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라져가는 주민조례청구, 원인 분석해 되살려야

2024.12.31 06:00:00 13면

경기도 올해 청구 건수 ‘0건’…참여자치 발전 역행

매년 줄어들던 경기도 주민조례청구가 올해는 ‘0건’을 기록할 것이라는 소식이다. ‘주민자치의 꽃’이라고 불리는 주민조례청구는 선진 지방자치를 상징하는 참여민주주의의 열매라고 할 수 있다. 경기도에서 이 제도가 차츰 유명무실해지더니 급기야 나타난 사라질 위기는 비상이 아닐 수 없다. 전문가들은 단체뿐만이 아니라 개인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제도를 대폭 개선하고 교육·홍보를 강화해야 해야 한다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지난 1월부터 이달 29일까지 경기도에 제출된 주민조례청구 신청은 한 건도 없는 것으로 집계됐다. 광역단체가 아닌, 이천·성남·평택 등 기초단체에서는 5건이 청구돼 절차가 진행됐다. 일명 ‘주민 조례 발안제’라고 불리는 주민조례청구는 주민이 직접 조례 제·개정 및 폐지를 요구할 수 있는 적극적인 참정권 보장 제도다. 1999년 지방자치법에 근거해 도입됐다. 


인구가 경기도보다 425만여 명이나 적은 서울시는 올해 주민조례청구 2건에 대한 신청 과정을 밟고 있다. 지난해도 마찬가지로 서울시에선 무려 6건이나 있었고, 2022년에는 4건이었다. 2022년~2024년 기간 광역·기초단체의 합산 신청사례를 기준으로 봐도 경기도 19건, 서울시 23건으로 차이가 난다. 경기도와 도의회는 홈페이지와 유튜브 채널 등을 활용해 주민이 이해하기 쉽도록 홍보에 나서고 있지만,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방자치법 제17조(주민의 권리)에 따르면 주민은 법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주민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지방자치단체 정책의 결정 및 집행 과정에 참여할 권리를 가진다. 아울러 제19조(조례의 제정과 개정·폐지 청구)에 의해 주민은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를 제정, 개정하거나 폐지를 청구할 수 있다.


경기도의 경우 이를 통해 ‘학교급식 지원 조례안’을 탄생시킨 기록이 있다. 2003년 11월 제정 운동이 본격 시작돼 이듬해 4월까지 약 16만6000명 주민이 서명에 동참했다. 2009년 6월에는 정계와 학생, 학부모 공동으로 ‘대학생학자금 이자 지원 조례안’을 만들기 위한 서명이 진행돼 도의회에서 여·야 합의로 조례가 제정되기도 했다.


이후에는 총 3건의 주민조례청구가 있었으나, 서명 인원을 충족하지 못하는 등의 이유로 결실을 거두진 못했다. 심각한 문제는 성과와 별개로 관심 자체가 떨어지면서 ‘개점휴업’을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됐다는 점이다. 2022년과 지난해에는 각각 친환경 정책, 청소년 무상교통요금을 주제로 주민들이 조례 관련 권한을 행사했었다.


주민조례청구 제도는 지방자치법이 전부 개정된 2022년 1월 온라인 비대면 플랫폼 구축과 청구연령 하향(19세 이상→18세 이상) 등으로 접근성을 높인 바 있다. 도의회는 법에 근거, 서명 요건을 청구권자 총수의 200분의 1에서 350분의 1로 문턱을 낮췄다. 


그러나 평범한 주민들에게 주민조례청구는 여전히 문턱이 너무 높다. 무엇보다도 주민들이 직접 조례안을 작성하기엔 전문지식이 턱없이 부족하다. 청구요건을 충족시키기 위한 서명운동도 본인인증 과정 등 절차가 복잡해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지방정부가 적극적으로 시스템을 구축하여 지역민이 손쉽게 정책과 제도 개폐 의견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하지 않으면 활성화되기 어렵다는 얘기다. 


물론, 이 제도가 잘못 흘러갈 경우 집단의 이익을 위한 조례 청구가 빈번해지거나 주민조례 청구요건에 해당하지 않은 님비현상 등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는 있다. 결국 경기도를 비롯한 전국적으로 지방자치단체가 길을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라, 번거롭고 귀찮아질 걱정 때문에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합리적 비판이 가능하다. 이는 문자 그대로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는’ 어리석음이다. 선진 지방자치로의 도약을 위해서 ‘주민 조례 발안제’의 확립은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 발상의 일대 전환이 필요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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