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주 한 편 한 편에 깃든 철학자의 고민, 광부처럼 책 속에서 캐내는 지혜, 농부처럼 그을 다듬든 섬세한 노력이 만든 결실입니다. 매번 독자들에게 삶의 향기를 나눠주고, 세상을 더 따뜻하게 바라보게 한 이 편지들은 박 교수님이 그려온 ‘사람다운 향기’의 결집체라 할 수 있습니다. (소설가 김홍신)"
"오래 전부터 토요일 아침이 되면 습관적으로 카톡을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종횡무진하는 CEO 토요편지를 읽는 일은 이제 제 생활의 일부가 됐습니다.(방송인, 한학자 김병조)"
2004년 4월 동국대학교 CEO인문학 최고위과정을 졸업한 동문들에게는 매주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아침마다 문자메시지가 뜬다.
문자메시지를 보낸 주인공은 최고위과정을 이끌어온 동국대학교 행정대학원 고양캠퍼스의 인문학 거장 박영희(73) 지도교수다.
박 교수는 2004년부터 올해까지 20년동안 동국대 부동산최고위과정을 이수한 동문들과 소통하기 위해 토요일마다 편지를 보내왔다.
졸업한 동문들에게는 주말마다 주옥같은 내용의 인생양식을 얻는것이기에 더없이 좋다. 벌써 20년째다.
잠시 300회를 전후로 1년 6개월여간의 숨 고르기가 있었지만 20년 동안 매주 1500~2000자 분량의 편지를 보낸다는 것은 정성을 넘어 고통이기도 하지만 박 교수는 이제 고통을 즐기기로 했다고 한다.
어쩌면 해탈이란 표현이 가장 적절하다.
편지의 시작은 이랬다.
박 교수가 제자들을 상대로 강의에서 미처 다 전하지 못한 이야기를 아쉬워 글로서 전달하기 시작한 것인데 그만 이제는 중독이 되또 이렇게까지 중독된데에는 제자들의 잘못(?)도 매우 크다.
메시지를 전달받은 제자들의 반응이 너무 뜨거웠기 때문이다. 사실 제자들이라고 해도 CEO과정이기에 박 교수보다 연배가 많은 사람이 많다.
박 교수는 ‘이쯤이면 되겠지’라고 편지를 그만둘까 했었지만 메시지를 받는 이들이 댓글로 '이번 편지는 내 이야기 같았다', '요즘 힘들었는데 큰 위로가 됐다'는 메시지를 받을 때마다 편지가 누군가에게 작은 빛이 될 수 있음을 깨닫고 나도 모르게 글귀를 만들고 있는 나를 보게 다고 말한다.
편지는 삶에서 겪는 다양한 순간에 대한 인문학적인 성찰을 담고 있다. 박 교수의 경험이 기반이지만 소재 발굴에는 제약이 없다. 책, 영화 같은 문학 콘텐츠는 물론 신문 사설, 지인과의 대화에서 나온 한마디가 편지의 주제가 된다.
다만 '훈계하지 않는다'는 기본 원칙은 고수한다. 독자들에게 가르치거나 지시하는 게 아니라 자신에게 묻고 답을 찾아가는 형식이다. 박 교수의 편지가 오래도록 사랑받는 이유가 바로 이런 기본원칙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매주 글을 쓰다보니 결국 한계에 봉착했다"며 "2011년 제주도에서 1년 반 지내면서 편지 보내기를 잠시 멈추고 내실을 다지는 시간을 가졌다"면서 "그때부터 책 읽기를 시작해 현재까지 1500권 넘게 읽었고 신문 칼럼과 기고도 라면박스로 10박스 이상 스크랩했다"고 그동안의 흔적을 얘기한다.
어느덧 20년의 세월이 흐르고 처음 170여 명에게 보내던 편지는 점차 늘고 늘어 2800여 명이 됐다.
지난달에는 '천 번의 들숨과 날숨으로'라는 주제로 CEO 토요편지 1000회 기념회도 가졌다. 행사에는 많은 제자들과 CEO들이 참석해 1000호를 축하했으며 앞으로 더 오랜시간 박 교수의 고통(?)을 손모아 기원하기도 했다.
박 교수는 "최근 편지 쓰기에 챗 GPT 등 AI를 경험하면서 아무리 기계가 인간을 대신한다지만 인간의 감성은 기계로 대신할 수 없다”면서 "건강을 유지해 앞으로 10년 동안 편지 쓰기를 계속해 1500회까지 이어갈 것"이라고 확신했다.
편지를 보낸 뒤 다음 편지를 위해 고민하는 박영희 교수의 주말편지를 받고 있는 2800명에게 매주 행복한 기다림은 앞으로 10년 연장이다.
[ 경기신문 = 김은섭 기자 ]