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워 죽겠어요"…칼바람에 오갈 데 없는 한파 취약계층

2025.02.06 06:00:08 7면

최저기온 영하 11도에 한파 취약계층 안전 우려
쪽방촌, 노숙인 등 한파 취약계층 안전 대책 必
수원시, 소방재난본부 등 관계기관 대책 마련 '만전'

 

지난 3일 봄을 알리는 입춘을 기점으로 갑작스러운 한파가 한반도를 강타했다. 추위는 다음 주까지 이어질 전망이며 영하로 떨어진 차가운 칼바람에 두꺼운 옷을 껴입어도 몸이 떨릴 지경이다. 

 

쪽방촌 등 열악한 생활환경에서 생활하는 한파 취약계층에는 어려운 생활 환경에 추위까지 들이닥친 상황이다. 특히 길거리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노숙인들은 자칫 동사를 당할 수도 있다.  

 

지자체 등에서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도움의 손길을 건네지만 충분하진 않다. 이에 경기신문은 이들을 만나 추운 겨울 동안 어떻게 생활하고 있으며 이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찾아본다. [편집자 주]

 

 

◇ "아무리 껴입어도 추워요"…오갈 데 없는 노숙인들

 

"이번 겨울은 옷을 아무리 껴입어도 너무 춥네요"

 

기온이 최대 영하 11도까지 내려간 지난 4일 수원역에는 추운 날씨에도 특별한 거처 없이 길거리에서 생활하는 노숙인들을 하나둘씩 볼 수 있었다. 이들은 낮 동안 로데오 거리 등을 돌아다니며 쓸만한 물건을 찾거나 지하철 계단에서 구걸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수원역과 맞은편 인도를 잇는 수원역 애경 육교에서도 자리를 잡고 구걸하는 노숙인들을 볼 수 있었다. 이들은 갑작스럽게 추워진 날씨에 털모자와 목도리, 두꺼운 옷을 껴입었지만 차가운 공기에 노출된 코와 볼은 빨갛게 얼어붙어 있었다.

 

취재진이 다가가 춥지 않냐고 묻자 이들은 "지난주에는 조금 따뜻해져서 생활하기에 괜찮았는데, 최근 들어 갑자기 추워졌다"며 "미리 챙겨둔 옷들을 껴입어도 춥다. 바람이 불지 않는 곳에서 최대한 가만히 있어야 한다"고 전했다.

 

 

이들은 추운 날씨에 입이 잘 움직이지 않아서인지 말을 더듬었으며 몸을 떨기도 했다.

 

노숙인이 추위에 떠는 모습을 본 시민들은 안타까운 시선을 보내지만 도움을 주거나 구걸하는 이들에게 돈을 전하는 경우는 보기 어려웠다. 

 

수원역 외부와 달리 내부는 춥진 않지만 노숙인은 한 명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는 수원역이 노숙인들이 위생상 문제가 있고, 역을 이용하는 시민들이 불편을 호소해 출입을 금지해서다.

 

수원역 관계자는 "노숙인들을 관리하거나 지원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며 "이들이 수원역에 자리 잡을 때 역을 이용하는 시민이 불편함을 겪고, 관련 민원도 다수 접수되기 때문에 노숙인의 출입을 막고 있다"고 설명했다.

 

 

노숙인들은 밤에는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각자의 장소에서 잠을 청한다. 실제 수원역과 수원메쎄, 롯데백화점 사이에는 이들이 밤에 잠을 자는 용도로 사용하는 텐트가 있다. 텐트 내부에는 사람 한 명이 들어갈 좁은 공간을 제외하곤 추운 겨울밤을 버틸 수 있도록 이불과 담요, 돗자리가 가득 차 있었다.

 

간혹 이곳에서 자는 노숙인이 낮 동안 주운 물건을 텐트에 넣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를 본 시민들은 "어떻게 저기서 생활하냐", "너무 춥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노숙인 A씨는 "여름에는 괜찮지만 겨울에는 자다가 동사하지 않을까 할 정도로 춥다"며 "수원역 지하철과 역사에는 노숙인이 들어갈 수 없으니 이렇게 중무장해야 한다"고 전했다.

 

시민 최지선 씨(41)는 "이곳을 자주 지나다녀 노숙인들을 자주 보고 예전에는 핫팩이나 돈을 주기도 했다"며 "여러 봉사단체 등에서 이들을 갱생하기 위해 숙소를 제공하고 교육을 지원하지만 거부하고 길거리에서 생활하는 것으로 안다. 마음은 아프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어쩌겠나"고 말했다.

 

실제 수원시와 '다시서기노숙인지원센터' 등 봉사단체는 이들에게 도움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노숙인들은 '종속되기 싫다'며 도움을 거부하고 있다.

 

노숙인 B씨는 "저를 포함한 길거리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사기를 당하거나 모종의 이유로 모든 것을 잃어 생활을 포기한 사람들"이라며 "예전에는 일반인처럼 돈 벌고 좋은 집에서 살았지만 지금은 아무 생각 없이 이렇게 사는 게 좋다"고 했다.

