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둔화 및 내수 회복 지연으로 올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이 1%대 초반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특히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이하 연준)의 기준금리 동결로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운용이 제약을 받으면서, 재정정책의 중요성이 한층 강조되고 있다. 이에 따라 정치권과 경제계에서는 추가경정예산(이하 추경) 편성 압박이 거세지는 모습이다.
2일 금융권 등에 따르면 영국의 경제분석회사 캐피털이코노미(CE)는 최근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1%로 예상했다. 이는 한국은행이 제시한 전망치(1.6~1.7%)를 밑돌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제시된 전망치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CE는 소비 둔화, 고용시장 부진, 정치적 불확실성 심화 등을 하향 조정의 근거로 제시했다.
12·3 계엄 사태 이후 확대되고 있는 정치적 불확실성의 여파가 반영되면서 주요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의 기대치도 낮아지고 있다. 씨티은행은 전망치를 1.5%에서 1.4%로 0.1%포인트(p) 낮췄으며, JP모건은 성장률 전망치를 1.2%까지 끌어내렸다.
모건스탠리 역시 보고서 '최소한의 성장(Growing at Bare Minimum)'에서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5%로 낮췄다. 저성장의 배경으로는 반도체 하강국면으로 수출 하락과 모든 경제 부문의 활동 둔화로 인한 소비 회복 지연을 꼽았다.
또 "앞으로 한국은 대내외 역풍(headwinds)에 직면할 것”이라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에 따른 수출 불확실성도 확대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추경을 집행한다면 올해와 내년에 걸쳐 성장률을 0.2%p 정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처럼 저성장이 고착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재정 확대로 이를 방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특히 연준이 지난달 29일(현지시각) 기준금리를 동결하기로 결정하면서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에 한계가 생겨 재정 정책의 중요성은 한층 높아진 상황이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추경 편성 논의를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올해 상반기 예산의 67%를 집행하기로 했으나, 실질적인 경기부양 효과와 하반기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면 예산 조기 집행만으로는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예산정책처는 "최근 재정집행 실적과 올해 하반기 재정운용 여건을 고려하면 예산 조기 집행의 규모와 속도, 경기부양 효과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주어진 예산의 조기 집행을 통해 상반기 중에는 경기 진작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재정집행이 줄어드는 하반기에는 성장의 하방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경기 둔화의 골이 깊어지지 않도록 여야 및 정부의 정치적 합의를 통해 적시에 실효성 있는 추경 등 경기 대응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지난달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외부 요인으로 둔화한 성장률을 보완하는 정도의 추경이 필요하다"며 "15조~20조 원 정도로, 시기는 가급적 빨랐으면 한다"고 밝혔다. 한은 총재가 구체적인 규모까지 언급하며 추경을 거론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꾸준히 '신속한 추경 편성'을 주장해 온 더불어민주당 역시 이재명 대표의 주요 정책인 민생회복지원금을 포기하겠다는 의사까지 내비치며 정부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이 대표는 지난달 31일 최고위원회에서 "정부나 여당이 민생지원금 (예산) 때문에 추경을 못 하겠다고 한다면 민생지원금을 포기하겠다"며 "효율적인 민생지원 정책이 나오면 상관이 없으니 추경을 편성해달라"고 말했다.
이에 예산 조기 집행이 우선이라는 입장을 고수해 오던 정부도 한발 물러서는 모습이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31일 국무회의에서 "어려운 민생 지원과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추가적인 재정투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정치권뿐만 아니라 지자체, 경제계 등 일선 현장에서 제기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추가 재정 투입에 대해서는 국회·정부 국정협의회가 조속히 가동되면 국민의 소중한 세금을 가장 효과적으로 써야 한다는 재정의 기본 원칙하에 국회와 정부가 함께 논의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국회와 정부의 국정협의회 가동을 전제로 추경 편성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풀이된다.
[ 경기신문 = 고현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