사람들이 지어낸 이야기지만 동백꽃 속에 연한 부리를 박고 꿀을 먹고는 여기저기 폴폴 날아다니면서 동백나무의 생존을 이어가는 동박새를 보면 전설이 사실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어쩌면 저 동백꽃과 동박새처럼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 눈에 보이는 환경은 부유한 듯 하지만 마음 속은 서로에게 자신을 조금이라도 내어줄 어떤 여유도 없는 각박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언제나 상대방과 환경 탓만 하게 된다. 그러나 그런 환경을 탓하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도움으로서 생명을 보존하고 아름다운 꽃이 피게 하는 동백꽃과 동박새의 모습을 보고 작은 깨달음이라도 얻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권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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