 

 

◇ "추워 죽겠어요...하지만 어쩌겠어요"…칼바람 피할 곳 없는 쪽방촌

 

같은 날 영하 11도의 날씨로 살을 에는 추위는 팔달구 남수동에 위치한 한 쪽방촌에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집 안은 칼바람이 몰아쳤고 중앙 마당에는 지난 설 명절 내린 눈이 채 녹지 않고 쌓여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13가구가 함께 생활하는 이곳에는 주변 건물에 가려 햇빛조차 들지 않았다.

 

이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난로와 전기장판을 틀고 있었지만 각 방에 스며드는 웃풍과 한기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으며 두터운 외투와 이불 등으로 추위를 견뎌야 했다.

 

3년째 쪽방촌에 거주하고 있다는 여운형 씨(71)는 "밤마다 불어오는 웃풍으로 잠들기 어렵고 워낙 오래된 건물이다 보니 난방을 키더라도 추운 건 똑같은 것 같다"고 토로했다.

 

집 앞에 놓인 간이 의자에 앉아 주변 건물을 바라보며 당장이라도 저런 집에 들어가면 좋겠지만 어쩌겠냐는 여 씨의 말에서는 씁쓸함이 느껴졌다.

 

 

여 씨를 따라 들어간 그의 방은 3평 남짓한 공간으로 냉장고와 TV가 채우고 있어 사람 한 명이 누울 수 있는 정도였으며 난방기구는 작은 난로 한 대가 유일했다.

 

그는 "화장실이 밖에 있어 갈 때마다 불편하고 힘든 것 같다"며 "그나마 전기 난방이 있긴 하지만 한기가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곳에서 생활은 매우 힘들지만 어쩔 수 없이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며 "더울 때나 추울 때 이렇게라도 관심을 가져주니 고마울 따름"이라며 멋쩍은 웃음을 보였다.

 

영하의 기온에도 난방비 걱정에 한 푼이라도 아껴보려 난방을 틀지 않을 때도 있었다. 한상우 씨(81)는 이날 영하의 날씨에도 집 안 보수를 위한 작업을 하고 있었다.

 

한 씨는 "추운 날씨에 전기 난방이라도 틀어야 하는데 일부 사람들은 전기세를 낼 형편이 되지 못한다"며 "많이 쓰는 사람들은 10만 원씩 나온다"고 말했다.

 

이어 "전기 난방은 필수적이라 안 낼 수도 없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10만 원이야 별것 아니지만 이곳에는 기초생활수급자분들도 있어 부담될 수 있다"며 "전액 지원보다 50%라도 지원해 주면 큰 힘이 된다"고 덧붙였다.

 

 

◇ 최강 한파에 손 내미는 기관들

 

당분간 영하 날씨가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수원시, 소방재난본부를 비롯한 관계기관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살을 에는 추위를 견뎌야 하는 한파 취약계층을 위한 대책을 마련했다.

 

수원시는 한파에 취약한 주거취약세대 안전 대책을 마련했다. 경로당, 도서관 등 한파쉼터의 냉난방시설과 안전장치를 상시점검하고 독거노인에게는 노인복지관, 동행정복지센터 등에서 안부 전화 서비스 등을 실시하고 있다.

 

이밖에 응급상황과 관련된 대책을 수립하고 비상연락망이나 보고체계를 점검하고 응급관리요원을 통한 방문 확인, 월동난방비 지원, 에너지 바우처 등도 지원한다.

 

시는 지난 11월부터 노숙인 한파 대비 특별보호대책도 수립해 운영하고 있다. 지난 설 명절 전 두 차례 패딩, 방한화 등 의류품을 지원했고 임시주거지원을 통해 거주지 마련도 지원한다.

 

또 시 해병대전우회와 연계해 관내 전 지역에 대한 노숙인 안전점검을 실시하고 있으며 상담과 함께 필요시 병원 치료 연계를 진행하고 있다.

 

소방당국의 경우 한파에 대비해 노숙인이나 쪽방촌에서 생활하는 불우이웃이 동사 등 생명이 위독한 경우 신속히 이들을 병원으로 이송하는 '긴급 구조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관련 신고가 접수될 경우 지체없이 이들이 치료받을 수 있도록 조치하는 것이 골자이다.

 

소방당국 관계자는 "한파로 인해 동사 우려가 있는 등 사건사고가 발생하면 신속한 인명 구조가 가능하도록 구급차와 구급대를 투입하고 있다"며 "신속한 병원 이송과 의료 지원으로 이들의 생명을 보호하고 있다"고 전했다.

 

노숙인 종합지원센터인 수원다시서기노숙인지원센터는 노숙인 일시보호소인 '꿈터'를 운영해 동절기 노숙인들이 추운 날씨를 피해 안전하게 머무를 수 있도록 조치하고 있다. 또 이들이 사회로 복귀할 수 있도록 심리치료와 자활 등 노숙인에게 맞춤형 지원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고동현 수원다시서기노숙인지원센터 실장은 "노숙인들은 모종의 이유로 생활이 무너져 결국 통제와 규칙을 거부하고 있다. 이들을 위한 진정한 지원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자존감을 회복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심리 치료를 진행해 새출발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전달한 후 직업을 갖고 지원받은 임대 주택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노숙인 지원 프로그램을 개선하고 있다. 약 10년 동안 노숙인 지원을 실시한 결과 약 127명이 사회에 복귀했다"고 설명했다.

 

[ 경기신문 = 박진석·장진 기자 ]

박진석·장진 기자 gigajin2@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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