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말연시. 소외된 사람들이 가장 춥고 외로움을 느끼는 시기이다. 그들이 품위 있고 유쾌한 한때를 보내도록 특별한 손길이 필요하다. 이를 몸소 실천한 인물이 있다. 아르망 마르키제(Armand Marquiset)다. 이 프랑스인은 20세기 사회사의 핵심 인물이다. 그는 사람들의 관대함을 동원해 크리스마스시즌에 노인들이나 취약 계층이 홀로 남겨지지 않도록 ‘가난한 이들의 작은 형제회(Petits Frères des Pauvres)를 설립했다.
이 ‘작은 형제회’는 크리스마스이브 연대 행사를 조직할 뿐만 아니라 자원봉사자들의 지원을 받아 연중 내내 노인들을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음으로써 꾸준한 명성을 쌓아 왔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활발히 진행된 홍보 캠페인은 당시 프랑스의 아파트와 주택, 도시와 시골의 호스피스에 숨어 있는 소리 없는 고통에 대한 사회의 무관심을 일깨우기에 충분했다.
마르키제는 수도원을 자주 방문하는 신비주의자로 예술을 즐기는 귀족이었다. 이런 그가 소외계층을 위해 헌신할 수 있었던 건 할머니의 영향이 컸다. 남작 부인이었던 그의 할머니는 1차 세계대전에서 남편과 외아들을 잃었다. 동병상린 때문이었을까. 그녀는 전쟁에서 아들을 잃고 무일푼이 된 병사들의 부모를 돕기 위해 재단을 설립했다. 할머니를 좋아한 마르키제는 그녀를 도우며 가난을 처음 접하게 됐다.
서른 살에 할머니를 여읜 그는 큰 충격을 받아 음악을 포기하고 ‘가난한 이들을 위해 헌신’하기로 결심했다. 어느 겨울 저녁, 배식 봉사를 가던 마르키제는 가난으로 고통 받는 학생들과 예술가들을 만났다. 그들을 위해 그는 ‘살아있는 영혼을 위하여’라는 협회를 설립했다.
곧 한계에 봉착한 그는 루르드로 자전거 여행을 떠났다. 거기서 숙식을 구걸하며 가난을 몸소 체험했다. 마르키제는 공주, 공작부인, 남작부인 등 아낌없는 후원자들을 모으기로 작정했다. 이때 그는 기부자들에게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면 그들이 더욱 관대해지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인맥을 이용해 사냥, 자선공연, 경매를 조직해 큰돈을 모았다. 하지만 그는 빈자와 부자 사이를 오가며 매우 불편함을 느꼈다. 그는 모순적인 세상을 괴로워하며 절대자를 꿈꿨다. 1939년 마흔을 앞 둔 마르키제는 파리 노트르담에서 기도할 때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온전히 바치기로 결심하면서 평화를 찾았다.
2차 대전 후 재건이 한창인 프랑스는 노인들을 방치했다. 그들을 위해 마르키제는 1946년 ‘가난한 이들의 작은 형제회’를 설립했다. 항상 창의적이었던 그는 최초의 크리스마스 소포를 배포하고 ‘작은 형제의 크리스마스트리’를 위한 모금함을 곳곳의 상점에 비치했다. 후에 그는 자신이 태어난 몽기셰 성을 개조해 고립된 노인들이 휴가를 보낼 수 있도록 했다. 다이아몬드식(결혼 60주년 기념식)을 맞은 노부부에게는 다이아몬드 반지를 선물하기도 했다. 어떤 이들은 그의 사치스런 행동에 비난을 퍼부었다.
그러나 그는 ‘가난한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 가장 필요한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모토를 갖고 있었다. 그는 노인들에게 수프보다 꽃을 먼저 주고 다이아몬드를 선물했다. 노인들은 이 보석을 세상 하직하는 날에도 간직했다.
인간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 가난한 이들에게 밥 대신 꽃을 줬던 마르키제의 발상에 신선한 충격을 넘어 진한 감동을 받는다. 여러분 중에 여유 있는 분은 올 크리스마스에 한국판 마르키제가 되어 보시라. 가난한 이들에게 가장 원하는 것을 줄줄 아는 사람. 이 얼마나 멋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