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필칼럼] 밥보다 꽃을!

2024.12.18 06:00:00 13면

최인숙 경기신문 논설주간·파리 시앙스포 정치학박사

▲ 최인숙 경기신문 논설주간·파리 시앙스포 정치학박사

 

연말연시. 소외된 사람들이 가장 춥고 외로움을 느끼는 시기이다. 그들이 품위 있고 유쾌한 한때를 보내도록 특별한 손길이 필요하다. 이를 몸소 실천한 인물이 있다. 아르망 마르키제(Armand Marquiset)다. 이 프랑스인은 20세기 사회사의 핵심 인물이다. 그는 사람들의 관대함을 동원해 크리스마스시즌에 노인들이나 취약 계층이 홀로 남겨지지 않도록 ‘가난한 이들의 작은 형제회(Petits Frères des Pauvres)를 설립했다.

 

이 ‘작은 형제회’는 크리스마스이브 연대 행사를 조직할 뿐만 아니라 자원봉사자들의 지원을 받아 연중 내내 노인들을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음으로써 꾸준한 명성을 쌓아 왔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활발히 진행된 홍보 캠페인은 당시 프랑스의 아파트와 주택, 도시와 시골의 호스피스에 숨어 있는 소리 없는 고통에 대한 사회의 무관심을 일깨우기에 충분했다.

 

마르키제는 수도원을 자주 방문하는 신비주의자로 예술을 즐기는 귀족이었다. 이런 그가 소외계층을 위해 헌신할 수 있었던 건 할머니의 영향이 컸다. 남작 부인이었던 그의 할머니는 1차 세계대전에서 남편과 외아들을 잃었다. 동병상린 때문이었을까. 그녀는 전쟁에서 아들을 잃고 무일푼이 된 병사들의 부모를 돕기 위해 재단을 설립했다. 할머니를 좋아한 마르키제는 그녀를 도우며 가난을 처음 접하게 됐다.

 

서른 살에 할머니를 여읜 그는 큰 충격을 받아 음악을 포기하고 ‘가난한 이들을 위해 헌신’하기로 결심했다. 어느 겨울 저녁, 배식 봉사를 가던 마르키제는 가난으로 고통 받는 학생들과 예술가들을 만났다. 그들을 위해 그는 ‘살아있는 영혼을 위하여’라는 협회를 설립했다.

 

곧 한계에 봉착한 그는 루르드로 자전거 여행을 떠났다. 거기서 숙식을 구걸하며 가난을 몸소 체험했다. 마르키제는 공주, 공작부인, 남작부인 등 아낌없는 후원자들을 모으기로 작정했다. 이때 그는 기부자들에게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면 그들이 더욱 관대해지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인맥을 이용해 사냥, 자선공연, 경매를 조직해 큰돈을 모았다. 하지만 그는 빈자와 부자 사이를 오가며 매우 불편함을 느꼈다. 그는 모순적인 세상을 괴로워하며 절대자를 꿈꿨다. 1939년 마흔을 앞 둔 마르키제는 파리 노트르담에서 기도할 때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온전히 바치기로 결심하면서 평화를 찾았다.

 

2차 대전 후 재건이 한창인 프랑스는 노인들을 방치했다. 그들을 위해 마르키제는 1946년 ‘가난한 이들의 작은 형제회’를 설립했다. 항상 창의적이었던 그는 최초의 크리스마스 소포를 배포하고 ‘작은 형제의 크리스마스트리’를 위한 모금함을 곳곳의 상점에 비치했다. 후에 그는 자신이 태어난 몽기셰 성을 개조해 고립된 노인들이 휴가를 보낼 수 있도록 했다. 다이아몬드식(결혼 60주년 기념식)을 맞은 노부부에게는 다이아몬드 반지를 선물하기도 했다. 어떤 이들은 그의 사치스런 행동에 비난을 퍼부었다.

 

그러나 그는 ‘가난한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 가장 필요한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모토를 갖고 있었다. 그는 노인들에게 수프보다 꽃을 먼저 주고 다이아몬드를 선물했다. 노인들은 이 보석을 세상 하직하는 날에도 간직했다.

 

인간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 가난한 이들에게 밥 대신 꽃을 줬던 마르키제의 발상에 신선한 충격을 넘어 진한 감동을 받는다. 여러분 중에 여유 있는 분은 올 크리스마스에 한국판 마르키제가 되어 보시라. 가난한 이들에게 가장 원하는 것을 줄줄 아는 사람. 이 얼마나 멋진가!

최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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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평공
    2024-12-19 15:49:36

    인간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 가난한 이들에게 밥 대신 꽃을 줬던 마르키제의 발상에 신선한 충격을 넘어 진한 감동을 받는다. 전적 공감임다..
    사람사는 세상사는 기본이 소통이다. 또한 소통은 공감능력이다. 마르키제의 감동으로 우리 사회에도 인정과 사랑이 꽃피우는 따뜻한 연말을 함께 기원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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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고
    2024-12-18 16:44:53

    연말에 훈훈한 글을 읽으니 마음까지 따뜻해집니다.
    진정한 도움과 나눔이란 어떤 것인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모두들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2025년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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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백성
    2024-12-18 16:10:50

    춥고 시린 이 겨울에 참으로 훈훈한 이야기 입니다
    인간은 우선은 빵이 필요하지만 꽃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배고픔의 본능이 우선 해결되어야 하지만 감정 내지는 감성이 인간다움의 본질이니까요
    오랜만에 인간다움의 초심을 생각하는 글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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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담
    2024-12-18 13:51:05

    연말연시에 따뜻한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더욱 따뜻한 사람이 되어볼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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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루봉
    2024-12-18 13:40:41

    오랬만에 따듯한 글을 읽습니다. 이런 분들이 많은 사회가 진정으로 아름다운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사회도 탐욕과 아집의 시대를 넘어 사랑과 자비가 넘쳐흐르는 사회로 바뀌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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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만
    2024-12-18 11:09:59

    차갑고 시린 겨울 따뜻한 글을 읽으니 이 따뜻함을
    숨어 있는 고통중에 있는 이들에게 전해야겠다는 마음이
    듭니다.
    올 크리스마스엔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아닌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며 찾아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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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 아침
    2024-12-18 08:23:03

    요즘 대한민국에 밥을 굶는 분들은 많지 않습니다. 기부에 대한 마음이 인간 생존의 최하 지점에 있다 보니 어려운 이웃을 위한 따뜻한 마음들이 갈 곳을 잃기도 합니다. 눈물샘을 자극하며 쥐어짜듯이 행해온 기부 캠페인의 폐해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밥보다 꽃!!! 우리도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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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Vm
    2024-12-18 08:04:36

    밥은 일시적 빈곤을 해결할 수 있을지라도 그 이상을 해결하기엔 부족합니다. 가장 원하는 것을 주고자 하는, 보다 본질에 접근한 것이 놀랍네요. 아르망 마르키제의 이야기를 보니 가슴이 따듯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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